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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 Chun Mar 22. 2021

공감과 소통 ; 술과 단톡방

공감과 선택

최근의 코로나 사태는 SNS상에 단톡 방이 무리를 만드는 것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어느 매체에서 성인남녀의 95% 정도가 단톡 방을 이용한다는 내용을 읽은 기억이 난다. 쉽게 무리를 짓고 소통하는 데 있어 단톡 방보다 더 편한 것이 또 있을까?


가족 단톡 방외에 내가 요즘 유일하게 먼저 소식을 올리는 카카오 단톡 방이 하나 있다. 단톡 방의 이름은 없지만 멤버 3명은 일상의 소소한 이런저런 이야기로 공감이어 간다. 대면하고 이야기하는 기회가 별로 없지만 그래도 계절과 날씨 이야기, 자녀 이야기, 자신의 일상 이야기를 올리고 공감하며 소통한다.


단톡 방의 이름 하나는 있는 게 좋겠다 싶은데, 3명의 멤버를 놓고 보면 어떤 관심사를 가지고 모인 게 아니라 딱히 뭐라 단톡 방 이름을 만들 수가 없다. 동창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직장 동료도 아니다.

굳이 성별을 구분하면 여자 두 명에 남자 한 명이 함께하는 무리다. 나이도 내가 10살 가까이 많다.


멤버 두 분은 나의 오래된 지인 A 교수와 그의 동료 B교수의 안주인이다. 몇 번 부부 동반으로 식사를 하거나, 내가 살던 전원주택에 가끔 왕래를 하며 친해졌다. 그런데 왜 단톡 방 멤버가 6명이 아니고 그중 3명 일까?


좀 특이한 조합이긴 해도 이유가 있다.


어쩌다 부부동반으로 모이면 벌, 야생화등에 관심이 많은 A교수와 생물학과의 B교수, 딱히 술을 못하지만 자연을 사랑하는 내 아내는 맑은 정신에 자연을 탐구하는 생산적인 대화를 이어간다. 반면 술과 함께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도 없고 주제도 없이 떠들었지만 못다 한 이야기가 많이 남은 3명만이 단톡 방을 개설해서 아직도 이야기 중이다.

 

목적이 명확하고 논리나 말로 설명되는 이성적 공감은 논리적일 필요가 없는 느낌이나 편안함이 주는 공감과는 다르다. 나는 후자를 감성적 공감이라고 말하고 싶다. 감성적 공감이 형성되기 위한 가장 큰 전제 조건은 옳고 그름의 문제를 심판하려 하거나, 팩트만을 추구하거나, 자신의 주장이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하지 않는 것이다. 감성의 소통은 단어로 이어지는 말의 전달 이상의 무언가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삶은 때로 공허하거나 외롭기 그지없다. 벽을 허물고 편안함을 추구하는 감성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있어 "술"은 중요한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요즘은 코로나 19로 인해 술을 마시는 무리를 만들기가 어렵다. 때문에 굳이 술 모임을 한다면 화상을 연결해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는 술자리는 어떨까? 사실 화상으로 만나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하는 것도 괜찮을 듯한데, 감성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 번쯤 시도해 볼 생각이다.


 술을 못하는 A 교수를 만나면 아직도 연꽃 이야기, 야생화 이야기, 벌 이야기에 관한 것이 대화의 85%를 차지한다. 이제 직접 벌을 키우고 꿀을 채집하는 취미의 수준을 넘어 그 분야 최고 전문가중 한 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는 벌에 대해 설명하지만 꿀을 좋아하는 나는 꿀에 더 큰 관심이 있다. 매년 그가 채집한 꿀을 받아먹는 것도 내 삶에 소소한 행복이 된 지 오래다. A교수는 벌을 키우는 사람들과 공감하며 교류하지만 나는 술을 마시는 사람들과 공감하며 꿀의 효능을 이야기한다.


서로 공감하는 것이 다르지만 공감은 또 다른 공감과 연결되어 새로운 공감의 연결 고리가 되기도 한다.


오래전에 있었던 술에 관한 이야기다.

대학원생 세미나를 마치고 밤늦게 퇴근 준비를 하는데 연구실에 학생 한 명이 찾아왔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학생은 술냄새를 풍기며  "내가 왜 F 학점입니까?" 하며 소리친다.

이미 한번 F를 맞고 재수강하면서 나름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또 F가 나왔다는 것이다.

술 취한 상태로 밤늦게 교수 연구실에 들어와 소리 지르는 상황이어서 대처하기가 난감했지만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내일 맑은 정신에 다시 오게."

하지만, 학생이 물러설 기세가 아니다.

 "만일 지금 성적 근거를 확인해서 문제가 없으면 자네는 징계위에 회부되는 것을 감수하겠나?"

학생은 그렇게 하겠다고 호기롭게 대답했다.  

확인해 본 결과 해당 학기 세 번의 시험 중 한 개를 응시하지 않아 0점 처리된 이유에서 F를 받게 된 것이었다.  


누구보다 자신을 아껴주셨던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수시시험이 있던 주에 학교 나오지 못해 시험에 응시하지 못했고 경황이 없어 행정적 조치하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F"는 당연했다.


학생이 울먹이며 졸업하게 해달라고 매달렸지만, 이미 공지된 성적을 바꿀 수는 없는 일이었다.

대신 학생과 함께 연구실을 나와 근처 술 집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는 학생에게 막걸리 한잔을 건네며 위로했다. "앞으로 1년이 자네 인생을 바꾸는 새로운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후에 그 과목을 다시 수강하게 된 학생은 내 강의가 개설된 이후 수강한 어떤 학생보다 좋은 시험성적으로 최고 학점을 받아 졸업했다. 위로의 술 한잔이 가져온 힘이 었을 것이다. 술은 성적을 수정해달라는 문제의 시시비비를 논리적으로 따져 보지 않고도 교수와 학생이 서로의 입장을 공감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큰 힘을 가진 것이다.


이렇듯, 과거 오프라인의 소통 공간에서 술은 논리적인 소통보다 감성적인 소통을 촉진하는 중요한 매개체였다. 코로나 19의 시대를 살면서 아날로그 감성의 소중함을 새삼 느낀다. 술잔에 오가는 공감과 소통이 더없이 그립다.


공감하는 사람과의 동행은 내 삶을 기름지게 가꿀 수 있는 거름이 된다.



~생각하나~


단톡 방의 활성화로 공감을 위한 소통의 폭이 더 넓어진 요즘 잘못된 공감의 토대 위에 만들어진 단톡 방에 동거한다면 사회적인 이슈가 된 여러 사건처럼 순간 천 길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일부 정치인 들은 유권자의 공감을 훔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도 한다. 공감하는 무리들 간에 소통은 강화되고 점차 그 폐쇄적인 공감의 벽은 높아지고 있다.

소통은 폐쇄적인 공감이 아니라 열린 공감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은 소통하는 모든 것이 영원히 기록으로 남아 지울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아날로그적인 공감을 그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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