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과 선택
주변 지인의 자녀들이 성장해서 대학을 가고 직업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모의 직업이 자녀의 진로선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엔지니어를 부모로 둔 자녀들은 성장해서 상당수가 엔지니어의 삶을 살거나, 의과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의 상당수는 부모가 의사인 경우가 많다.
가끔 사극을 보다가 조선시대 양인(양반, 중인, 평민)과 천인(천민)으로 구분되는 평등하지 않은 신분제도 하에 내가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끔찍한 생각을 하곤 한다. 만일 천인으로 태어났다면 그들은 오늘날 인간이 누려야 하는 행복추구의 기본권마저도 박탈당하고 세상을 만났으니 말이다.
최근 직업에 관련한 사회 현상을 연구한 몇몇 학술자료를 탐색해보았다.
"부모의 직업과 자녀의 진로선택" "직업의 세습"에 관한 주제로 검색한 학술자료 가운데 우선 눈에 띄는 몇몇 제목의 연구결과들이 그동안 어림잡아 생각했던 나의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부모세대의 직업적 지위가 자녀세대의 비정규직 여부에 미치는 영향"이란 주제의 연구에서는 부모의 비정규직 여부가 자녀의 직업적 지위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의 경제활동 진입 당시 부모가 비정규직이면 자녀도 비정규직으로 일하게 될 가능성이 높고, 부모가 정규직이면 자녀도 정규직으로 일 할 가능성이 높았다고 한다. 노동시장 분절론은 직업의 세습을 강력하게 뒷받침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에서의 교육을 통한 사회이동 경향에 대한 연구"에서는 전체적으로 지위의 세습이 상당히 이루어지고 있고, 특히 지위의 양극단에서 강한 세습이 나타났다고 한다. 즉, 부모의 학력 수준, 경제적 수준, 전문직 여부에 따른 자녀의 직업 일치도가 상관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빈곤의 세대 간 이전 : 부모의 빈곤 지위가 자녀의 빈곤 지위에 미치는 영향, 등등.....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사람의 능력도 대물림되는 사회" 일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는 불평등의 문제를 극복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를 안고 있지만 이것은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최근 LH 사태를 보면서, 문제인 정부 출범 시 많은 국민에게 희망을 준 가장 중요했던 메시지는 경제 문제나 북한 문제도 아닌 "과정도 공정하며, 결과도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한 것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가 얼마나 더 공정한 사회로 진보했는가에 대해선 의구심이 든다. 이러한 불공정은 직업이나 신분의 세습과 무관하지 않다. 불공정으로 축적한 돈과 지위는 자녀의 진로와 미래에 막대한 역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왕조시대의 신분제도가 오늘날 직업의 세습으로 되살아나서 누구나 "행복한 삶"을 추구할 수 있는 인간의 기본권리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 관리들의 행동 규범으로 알려진 4 불 3 거(四不三拒) 정신과 같이, 공무원이란 직업을 단순한 "Job"으로 인식하기보다 "소명의식"으로 받아들이는 공무원이 많아지고,
"국민의 보다 행복한 삶"을 만들기 위한 법과 제도를 밤샘 연구하는 전문화된 연구 직종으로 정치인의 역할과 기능이 바뀐다면 미래 사회는 희망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국가안보와 치안질서, 사회복지가 모두 잘 실현되고 있다고 해도,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과 직업선택의 평등한 기회와 정당한 경쟁이 보장되는 것이다.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다는 전제가 참이어야, 승자는 고되고 힘든 경쟁의 과정을 이겨낸 기쁨을 만끽할 것이고, 패자는 기꺼이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승자에게 박수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부모 찬스를 통해 승자가 된다면 이긴 자의 가슴에는 기쁨보다 오만이, 패자는 박수보다 증오의 씨앗을 이 사회에 뿌리게 될 것이다.
~생각 하나~
궁극적으로 누군가가 직업을 선택한다는 문제는 오랜 시간 교육받고 성장한 한 사람의 인생에 가장 중대한 사안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자신과 가족과 사회가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시작이다.
사회에서 불합리와 불공정의 시작은 불합리한 사람을 키워낸 우리 교육의 문제이다.
자녀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자식 둔 부모 모두가 같을 것이다.
다만, 자녀에게 공정함과 바른 경쟁을 교육하고 가리키는 책무는 우리 모든 부모에게 있지 않을까?
설령 부모의 욕심에 차지 않아도 열심히 노력하고 경쟁하며 사회의 일원이 되어가는 자녀의 모습을 한 발치 뒤로 물러나 응원하며 바라봐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