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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찬우 Sep 16. 2021

작아지는 방

악뮤 <낙하>를 듣고_1

빛의 속도는 소리의 속도보다 빠르다.

비가 오면 일단 번개가 '나 왔다'를 알리지만, 우리는 천둥이 칠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큰일이 났구나 알아챈다.

집단 생활을 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라서 처음에는 그저 등장만 했다가 갈수록 제 목소리를 낸다.


오늘도 지마의 뒷모습은 반 아이들에게 익숙하게 스쳐가고 잊혀진다. 지마는 자신이 본래 세상을 차갑게 대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그냥 목소리의 반은 묻히고 반은 묻은 채 100여일을 지냈다.


- 그냥 학교가 답답해요

- 어떤 상황에서 그런 기분을 느끼니?

- 전부 다요. 모든 상황.


담임교사는 지마의 말을 듣고 막막하다.

지마의 말을 나름대로 이해하기 위해 여러가지 경험을 떠올려본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된 반 아이들은 더이상 새로운 친구를 만들고자 노력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전학을 왔다는 말은 데면데면한 친구의 생일파티에 가서 햄버거를 체할듯 겨우 베어물고 마찬가지로 일면식만 있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사진까지 찍는 일을 매일 겪는 것과 비슷할 것이란 생각이 스친다.


- 음, 점심은 잘 챙겨먹어? 주로 누구랑 먹니?

- 시마랑 먹어요.

- 시마랑은 서로 잘 통하니?

- 그냥 그래요.


지마의 답변으로는 팩트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담임교사는 어렴풋이 친구 문제, 학업 문제, 코로나로 인해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가 적다는 상황 등이 복합적으로 지마를 힘들게 했르리라 짐작할 뿐이었다. 너무 원론적인 짐작이어서 무엇부터 도와주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친해질 수 있을 것만 같은 아이에게 지마를 신경쓰라고 언질을 주어야 할까? 아니다. 교사가 이렇게 개입하는 걸 반 친구들이 알면 지마를 같이 노는 친구가 아니라 돌봐주어야 하는 대상으로 볼 수도 있을 거다.


- 지마야, 아무래도 나에게 털어놓기 힘든 일도 있을 것 같은데 상담 선생님께 한번 가 볼래?

- 상담을 하면 현실적으로 뭐가 나아져요?

지마의 질문은 말 그대로 상담의 효용을 따지는 것이었다. 그 순수한 물음에 담임은 잠시 머릿속이 하얘졌다가 경고등이 울렸다. 담임은 자신이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 중요한 것을 선택하고 그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위치에 왔다고 느낀다. '어른이란 이런 것인 가보다'. 가까스로 별 것 아니라는 듯 꾸며낸다.  

- 어쩌면 지마의 답답함은 너무 복합적이어서 스스로 답답한 이유를 표현하기 힘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럴 때 상담을 받으면 도움이 된다더라.

- 담임 선생님하고 상담하는 걸로는 부족한가요?

- 아무래도 전문 상담 선생님은 네 마음을 조금 더 깊게 들여다 봐 주실 것 같아서...

- ...그럴게요.

지마는 얕게 한숨을 쉬며 동의했다. 지마는 담임도 현실적으로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을 거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겉으로 봐서는 아무도 '악'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무언가 눈에 보이는 악한 세력이 있었다면 지마의 답답함이 좀 누그러들게 만들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지마를 대놓고 따돌림 시키는 학생이나 교사가 있다거나, 강요된 자율학습 시간이 자신에게 정신적 스트레스를 주었다거나, 물리적/언어적 폭력이 있었다거나. 지마는 정치적인 올바름이 보장되는 공간에 있었고, 그에게 달려드는 악의 무리는 보이지 않았다. 그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무언가가 지마를 자꾸 옥죄어오는 느낌이었다.


'상담을 받고도 계속 답답하면 어떡하지?'


지마에게는 선택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답답함을 안고 살다가 학교에서 가슴이 터져 죽음을 맞이하고 그 순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람들의 관심 받기, 학교 밖으로 나가서 답답함이 지속되는지 확인해보다가 답답함이 계속되어 누구의 관심도 받지 않고 가슴이 터져 쓰러지기... 학교 밖에서 답답함이 없어진다는 보장도 없다. 남과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데서 오는 불안감이 답답함을 대신할 수도 있다. 지마는 자신이 벽이 자꾸 움직여서 좁아지고 있는 방 안에 갇혀있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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