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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안 Mar 20. 2024

안녕, 나의 두 번째 생일


그토록 꿈꿔왔고, 합격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대학에 떨어졌다. 상실감과 충격은 상당했다.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였다.



재수를 생각했으나 다시 오지 않을 스무 살 새내기 대학생이란 로망을 버릴 순 없었다. 그리하여 유일하게 합격한 모 대학교에 일단은 들어가기로 했다. 맛보고 싶었다. 새내기 대학 생활을. '대학생'이라는 신분을. 캠퍼스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싱그러운 활기와 설렘들을.



그토록 원했던 1지망 의 최종 불합격을 확인했을 때, 12년간 공부한 게 물거품이 됐다고 생각했다.(뭘 그렇게까지 생각했는지 나 원참) 대학 입시가 인생의 방향을 결정한다고 믿었기에 지독한 열패감에 시달렸다. 이땐 그랬다.



그러나 내가 갈거라 전혀 생각지 않았던 대학교의 캠퍼스 생활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마음 맞는 같은 과 친구들도 재밌고 좋았다. 그르다 개강 후 3주쯤 지난 3월 20일의 이른 아침. 창문을 통해 맑고 신선한 햇살이 기숙사 침대를 포근히 덮었고, 돌연히 나는 이런 결심을 한다.



'그래, 하나님은 분명 계셔. 확신이 들어. 오늘을 기점으로 정말 하나님이 계시다는 걸 제대로 믿고 살아보자.'



그리하여 나는 3월 20일을 내 두 번째 생일로 정하게 되었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든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만큼은 분명히 믿자고 다짐하면서.

 


다시 돌아봐도, 왜 이런 깨달음이 생겼고, 왜 그렇게 마음을 먹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침 햇살이 방 안 가득 들어온 것처럼, 그렇게 내 마음에 믿음이란 햇살이 이날 가득 들어찼던 게 아닐까 싶다. 이렇게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하지만 이때의 확신은 마음 깊숙한 곳에서 사방으로 펴져나가 분명 마음을 따스하게 감싸주었다. 마음을 온기로 물들이고, 충만하게 했다.



이십여 년이 지난 오늘, 다시 그 순간을 머리와 가슴으로 복기해 본다. 물론 살아가면서 '대체 이 하나님이란 분은 지금 왜 가만히 있는 건가?' 하고 원망과 분통을 터트릴 때도 있었다.(많았다) 그래도 결국은 어찌 됐건, 이해가 잘 안 가도, 일단 내 마음은 알고 계실 거고, 뭔가를 하고 있으시겠지라고 생각을 한다.



대학 입시의 실패는 시작에 불과했다. 그 이후로도 나는 학사장교 시험, 자격증 시험 등 무수히 많은 시험에 떨어졌다. 대학원 때 결국 논문을 못 써 제 때 졸업도 못했고, 중요한 인턴 과정도 중간에 나가떨어졌다. 갖가지 실패가 기본값인 게 인생이었고, 내 뜻대로 되는 게 거의 없는 게 삶의 민낯이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어찌 됐건 계시다는 이 믿음이, 지금까지 나를 붙잡아주었음생각한. 이 작고 희미한 믿음이 계속 나를 지탱해주는 끈이 되어주기를. 그렇게 내년 3월 20일까지 다채로운 실패와 성공, 슬픔과 기쁨을 잘 버무려 살자고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안녕,

친애하는

나의 두 번째 생일,

3월의 스무 번째 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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