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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은 생일답게, 조용히

by 김이안


내 생일이 카톡에 뜨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나는 생일즈음 다시 한번 생일이 비공개되어 있는지 확인한다. 체크 완료. 좋아. 이래야 생일 축하 답장 올무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그래도 기어코 내 생일을 기억하고 축하해 주는 몇몇 이들. 이런 사람들은 마음이 고맙다. 그래서 마음을 담아 진심을 표한다. 당신들도 대단해.


아이들이 자라는 걸 볼수록, 생일에 부모님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나란 인간, 사람 만들려고 나의 상상을 넘어선 인내와 헌신을 내게 들이부으셨구나. 그래서 어느 정도 사람 구실하는 지금의 내가 됐구나. 생일은 부모님께 경의와 감사를 표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


딸아이의 생일축하송과 페이스톡으로 보는 아이들 얼굴에 마음이 환해진다. 그래, 나에겐 너희들이 생일 케이크고, 환하게 타는 촛불이다. 너무 귀하고 예뻐서 차마 후~ 하고 불 수가 없구나. 그렇게 계속 내 마음속에 환하게 타올라주렴.


아내에게. '내 아를 낳아도'서 고맙다. 당신 덕분에 창조의 섭리와 생명의 신비를 다시금 깨닫는다. 15년 다닌 직장에서 퇴직 후 멘탈이 많이 약해진 그대. 너무 허탈해하지 말고, 불안해하지 말고, 차근차근 인생 2막을 준비하길. 아직 그대는 젊다.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내가 조력자가 되겠다. 당신 인생의 서사를 돌아보며, 새롭게 펼쳐질 서사를 기대하자.


생일 날. 인생숙제와도 같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완독 했다. 이게 제일 뿌듯하다. 이게 찐 셀프 선물이다. 내가 1600페이지에 달하는 벽돌책을 드디어 돌파하다니. 역시 고전은 고전이다. 확실히 여운이 남아. 찐하게. 그런데 이놈의 러시아식 요상망측한 이름은 끝까지 적응이 안 됐지. 그리고 스토리의 흐름을 타기 까지 역시나 시간이 오래 걸리더군. 그래도, 정말 묵은 변비와도 같았던 인생숙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어냈다. 이 마음의 쾌변감. 내가 해냈다.


이로써 나의 독서경지는 한 차원 올라갔고, 독서자신감은 뿜뿜 해졌으니. '나는 말이여, 이제 카라마조프가 형제들 완독한 사람이여~' . 이제 그 어떤 벽돌책도 두렵지 않다. 다 드루와, 드루와. 나의 인생 멘토. 차인표 씨의 말이 맞았다. '카라마조프가'를 읽고 나니 그 어떤 두꺼운 책도 이젠 두렵지 않아. 다 소화해서 씹어 삼킬 수 있을 것 같아.


다음 책은 <돈키호테> 너로 정했다. 너도 내 마음속 한 구석을 차지하는 짐 같은 책이었지. 언젠가는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지만 도무지 손이 닿지 않았던. 아니 외면하고 싶었던. 그러나 나는 싱어게인 19호 가수의 '로시난테'를 듣고 결심하고 말았지. 카라마조프 다음엔 너다. 기다려라. 그래서 난 방금 널 주문했지. 내 품으로 오거라. 야생마 같은 너를 잘 조련해주마. 나의 것으로 삼아주마. 잘근잘근 씹어 삼켜주마.


생일밤을 분위기 있게 마무리하기 위해 조용한 카페에 들어선다. 따듯한 레몬티 한 모금씩 홀짝이며 감사일기를 쓴다. 그래, 살아있다는 거부터 시작해서 모든 게 감사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음악을 들으며, 멍을 때리다가, 책상 위에 15분 엎드려 있다가, 이렇게 뭔가를 쓴다. 그래, 뭔가를 써야 그래도 기억에 오래 남지. 허전한 2프로가 채워지지.


생일은 생일답게 조용히 보내자고 해놓고선, 그렇게 카톡 생일 비공개를 체크하고 또 체크하고선 브런치에는 대놓고 생일이라고 떠들고 있다. 이 무슨 모순이고 자가당착인가. 그런데 앞으로 매년 생일마다 어김없이 브런치에는 뭔가를 남길 것 같긴 하다. 이상하게 남겨야 할 것 같은, 남겨야 성이 풀릴 것 같은, 오히려 깔끔한 마무리가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있다. 확실히 여기서는 수다쟁이고 떠벌꾼이구나. '여러분 저 생일이랍니다~!' 나는 이렇게 생일을 생일답게 조용히, 떠들며 떠나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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