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나의 베프인가 봄
나는 부지런 떠는 갓생러라기에는 2%쯤 아쉽고, 그냥 사는 걍생러라기에는 또 하루가 상당히 치밀한, 그 중간 어디쯤에서 살아가는 13년 차 프리랜서다. 초보 프리랜서 때는 어딜 가고 누굴 만나든 듣는 질문이 있었다. “불안하지 않아?” 그런데 해를 거듭할수록 만나는 사람들은 내게 이렇게 묻는다. “연차가 쌓여서 그런가, 전보다 훨씬 여유로워 보여. 비결이 뭐야?” 비결은 무슨. 많은 프리랜서가 그렇듯, 나 역시도 그저 불안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을, 휩쓸리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나만의 규칙적인 루틴을 만들었을 뿐이다. 덕분에 적당히 바쁘고 적당히 여유로운 일상을 누릴 수 있게 되었으니 자나 깨나 일 걱정하던 초보 프리랜서 시절과 달라 보일 수밖에.
프리랜서의 삶은 생각처럼 그리 자유롭지 않다. 나의 시간이 갑의 시간에 맞춰 흘러가는 일도 부지기수라 그 이름처럼 결코 ‘프리’하지만은 않다. 자유로운 영혼이라 불리던 내가 프리랜서가 되고 파워 J형 인간처럼 계획 짜기의 달인이 되었을 정도다. 하지만 시간보다도 불안에서 더 자유롭지 못하다.
불안은 그 모습도 다양하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며 가용할 수 있는 시간 한도 내에서 최대치로 일을 받고는 제대로 못 해내면 어쩌나 불안에 떤다. 그렇게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마감하고 나면 또 ‘갑’님의 맘에 안 들어 더 이상 의뢰가 들어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불안해한다. 분명 다음 작업도 의뢰할 것처럼 내 스케줄을 묻는 메일을 받았는데 일주일쯤 연락이 없으면 ‘나 잘렸나?’ 싶은 불안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다행히 이런 불안이 현실이 된 적은 없다. 하지만, 불안은 늘 고질병처럼 불쑥불쑥 튀어나와 심신을 뒤흔든다. 그 불안을 다루지 못했던 시절, 나는 불안이 나를 잠식하지 못하게 아침부터 밤까지 쉼 없이 일했다.
열네다섯 시간씩 일하는 패턴이 반복되던 어느 날이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왼쪽 팔이 저릿저릿했다. 귀에서는 ‘삐’하는 이명이 들리고 머릿속은 백지장처럼 하얘져서 몸을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가까스로 일어나 목을 좌우로 까딱여 보았는데 어라, 오른쪽으로 고개가 아예 안 돌아가는 거다. 저린 팔은 주물러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손목은 왜 이렇게 뻐근한 것이며 발은 또 왜 이렇게 부어 있는 건지. 두통 역시 약을 먹어도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등줄기에 식은땀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하나. ‘이러다가 나 한순간에 골로 가겠는데?’ 그제야 군데군데 성치 못한 내 몸이 눈에 들어오면서 두려움이란 세 글자가 쏟아지는 우박처럼 파바박 내 머리를 강타했다.
이 사달의 원흉은 불안이었다. 불안에 휩쓸려 자는 시간 빼고 밥도 책상 앞에서 먹을 정도로 일에 매여 살았다. 제대로 된 밥을 먹었을 리 만무했고, 거북목은 당연지사에 반듯한 곳이 하나도 없을 만큼 내 몸은 비뚤어져 있었다. 속 건강도 좋을 리가 없었다. 콜레스테롤은 물론 당화혈색소며 지방간, 생전 들어본 적 없는 것들의 수치에 빨간불이 켜졌다. 한 1인 가구 프리랜서가 과로로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 갔지만, 너무 늦게 발견되어 유명을 달리했다는 단신 보도 화면이 머릿속에 플래시백처럼 흘러갔다.
바로 병원에 가 치료도 받고 자세 교정을 위해 필라테스 수업도 끊었다. 하루에 한 시간은 무조건 공원에 나가 걸었다. 밥은 책상이 아닌 거실 테이블에서, 배달 음식이 아닌 건강한 집밥을 만들어 먹었다. 일도 줄였다. 8시간 넘게 일하지 않도록 하루를 다시 꾸렸다. 그런 몸 상태로 일하면 내놓을 결과물은 안 봐도 뻔했다. 업체에 납품하기에는 나쁘지 않았더라도 그 이상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을 결과물. 발전 없는 프리랜서는 도태되기에 십상이니 당시로서는 일의 양을 줄이고 질을 올리는 게 옳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예상대로 움츠리고 있던 불안이 슬금슬금 고개를 내밀었다. 불안은 만나기 싫은 데 자꾸 보자고 연락하는 사람 같았다. 친구는 아닌데, 이 일을 때려치우지 않는 한 볼 수밖에 없는 사람. 게다가 내게 미치는 영향력이 제법 강해서 기분 상하게 확 차단해 버릴 수도 없는 사람. 불안이라는 악마가 속삭였다. ‘너 이렇게 일 줄여도 돼?’, ‘다음 달 카드 값은 어쩌려고?’, ‘이번에도 거절하면 다음에 일 안 들어온다?’, ‘그러다가 영영 거래처랑 굿바이 하는 거야.’
그런 불안과 거리를 두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불안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확장될 시간조차 주지 않는 것이다.
일이 없는 동안에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인풋을 쌓았다. 책을 읽거나 다른 이의 번역물을 보면서 좋은 문장을 적어두고 표현도 수집했다. 나도 다음에 써먹어야지 하면서. 이력서도 수시로 정리해 업체에 보냈다. 덕분에 다시 연락이 온 거래처도 있고, 새로 거래를 튼 업체도 있었다. 그렇게 일이 이어질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불안을 줄였다.
허투루 보내기 쉬운 매일 아침은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으로 채웠다. 눈뜨자마자 모닝 페이지를 쓰고 따뜻한 물을 한 잔 따라 마시면서 일과 상관없이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그런 다음에는 운동을 했다. 정신력과 체력을 기르기 위한 아침 습관이었다. 미생의 장그래가 그랬듯이 언제 찾아올지 모를 불안을 견뎌주고 일을 꾸준히 잘 해낼 수 있게 받쳐줄 몸과 마음을 만드는 이 루틴은 점차 나를 불안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게 잡아주는 닻이 되었다. 이 루틴 덕분에 쉼을 버려진 공백의 시간으로 생각하지 않고 양분을 채울 수 있는 여유의 시간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프리랜서로 사는 한 불안은 평생 따라다닐 수밖에 없는 존재다. 절친도 아닌 것이 참 끈질긴 인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는 가끔 밭은 마감이라든가 판권 계약 문제 등의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일상이 흐트러져 불안이 다시 고개를 내밀더라도 가볍게 인사만 건네고 적당히 분주하면서도 여유로운 삶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 일이 안 들어오면 만들면 되지, 초낙관적인 자세로 일을 만든다. 루틴이라는 닻이 튼튼하게 박혀 있으니 불안의 파도가 예전만큼은 두렵지 않은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