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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Mar 20. 2024

비장해지지 말 것

미물답게, 힘 빼고 사부작사부작

지난해 나는 생에 처음으로 꽤 큰 수술을 받았다. 처음 병명을 진단받았을 때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나 싶어 삶이 막막해졌지만 그것도 잠시, 당장 죽을병은 아니라니 천만다행이 아닌가 하면서 이내 체념하고 해야 할 일, 그러니까 각종 검사와 수술 등의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아직 무사히 살아있다.  

재밌는 것은 건강에 빨간불이 들어오자 정말로 그간 살아온 날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에 주르륵 흘러가더라는 사실이다. 그렇게 돌아본 나의 44년 인생은 ‘아등바등’이라는 네 글자로 압축되는 듯했다.


나는 “첫째가 잘해야 동생들도 잘 되는 거다”, “항상 첫째가 모범이 돼야 해”와 같은 말을 인이 박이도록 듣고 자랐다. 외가에 가면 그게 유독 심했고 그래서 사실 난 외가에 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외가 친척들이 가까이 살기도 했고, 부모들이 자기 형제자매들과 모이는 걸 좋아했던지라 어쩔 수 없이 자주 모였다. 지금으로 치면 공동육아일까. 그 시절 또래가 많았던 우리는 참 많은 것들을 같이 했다. ‘뭐가 좋다더라’ 하면 부모들은 아이들을 그것을 가르치기 바빴고, ‘어디가 좋다던데?’ 하면 어디에 데려가기 바빴다. 심지어 사촌들과 똑같은 옷을 사서 입히기도 했다. 사촌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쪼르륵 서 있는 사진도 있으니 이건 절대 부정할 수 없는 빼박캔트다. 누가 첼로를 배우니, 다른 이는 바이올린을 배웠고, 덩달아 나는 피아노라도 배워야 했다. 그렇다 보니 공부며 생활 태도 등 면면에서 자연스럽게 부모들은 자식들을 비교했고, 뭐 하나라도 잘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됐다. 

 

부모들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또래의 다른 사촌들이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나는 콩나물시루에 나란히 서서 고개를 쳐들고 있는 한 가닥 콩나물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든 그 틈바구니에서 쑥쑥 자라나 내 존재를 증명하고자 애를 쓰는 기분이랄까. 콩나물 대가리 위로 쏟아지는 물이 ‘쑥쑥 자라라, 제대로 못 자라면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질지도 모른단다’라고 세뇌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뭐라도 되어야 한다고,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 인정하기 싫지만 난 완벽히 세뇌당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공부라도 잘하든가, 악기라도 잘 다루든가, 그림이라도 잘 그리든가, 아니면 몸이라도 잘 써서 체육 특기생이라도 되든가 했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그 무엇도 아니었다. 공부는 못 한다고 할 순 없지만 잘한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는 수준이고, 피아노도 그림도 곧잘 하지만 재능으로 포장할 정도는 안 되었다. 체육 쪽으로는 뭐, 써 봐야 손가락만 아프니 타자칠 힘을 아끼기로 하겠다. 내가 대단하지 않다는 걸, 평범하기 그지없는 존재라는 걸 깨닫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뭐라도 해야지 싶어 아등바등하는 삶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나는 갈 수 있는 최대한 좋은 대학에 갔고, 이름만 대면 아는 회사에도 운 좋게 들어갔다. 5년 만에 회사 생활은 때려치웠지만, 그 후로 나름 전문성을 지닌 직업도 가졌다. 살아 있는 한 뭐라도 되기 위해 몸부림치는 삶이었다.


수술실로 이동하는 침대 위에서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이불속에 감춰진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속으로 되뇌었다. ‘괜찮을 거야. 아무 일 없을 거야. 잘 이겨낼 수 있어. 벌써 죽기엔 너무 젊잖아. 해 보고 싶은 일이 아직 많은걸.’ 온갖 주문 같은 말들로 두려운 마음을 다독였다. 순간 예전에 내가 번역했던 소설에서 제 부족을 지키기 위해 전쟁터에 나갔던 어린 소년의 비장한 모습이 내게 겹쳐 보였다. 당장 죽을병도 아니고 수술하고 잘 관리하면 괜찮아질 거라는데 난 뭐가 이리 비장한가. 그러고 보니 나는 그동안 삶의 순간순간을 너무 비장하게 마주하지 않았나 싶은 것이다. 왜 그렇지 않나. 잘해야지 하면 괜히 더 힘이 들어가 오히려 못 하게 되기도 한다. 때로는 못할 것이 두려워 지레 주춤주춤 물러나면서 안 하는 거라고 합리화의 탈을 쓰기도 하고. 삶이란 전쟁터에서 어떻게든 이기는 쪽에 서고 싶었으니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었을까. 콩나물시루에서 고개를 조금 덜 내밀어도 다른 콩나물들 사이에 적당히 얽혀 있으면 함께 뽑혀 나가 음식으로 쓰임을 다하는 건 똑같다. 한 가닥 도드라진다고 뽑아서 특별한 요리를 할 것도 아닌데 무엇하러 그리 빳빳하게 목을 치켜세우지 못해 발버둥 쳤는지 원. 고개 쳐들려고 애써봐야 목만 아프지. 잘하면 어떻고 못하면 또 어때서. 그냥 좀 편하게 살아도 되는데, 뭘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고 무언가를 해내지 못해 안달했을까. 


꾹 말아 쥐었던 손에 힘을 풀고 눈을 떴다. 수술 대기실 천장을 응시한 채 생각했다. 수술이 끝나고 나오면 다시 태어나는 거다. 괜히 비장해지지 말자.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고 힘 빼고 살자. 해 보고 싶었지만 못 할 것 같아서 하지 않았던 일들을 하며 실패도 더 많이 맛보자. 아무리 삶이 전쟁이어도 늘 승리만 하며 살 수는 없다. 지는 경험이 내 삶을 더 충만하게 만들어 준 적도 분명 있었잖아.


지금 글을 쓰며 돌이켜보니 그런 생각을 하던 그때도 살짝 비장했던 것 같지만, 뭐 어떤가. 지금의 나는 ‘뭔가를 해내겠어! 대단한 나를 보여주겠어!’라는 비장한 마음을 조금은 멀리 두고 좌절을 거듭 맛보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으니 이만하면 발전했지. 물론 하루아침에 나아질 리 없다. 얼마 전에도, 올해는 내 글을 많이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으니 뭐라도 써야지 하면서 하얀 종이를 마주했는데 막막한 것이다. 뭘 써야 하지, 어떻게 써야 하지 이런 생각 속에서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있었는데 순간 또 ‘그래, 뭔가를 보여주겠어!’ 하면서 비장해진 내가 보였다. 그래서 얼른 정신 차리고 쓸 수 있는 이야기부터 쓰기 시작했더랬다.


그렇게 비장해지려는 나를 빠르게 알아채고 힘을 빼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하다 보면 적어도 훗날 내 삶을 아등바등이 아닌 조금은 더 편안하고 아름다운 단어로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세상과 이별하게 되는 날이 와도 참 좋은 생이었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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