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식도 없이 학교를 갔습니다.

딸아이의 입학을 축하하며

by 로지

아이가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동영상에 빠져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엄마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었다고는 하나 마음이 편한 것만은 아니다. 보완의 의미로 시행한 것이 하루 한 권 책 읽기 프로젝트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행동은 제법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행동이다. 발성은 크게, 다양한 목소리를 내며 손짓에 발짓 가끔은 액션도 보이며 신나게 읽어줘야 아이들도 재밌어한다. 그렇다보니 책 읽어주는 시간이 줄어들다못해 아예 읽어주지 않는 날이 더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책을 읽어야만 티브이나 유튜브를 볼 수 있다는 약속을 했다.

첫째는 온라인 수업이 끝나면 한 권을 읽고 독후감을 쓴다. 둘째는 어린이집을 다녀오면 한 권을 읽고 놀이를 시작한다. 막내는 덩달아 책으로 놀기 시간이다. 덕분에 엄마 배터리가 더 빨리 방전되는 부작용이 생겼다.


문제는 엄마의 욕심과 아이의 마음이 상충하는 그 어느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처음 한 두 번은 엄마가 책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신나게 책읽고 독후감을 쓰던 첫째가 어느 순간부터 요령을 피울 생각을 한다.조금 더 쉬운 책. 조금 더 그림이 많은 책. 아예 글밥이 거의 없는 막내용 책을 가지고 오기도 한다. 8살이 읽겠다고 가져오는 책이 '데굴데굴 통통'이라니. 뒷목을 잡고 넘어가겠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물어 유튜브를 너무 많이 봐서 저렇게 단순한 걸 원하게 되었나까지 갔다. 너무 간 것 같다. 그건 아니라는 걸 나도 알고 당신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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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Scott Higdon on Unsplash



어디까지를 자율로 허용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양육의 전반에 모두 적용될 듯 하다. 허나 여기서는 독서와 독후감으로 한정짓자. 조금 더 글밥이 많고 내용이 좋은 책을 읽었으면 하는 엄마 마음은 아랑곳않는 첫째. 어느 수준까지를 '읽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여겨야하는 건지. 그러고 보면 공룡책을 들고와서 "크앙~"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보이는 둘째랑 비교해 보니 엄마의 접근이 다른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갈피를 잡기가 더욱 힘들다. 그렇다고 '데굴데굴 통통'을 허락할 수는 없지 않을까?


<첫째딸로 태어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만>에는 첫째딸이 태어나면서부터 놓여지는 환경적 상황과 부모의 태도 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제일 먼저 태어났고, 여자로 태어났기 때문에라고 설명되는 자연스레 강요된 의젓함, 책임감 등과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야한다는 강압을 첫째들은 느낀다고도 한다. 어느 정도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나도 첫째딸이었기 때문에 같은 압박감을 느낀 적이 있었고, 능력 밖의 일들에 대해서도 완벽하게 해내야만 한다는 생각때문에 힘들었던 기억도 떠올랐다. 그것들을 인정하고 내려놓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말이다. 그게 나쁜 건가?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을까?


책의 저자는 이야기한다. 첫째가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고 어떤 마음인지를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기르는 동안 부모도 인지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 그리고 아이도 스스로가 그렇게 자란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래야 살아가는 나날들을 대처하기가 수월하다고 말이다.




첫째에게 언제 처음 유튜브를 보여줬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이런 에미라니.) 티비 시청도 크게 제약없이 시작했었고, 유튜브도 그리 늦지 않게 시작했다. 미디어의 노출의 부작용은 부모가 직접적으로 느낀다. 확실히 동영상 시청이 길어지면 아이들이 충동을 자제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쉽게 화내고 잠시도 가만히 있는 걸 못 견뎌하는 것도 보인다. 그렇기에 영상 노출을 최대한 자제시키려고는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우리가 어릴 때는 티비 많이 보면 바보된다며 바보상자라고 부르면서 못 보게도 했지만 티비 많이봐서 바보된 사람은 없다. 나 역시 학교도 안가는 일요일 아침 디즈니 만화를 보겠다고 새벽에 일어나 미키마우스와 도널드 덕을 보고 깔깔 거리고 다시 잠들었었다. 무조건 막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면 스스로 조절하고 분별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쪽으로 지원해주는 것이 맞는 것은 아닐까?


일전에도 쓴 적이 있지만 부부가 저녁 운동을 하는 시간엔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유튜브를 시청한다. 각자 기기 하나씩을 들고 각자가 원하는 영상을 플레이해서 보고 있다. 어제는 그 시간에 큰 아이가 유튜브를 보다 말고 투명 핸드폰 케이스가 있으면 하나만 달라고 한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유튜브에서 핸드폰 꾸미기가 나왔는데 그걸 실제로 해보고 싶다는 거다. 마침 쓰지않는 투명 케이스가 있어 건네줬다. 아이는 줄곧 몰입해서 케이스를 꾸몄다. 종이를 자르고 색을 입힌다. 케이스에 수성 물감으로는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 걸 몰랐던 아이는 물감으로 하고 싶다며 방법을 찾는다. 그렇게 공작시간같은 유튜브의 시간이 끝나고 우리는 모두 잠자리에 들었다.


조금은 편해진 마음으로 잠자리에 누웠다. '그래, 유튜브를 본다고 무조건 영상에만 빠져산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어.' 물론, 시력이 나빠진다던가, 자극적인 영상 시청이 궁극적으로 독서에 집중력을 떨어뜨린다는 점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좋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지않는가. 아이는 아이의 속도로 아이의 취향대로 자라날 것이다. 그게 꼭 엄마 마음에 들거라는 생각이 잘못된 것이지. 믿어라. 가장 어려운 말인 듯 하다.


처음 학교를 다녀온 날부터 마음 속 깊이 자리잡은 '내 아이만 뒤쳐지면 어쩌지?'라는 불안함이 문제다. 한글을 읽고 쓰기는 하지만 다른 아이와 비교해 본 적이 없다. 솔직히 다른 아이와 교류하면서 얼마나 하는지 비교해 볼 상황이 없었다. 관심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입학 때 쯤이면 수는 얼마나 알아야하는지, 덧셈은 하는데 뺄셈은 알려줘본 적이 없는데 괜찮을지 머릿속이 복잡하다.


우리는 항상 이해력이 빠른 아이를 사랑하는 한편, 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는 아이는 아주 짧은 기간 내에 포기하는 나쁜 습성을 갖고 있다. (중략) 초기의 성적 결과에 따라 잘하는 아이에게는 더 좋은 기회가 주어지고, 그 결과 한층 더 성적이 높아진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p. 171


엄마가 이렇게 불안해 하는데에는 '마태효과'의 영향도 크다. 처음 학교에 갔으니 선생님 눈에 들어 학교 생활이 편했으면 하는 이기적인 마음. 미리 학습을 해놓으면 학교에서 질문이 던져졌을 때 '아! 내가 아는 것!'하고 자신감을 가지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 결국은 아이를 위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결국 아이의 실력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면서 엄마는 욕심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무엇 때문인지 정말 몰라서 이러는 걸까?


어떤 식으로든 아이는 아이의 속도대로 배우고 자라날 것임을 믿어주는 부모가 되자. 그게 꼭 누군가보다 뛰어나길 바라지 말자. 이렇게 자꾸 쓰는 이유는 첫째딸이라 그런지 기대치가 높아 돌아서면 기본을 잊게 되는 부모의 욕심가득한 마음 때문임을 이 자리를 빌어 밝힌다. 다른 무엇도 바라지 말고 건강하고 즐겁게 학교 생활을 마칠 수 있길 기도해주자.

우리 딸. 입학식도 없는 개학이었지만... 입학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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