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통해 나를 돌아보는 시간
요 며칠 떠들썩한 사건이 있다. 바로 경주 스쿨존 사고다. 아직 논란이 많은 이 이야기를 꺼내든 이유는 잘못을 따지기 전에 한 번 생각해 보고 싶어서이다. 나도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다. 내 아이가 위험한 일을 당하고 난 뒤에 화가 머리끝까지 나는 경험을 해보지 않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영상을 보고 제일 먼저 할 수 밖에 없는 생각은 '저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인가?'라는 거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별별일을 다 겪는다. 특히 다양한 연령이 모여노는 놀이터나 공원에 가면 자신이 가진 힘의 우월함를 믿고 어린 아이들에게 폭력적으로 구는 아이들도 제법있다. 그래서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놀 때(특히 우리 아이가 어리다면) 더욱 유심히 살펴주어야한다. 언제 힘에 밀려 패대기쳐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던 일이 하나 생각난다. (쓰다보니 지금도 머리끝이 쭈뼛 선다.) 둘째(4세)가 어린이집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뒤따라 오던 7세 아이가 느리게 가는 아이가 답답하다며 밀어버렸다. 다행히 계단의 거의 끝에 다다른 지점이라 아이가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많이 놀라서 울었고, 트라우마로 인해 아이는 몇 달간 계단을 혼자 오르내리지 못했다. 당시 7세 아이는 불이 나게 줄행랑을 쳤다. 주위에 선생님들도 있었고, 심지어 그 아이를 데리러 온 학원 선생님도 있었지만 아이를 붙잡아 훈계하지 않았다. 무척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그 순간 도망친 아이를 끝까지 쫒아가서 응징할 여유가 내게는 없었다. 우선은 놀라서 울고있는 아이를 달래기 바빴다.
나중에 어린이집 선생님들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주의를 줄 수 있도록 당부를 드리고 돌아왔지만 꽤나 오래 나도 화가 났었다. 그 순간 잘못한 아이를 바로잡지 못했다는 것이 화가 난 것인지, 내 아이에게 사과를 하게 만들지 못한 것이 화가 난 것인지 대상을 알 수 없는 화가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주변에서 지켜만 보던 선생님들에게도 분노를 표출하고야 말았다. 그렇게 그저 화만 남은 상황이 어디 한 두 번이겠는가?
가해자 아이의 부모가 곁에 있어도 잘못을 바로 잡아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런 경우 백이면 백 어른 싸움이 되니 나는 되도록이면 내 아이를 보호하는 쪽으로 더 많이 움직인다. 솔직히 말해서 부딪혀 싸워봐야 개싸움밖에 안 되고 남는게 없다. 굳이 아이들 앞에서 어른들이 말도 안되는 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없다는 주의이기도 하다. 그럴 때 나는 아이들에게 정말 솔직히 말한다. "똥 밟은거라고 생각해. 개똥이야 개똥."
화라는 보따리를 펼쳐보면 그 안에는 정확하고 세밀한 감정들이 있습니다. 서운했고, 억울했고, 슬펐고, 걱정되었고, 불안했고, 좌절했고, 맥이 빠졌고, 지쳤고, 겁이 났던 것입니다. 원인은 상대 때문이 아니라 그 당신 원했던 자신의 욕구가 좌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화라는 감정은 억누르거나 상대에게 터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감정을 잘 보살피며 세밀하게 바라보고, 무엇 때문에 자신의 바람이 좌절됐는지 이해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엄마의 말하기 연습> P.95
이 책에서 말하는 기분대로 풀어보자면 둘째가 계단에서 넘어진 그 날 나의 화는 아이가 다칠까 걱정되었고, 크게 다칠 수 있었음에 겁이 났다고 할 수 있겠다. 어쩌면 다치지 않아 안도했기에 '겁이 났다'가 될 수 있는거다. 원래 사람은 최악의 상황을 순간적으로 상상하면서 더욱 화를 내기 마련이다. 진짜 아이가 다치기라도 했다면 화를 낼 겨를도 없다는 사실을 글을 쓰면서 깨닫는다. '화'가 났다는 건 상황이 끝난다는 의미라는 걸.
그 날 집에 돌아와서도 한참을 씩씩거렸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아이가 먼저 달려가 형아가 밀쳤다며 울먹거림과 동시에 가라앉는 것 같던 화가 다시 치밀어 올랐다. 그런데 말이다. 지금 돌아보니 그 아이도 잘못한 걸 아니까 무서워서 도망친거다. 알면 도망쳤겠는가? 잘못하고보니 주변에 어른들은 많고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사람까지 눈앞에 나타나니 냅다 줄행랑을 친거다. 아이는 이미 마음속으로 혼이 난 셈이다. 어른이 되서 그런 것도 모르고, 이제야 되짚어보면서 깨닫다니. 아직 진짜 어른되기는 멀었나보다.
물론 밀친 아이가 잘했다는게 아니다. 하지만 어느 때고 내 아이도 밀친 아이가 될 수도 있다. (옛날 어른들이 자식 키우면서 뭐든 단정짓는거 아니라고 했다. 그 말이 무슨 말인지 갈수록 깨닫는 요즘이다.) 잘못을 하면 어른들이 바로잡아주고 그러지 못하게 훈계하는 것도 맞다. 하지만 잘못을 바로잡아주는 것과 어른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화풀이를 하는 것을 칼로 자르듯 명확하게 구분해서 행할 수 있는 어른이 몇 명이나 될까? 솔직히 나는 지금 그 순간으로 돌아가도 '화풀이하는 어른'이 될 확률이 높다고 본다.
이렇게 쓰니 내가 되게 화를 잘 다스리는 사람처럼 가식을 떨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다. 한 때 나도 화를 다스리지 못해 앞에 끼어든 택시를 길 끝까지 쫒아가 앞지르기를 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미안하다. 그 시절 나는 꽤나 다혈질이었고 시비쟁이 싸움꾼이었다. 그렇기에 누군가와 시비를 붙고 싸움을 하면 내가 손해라는 더 잘 아는 것 같다. 결국 화는 돌고 돌아 나를 상처입혀야만 끝이 난다는 걸 꽤나 처절하게 배웠다.
첫째는 친구들 사이에 시비가 붙으면 그 상황에서 살짝 벗어나 지켜본다. 상황이 진정될 때까지 영향범위에서 벗어나 있으려고 노력한다. 반면에 누가 내 장난감을 뺏는 상황이 생기는게 싫어서 처음부터 박스에 놀잇감을 담아놓고 놀이를 시작하는 둘째도 있다. 이건 내 놀잇감. 누가봐도 영역이 확실하게 해 놓고 노는 것이다. 모두가 이런 성향일 줄 알았더니 막내는 다르다. 절대 뺏기지 않고 뺏고 물고 꼬집고 소리지른다. 덕분에 우리집은 늘 막내의 울음으로 시작해 막내의 소리지름으로 끝이 난다.
엄마의 성향을 아이들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나보다. 각각 성향은 다르지만 억울한 상황을 당하면(밀침을 당하거나 누가 때리거나 뺏었다면) 엄마가 아니라 아빠를 찾는다. 아빠는 억울함을 풀어주고 상대 아이에게 대신 말해주기도 한다. 엄마처럼 피하지만 않는다는 걸 아이들도 아는 것 같다. 그래서 엄마한테는 위로를 받고, 아빠한테는 복수(?)를 요구한다. 가령, 아빠가 혼내줘. 이런 식이다.
간혹 시비를 피하는 내 모습이 아이들을 약하게 만드는 건 아닌지 고민이 될 때가 있다. 무엇이든 정답은 없는 거지만 워낙 세상이 험하다보니 아이들에게 맞서 싸우는 법을 따로 알려줘야하는 건 아닐까 싶을때도 있다. 엄마가 너무 믿음을 못 주는 건 아닐까, 부모는 안전을 지켜주는 존재라는데 그 기준에 내가 부합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고민이 끝이 없다.
가능한 범위라면 즉각적으로 잘못을 바로잡고 내 아이가 피해를 입은 상황이라면 사과까지 받아주는 것이 맞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적반하장 아니라 더한 경우도 많다는 걸.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할 지 나는 잘 모르겠다.
아직 해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내가 '화가 난다'라고 하는 그 감정이 너무도 뭉뚱그려져 있다는 것을 조금씩 풀어낼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래야 나도 아이들도 조금 더 건강한 내면을 유지할 수 있지않을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