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대 걸그룹들이 사랑보다 증명을 택한 이유
에스파(aespa) 미니 2집<Girls>는 첫 주 판매량 100만장으로 한국 여가수(그룹포함) 최초로 발매 첫 주에 밀리언셀러를 달성했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나기도 전에 블랙핑크(BLACKPINK)가 정규 2집으로 두 번째 '초동 밀리언셀러'를 달성하였다. 케이팝의 주목도가 전후무후한 수준으로 올라온 지금, 걸그룹의 주목 역시 남달랐다. 2022년도에 데뷔한 걸그룹들의 음반 판매량 역시 점점 상승세를 이루어 가고 있었다. 올해 1월 데뷔한 케플러(kep1er)가 역대 걸그룹 데뷔음반 초동 판매량을 경신하였으며, 바로 다음달 엔믹스(NMIXX)가 이를 경신하였다. 그리고 순서대로 5월,8월을 르 세라핌(LE SSERAFIM)과 뉴진스(New jeans)가 차례대로 경신을 하였다. 그리고 모든 케이팝 팬들이 기대하는 '연간 1위'에는 대부분의 팬들이 아이브(IVE)의 'Love DIVE'와 ()아이들의 'TOMBOY'가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지금까지 나열한 그룹들의 공통된 점은 무엇일까? 대형기획사? 2022년 걸그룹 열풍의 중심? 그것만이 아니다. 이 걸그룹들은 더 이상 사랑하지 않고 있다.
1. 자신으로부터 시작된 주체적인 음악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케이팝은 흔히 '사랑'에 대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주목했다. 대부분의 남자 아이돌과 여자 아이돌의 경우 트와이스(TWICE)를 필두로 '자신이 노력하는' , '변치않는 사랑'을 말했다. 'TT'나 'Cheer up' 처럼 결국 음악이 말하는 주제가 도착하는 '대상'이 존재하였다. 이는 주로 3세대 그룹들을 위주로 형성되었지만, 4세대로 들어오면서 이는 완전히 전복되는 상황이 되었다. 아이브(IVE)의 'LOVE DIVE'의 나르시시즘을 표방한 자기애를 말하는가 하면, 'TOMBOY'처럼 사랑의 실패로 인해 더 강해진 자신을. 말한다. 사회가 변화하면서 개인을 중시하는 사회로 발전하였고, 여성의 주체성이 주목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시대상을 반영하는 듯이 주체적인 여성상을 말하는 걸그룹들이 많아졌고, 이전까지 대중들은 이를 '걸 크러쉬'컨셉으로 칭하며, 강한 음악과 주체적이고 공격적인 가사(주로 버림받은 사랑)를 말하였지만, 이제는 '주체적'인 것이 '걸 크러쉬'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올해 사랑받은 걸그룹들이 증명해내기 시작했다. 르 세라핌(LE SSERAFIM)의 'ANTI FRAGILE'이 바로 이 '증명'에 대한 가장 적합한노래이며, 가사는 주로 '자신을 약하다 칭하는 사람들에게 증명해 보이겠다는 포부'를 담았다. 이는 뮤직비디오에서도 잘 나와있다. 뮤비 속 허윤진은 날아오는 운석을 자신에게는 그냥 망고가 떨어지는 것 처럼 표현했고, 그 외 멤버들도 뮤비 속 배경상황인 '두려움'을 정면돌파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사랑'은 대중적으로 인증된 주제이다. 대중음악의 옛 모습부터 '사랑'은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주제가 되었지만, 시대가 지날수록 개개인의 개성을 중시하는 사회로 변화하면서, 개인의 서사가 중요해졌고, 극복하고 증명하는 음악과 자신을 사랑하는 음악이 더욱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2. 더욱 밀착된 서사성
-외적인 서사성
'서사'는 작품을 더 몰입할 수 있는 요소이다. 배경과 원인을 통해서 결과가 도출되면 그 결과에 집중할 수 있듯이, '서사성'은 작품에서 뺄 수 없는 요소이다. 예전 음악에서는 '서사'가 '앨범 안의 서사성과 유기성'으로만 표현되었다면, 현재 4세대 걸그룹들은 앨범에서만 끝나지 않고, 외적인 서사와 사건을 극복하는 서사를 펼치며, 대중들에게 쾌감과 희망을 선사한다. 케이팝 계에서는 '유명한 평행이론'이 존재한다. 바로 ()아이들과 위너. 이 두 그룹은 각각 멤버의 탈퇴 이후 상대적으로 주목도 떨어진 상태에서 좌절을 맛보게 되지만, 뒤이어 컴백한 곡으로 그간의 기록을 갈아치운 서사를 만들었다. 이런 외적인 서사는 케이팝을 사랑하는 팬들에게 해당 그룹의 아이덴티티 자체를 응원할 수 있는 계기가 되게 만드는 데, 여자아이돌 그룹에서 이를 또 한번 증명해낸 것이 바로 ()아이들의 'TOMBOY'다. 멤버의 탈퇴 이후, 공교롭게도 앨범의 주서사는 '물러서지 않고 세상과 마주하여 스스로 가치를 증명해내는 그들의 애티튜드' 이며 이는 그룹의 세계관 외적으로 일어난 사건까지 서사성을 부여하며 극복하는 짜릿함을 선사하였다. 결과는 그룹 자체 커리어하이와 현재 멜론 연간 차트 1위 후보로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룹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은 예기치 못하게 일어난다. 하지만 이것을 센스있게 극복하고, 이를 인정하고 움직이며 만들어가는 서사는 팬들에게 더욱 몰입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앨범간의 서사성
위에서 말한 'TOMBOY'의 연간 차트 1위의 경쟁상대는 작년 12월에 데뷔한 아이브의 'LOVE DIVE'이다. 아이브의 음악은 대체로 '나르시시즘'을 말한다. 아이브는 현재까지 총 3개의 싱글앨범을 발매했으며, 발매하는 앨범마다 각종 차트를 휩쓰는 파급력을 보여줬다. 이는 단순히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의 인기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앨범 간의 빌드업을 통해서 '나르시시즘'을 그룹의 정체성으로 완벽히 정립시켰다. 데뷔 싱글 'ELEVEN'에서는 누군가에게 사랑하는 감정을 표현하며 '너'라고 표현하는 가사들이 등장한다. "따분한 나의 눈빛이, 무표정 했던 얼굴이/ 널 보며 빛나고 있어" 라고 말하며 사랑을 알게되는 감정을 표현하였고, 그 다음에 발매한 'LOVE DIVE'가 전 싱글 속 가사를 납득하게 한다. 아직까지 상대방에 대한 호기심을 표현하지만 '나르시시틱'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며, 전 싱글의 '널 보며 빛나고 있어'라는 가사를 설득시켰다. 하지만 아직까지 "네가 참 궁금해"라며 경계적인 모습과 소극적인 모습을 어느정도 표현하고 있다. 첫 싱글에서 '사랑에 대한 감정'을 묘사했다면, 두 번째 싱글에서는 '대상을 알게되고, 느끼는 경계와 설렘'을 말한다. 그리고 이 3부작의 마지막 싱글 'After LIKE'는 완벽하게 인정해버리는 자기애를 표현한다. '감정의 발견 - 경계와 설렘 - 감정의 인정'을 통한 빌드업을 통해 단 싱글 세 장만으로 아이브는 그룹의 아이덴티티를 확립시켰다. 이는 팬들이 다음 앨범과 곡을 기대하며 서사에 몰입하게 하는 장치가 되며, 각각의 뮤비 속 '이스터 에그'를 찾게 되며 그룹의 세계관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대표적으로 'eleven'에서 화살을 쏘고 'love dive'에서 화살이 지나가고 'after like'에서 화살이 자신에게 돌아와 맞는 연출이 있다.)
-구체적인 표현
"잊지마 내가 두고 온 토 슈즈" 르 세라핌의 신고 'anti fragile'에서 카즈하의 가사이다. 실제로 카즈하는 발레를 하다가 하이브의 연습생이 되어 르 세라핌으로 데뷔하였고, 이렇게 급변한 자신의 목표를 그대로 가사에 녹여내어 르 세라핌이 풀어내는 '걸크러쉬' 컨셉을 더욱 설득시킨다. 이뿐만이 아니다. 같은 곡의 사쿠라의 가사 속에서도 "무시마 내가 걸어온 커리어"에서도 역시 사쿠라가 그간 일본 톱그룹에서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넘어와 케이팝 아이돌로서 활동하는 것을 상기시킨다. 이런 구체적인 가사가 개개인의 서사를 주목하며, 이 것이 한 곳으로 모여 그룹이 말하려는 세계관과 주제에 설득을 시키는 것이다. 이는 ()아이들과 비슷한 듯 다른 형태를 띈다.
2022년의 걸그룹들의 상승세는 매우 압도적이다. 각종 음원 플랫폼 차트에서는 대부분 네 그룹 이상의 걸그룹이 탑텐에 올라와 있을 것이다. 케이팝 속에서 음악을 표현하는 방식은 굉장히 다양해졌다. '샘플링'와 '다양한 프로듀서들의 등장'이 이 열풍을 설득해주고 있지만, 전 세대 걸그룹과는 다른 '주체성' 중심의 세계관 역시 현재 걸그룹 열풍을 어느정도 설명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