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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넬 May 06. 2023

가장 고된 그리움으로

윤지영 정규앨범<나의 정원에서>

 개인적인 기억들을 글로 적기 어려울 때가 있다. 소중히 여겼던 탓일까, 글보다 풍부했던 감정을 녹여낼 수 없는 한계였던 것일까. 인디음악은 그런 감정들을 도려낸다. 어떻게 나와 딱 맞는 사람이, 내 감정이 너의 감정인 사람이, 우연히, 노래를 부르고, 가사를 쓰는 것일까. 윤지영은 삶을 살 뿐이고 운이 좋게 우리들과 같은 감정을 꾹꾹 쓸 수 있는 사람이었다. 동질감으로 부터 오는 희망이 주는 것들. 윤지영은 꾹꾹 눌러 담아서 부끄럽게 소개시켰다.

몇 장의 싱글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그 곡들은 소심하면서 자조적이었다. 현실 속 내가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행동을 '해야겠다'라고만 바라는 그런 곡들, 윤지영이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던 '언젠가 너와 나' 같은 경우도 상대방에게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겠다고 한다. 비록 '언젠가'라는 상황을 부여해, 현실의 나는 아마도 그럴 수 없었을 것이라는 모습을 보이면서. 윤지영은 그렇게 몇 장의 싱글을 발매하면서 연속적으로 자기 자신을 위로하고, 자책하는 모습을 가진다. '다 지나간 일들을' 과 '부끄럽네'를 통해 지극히 현실적으로 풀어낸 가사들이 자신의 경험 속 탐구를 통해 알게된 감정을 정제하지 않고 뱉어진다. 윤지영은 직전 EP까지도 자신으로부터 시작된 감정을 극대화시킨다. 반대로 말하면 자신의 밖의, 자신과 연관되지 않은 상황을 구체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말하기 때문에, 감정의 솔직한 나열이 청자들에게 매력으로 작용한다. 


윤지영의 곡들은 위태로움을 말하지만, 역설적으로 위로를 받기도 한다. 곡에서 주저하는 모습과 방황, 후회들을 적나라하게 담아내며, 자신이 생각하는, 보여지는 시선을 판단하기 보다는 자기성찰을 통한 가사로 자기자신을 판단하는 가사를 쓴다. 윤지영의 곡들중 등장하는 '당신' 혹은 '제3자'는 윤지영에게 영향을 줄 뿐, 화자가 영향을 주어 변화되는 모습을 찾을 수 없는 것도 이와 같다. 오직 자신에게만, 집중된 윤지영의 정규 1집 <나의 정원에서>는 앞으로를 말하지 않고, 언제나 그렇게 지나간 감정을 기록하였다. 


정규 1집, <나의 정원에서>

 겹겹이 쌓여있는 감정들이 있다. 그리움의 대상은 달라도 왜인지 모르게 그리움이란 단어에 모두가 정의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리움에게 붙는 부가적인 단어가 따로 없는 것 처럼, 그냥 그리움으로 판단 될 때가 있지만, 윤지영에게 그리움은 조금 더 건설적인 의미를 갖는다. 기존의 그리움이 생각의 동선을 따라 닿게 되는 무차별적인 결과라면, 앨범에서 느껴지는 그리움은 꽤나 역동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1번 트랙 '어제는 당신 꿈을 꿨어요' 부터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기록한다. 단순히 '당신 꿈'을 꾼 것으로만 지나갈 수 있는 일이 화자에게 그리움을 지울 수 있는 다른 노력을 하게 만든다. 가장 역동적인 그리움이란, 그리움을 표현하기 위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리움을 마주한 뒤의 모습을 역동적으로 반응한다. '내겐 소중한 것들이 늘어만 가요' 와 같은 가사는 자신에게 그리움을 선사하는 상대에게 원망을 하는 듯 보이지만, 계속해서 나타나는 그리움에는 '언제든지 무너지고'있다. 그리움에게 당하는 공격을 받고, 누워있는다. 나아가야 할 일이 생겼지만 결국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것들을 나열한다.


윤지영은 계속해서 그리움으로 파생된 행동들을 기록했다. 3번 트랙 'City Seoul' 속 '그리움을 이길 법은 없으니'는 아마도 앨범을 관통하는 가사일 것이다. 그리움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힘들어하는 과정 속에서 단 하나의 원망이 없었다. 그런 의미로 3번 트랙은 단순히 어딘가로 떠난다고 할수는 없는 트랙이다. 그리움이 먼저 왔으니, 떠나게 되는 수동적인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리움은 자꾸 윤지영을 잠못들게 하고, 어디론가 떠나게 한다. 계속해서 찾아오는 그리움은 없애면 안되는 감정이라는 것은 4번 트랙 '비행기'에서 나타난다.


 '넌 마치 원래 날아가 버리려고 태어난 것 같았어 대답을 듣진 못했지 그때 인사라도 했어야 했는데'


계속해서 그리움에게 당하는 모습의 의문이 몰입으로 바뀌게 된 순간이다. 화자가 말하는 그리움은 상대가 준 마지막 온기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청자로 하여금 화자의 그동안의 불안과 방황을 설명시켜준다. 5번 트랙 '나의 정원에서'는 자신에게 형성된 모든 감정이 상대로부터 만들어진 정원임을 고백한다. 부끄러울수도 있는 자신의 자책을 후회를 넘어선 그리움을 말한다. '너의 작은 눈물로 가꾼 정원이니 너의 정원이라 해도 되겠다' 라는 트랙의 설명은 가장 티내지 않는 헌신이다. '너'로부터 만들어진 정원이, 결코 너가 만들었다는 것이 아닌, 자신의 아픔과 그리움의 연속으로 만들어낸 자신의 감정의 결정체이지만, 그것 마저도 '너의 정원'이 되는 화자의 헌신은 단순하게 말할 수 없는 무언가를 나타낸다. 불안과 그 외의 괴롭히는 감정들이 '괴롭히는' 것이 아닌 '나를 구성한 너의 모든 것'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해당 트랙은 앨범에서 가장 고조되는 감정선을 보여주며, 상대방의 사랑을 모두 헤아려버린, 하지만 늦어버린 후회를 소화하지 않고, 꾸며낸 대단한 감정을 들게 한다.


https://youtu.be/EJeQopP_wQE

윤지영, 나의정원에서 MV

앨범은 계속해서 당신에게 들었던 감정을 꾹꾹 담았다.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당신에게 든 후회와 그리움을 있는 그대로 맞이한다. 그리고 당신과의 시간을 보낸 후 들었던 감정을 회피하지 않는다. 어쩌면 결국 나로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한 번쯤은 이기적일수 있는 순간들이 화자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너무나도 그대로 그리움을 받아버렸다. 듣는 이로 하여금 헤아릴 수 없는 아픔을 지탱하고 있는 화자가 적는 말들과 음은 청자에게 반응을 요구하지 않는다. 요구하려고 느낀 감정이 아니었기에. 


그리고 8번 트랙. '당신은 내가 눈을 좋아하던 걸 기억할까?', 줄곧 자신의 감정으로 부터 솔직했던 트랙들이 줄을 지었고 드디어 '당신'이라고 불리었던 이에게 물어보고자 한다. 하지만 해당 트랙은 가사가 없는 피아노의 건반 뿐이었다.

https://youtu.be/KwXGw-oFT7M

윤지영, 당신은 내가 눈을 좋아하던 걸 기억할까? (fiction video)


대답이 있지만 대답이 없는 8번 트랙을 지나, 화자는 자신이 지나왔던 선택 속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희망한다. 소박한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마음 다해 아파했던 모든 일들이 곧 나에게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그리움이었기를 가장 소극적으로 말해본다. 


아프도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리움이라는 것은 퍼즐처럼 피스를 다 맞추지 못해서 완성될 수 없는 감정이 아니다. 없으면 없는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존재하는 감정일 것이다. 이것을 정원이라 말 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지나왔을 때, 왜인지 모르게 이 감정을 풀어낸 윤지영에게 경이롭다는 생각을 들게 해준다. 작은 희망이 가장 고된 그리움으로만 남아 감정의 파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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