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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루시아 Jun 22. 2022

수국은 활짝 펴고 발은 요양중

산티아고 순례길이 남긴 흔적

5월 25일 산티아고 순례길 일정이 끝났다. 집에 돌아오니 마당엔 잡초가 무성했다. 잡초가 날 반길리는 만무하나 잔디보다 높게 자란 잡초가 반갑게 눈에 들어왔다. 나무들 사이엔 50cm가 넘게 자란 풀들이 수줍은 듯 자릴 틀고 앉아 있었다. 마당이란 사람 손길이 반이다. 마당도 그런데 사람은 어떻겠나... 


성질 급한 수국 몇 송이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반갑다 수국아! 


첫날 30분을 쪼그려 앉아 잡초를 뽑다 발바닥에 천불이 나서 들어왔다. 한 시간을 넘겨 걷거나 쪼그려 앉기가 어려우니 휘적휘적 몇 발 걷다 눈에 보이는 잡초를 뽑고는 맘을 다잡길 몇 주째다. 


한국에 도착한 날 오전 코로나 검사를 받자마자 정형외과에서 발 사진을 찍었더랬다. 뼈에는 이상이 없지만 발의 뼈를 지탱하는 인대며 근육, 근막들에 총체적 염증이 있는 상태란다. 한마디로 화가 난 상태란다.  발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으니 앉아 있어도 누워있어도 잠을 자다가도 아파 깼다. 그렇게 삼 주일이 지나니 그나마 한 시간은 정원에 나가 풀도 뽑고 분갈이도 하고 화분에 물을 줄 수 있으니 시간이 약이다. 30일 넘게 779km를 걸었는데 발을 쉬게 하는 것이야 뭐 어렵게나 싶었는데 좀이 쑤신다. 30일 고통을 참고 걸었는데 발이 나으려면 60일 이상 조심하며 마사지를 해야 한단다. 더 긴 시간의 인내심이 요구되니 인생은 인내심 싸움이다.  


살금살금 걷다 아침저녁으로 수국에 물을 준다. 물을 주다 발바닥에 열기운이 올라오면 발에도 물을 뿌린다. 더운 여름 수국에게 시원을 물을 주듯 말이다. 작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한참을 물을 준다. 물이면 그만인 수국! 물만 줄 뿐인데 어찌 이리 예쁜 꽃을 피우는지 정말 수국은 여름마다 나를 놀라게 한다. 


작년 늦여름 꺾꽂이를 한 수국 6개도 커다란 수국들 사이서 잘 자란다. 작년에 열정을 다해 꽃이 폈던 수국은 올해는 잠잠하고 작년에 고만고만했던 수국은 올해는 나의 해야 하는 듯이 꽃대를 올려 꽃을 피고 있다.


날이 더워질수록 열 일하는 수국! 

참 대견하다. 물만 먹고도 이리 아름다우니 수국에게 배워야겠다. 

욕심 없이 그 자리서 아름다움을 뽐내는 수국! 

쌩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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