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순간에 절박함을 담아
그림이 그리고 싶어요
나는 비교적 평범하게 자랐다.
아빠가 경찰이셨기 때문에, 갑자기 가세가 기우는 일이 없었고, 대학까지 보내준다고 하셔서 별 어려움 없이 졸업했다.
올해로 남편과 결혼한 지 21년 되는데 역시 큰 굴곡 없는 삶이다. 일주일에 몇 번 둘레길을 가고, 그림을 그리고. 가끔 '오늘이 그날이다'라는 느낌이 들면 오랜만에 도자기 작업도 한다.
나는 도예계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하나 있는데, 바로 '전 국민의 도예화'이다.
이 얘기를 하면 년식이 있는 사람들은 다 웃는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도예 프로그램을 하면서, 전공자로서 도예계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
왜? 나는 도예를 너무 사랑하니까.
내가 무슨 일을 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은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처럼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나는 '어린이를 위한 도예교육'을 확립하는 것이 최종 목표이다. 그래서 행동으로 옮겼다.
석사학위가 있는데, 교육대학원으로 가기엔 시간도 학비도 물론, 나이도 부담스러웠다.
아동교육 쪽으로 일단 공부해보기로 결정했다. 의도는 참 좋았으나, 실습은 정말 상상 이상이었다.
일단 체력이 너무 달려서 풀타임 실습이 너무 고됐다. "그대를 그리워하기 전에 잠들지도 모르지만'
딱 내 노래였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갔다. 금단현상은 이런 거겠지 싶었다. 그림을 너무 그리고 싶은데 시간도 없고 체력이 따라주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들의 그룹에서 나의 이상은 전혀 먹히지 않았다. 나는 오랫동안 섬에서 살았으며 현실감 떨어지는 평범한 중년 여성이었던 것이다.
아마 정약용 선생도 실학을 주장했을 때 굳은 의지가 있었으리라. 하지만, 이론과 실제는 늘 차이가 나는 법. 그분도 학문을 널리 펼치지 못한 이유는 이론은 현실적이지만, 행동은 이상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사실 나는 이성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성격이지만, 실용적인 그릇을 만들어 파는 것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작가정신이 뛰어나서 나만의 작품세계를 널리 펼친 것도 아니다.
나는 이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태이다.
그럼에도 계몽주의자처럼 널리 도예를 알리고 이롭게 하고 싶은 마음은 한결같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에 알게 되었다.
다 도자기를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게다가 흙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아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걸, 지금 알았어?"
"아니, 알고 있었어. 알고 있었다고!"
아침에 일어나 10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지금까지 시도하지 않은 가장 격한 구도의 사진을 선택하고, 망설임 없이 스케치했다. 내가 가진 모든 능력을 총동원하여 초집중 상태에서 쏟아부었다.
1단계 스케치를 마치고 나니, 2단계를 거칠 필요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형태가 나왔다.
압생트를 마시고 그림을 그리는 고흐가 딱 이해되었다. 나를 극한으로 내모니 지금껏 시도하지 않았던 그림이 나왔다.
화면 속 내 배우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