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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Aug 28. 2020

박보나(2019), 태도가 작품이 될 때

100% 공감할 순 없지만 나의 태도를 들여다보게 되는. 


제목 '태도가 작품이 될 때'는 1969년 스위스 쿤스트할레 베른에서 열렸던 전시, '태도가 형식이 될 때When Attitudes Become Form'에서 가져온 것이라 한다.


  소수자를 대상으로 상담과 여러 사업을 진행하는 입장에서 일상 속에서도 관련한 주제에 민감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런지도 모른다. 기관을 방문하는 청소년들이나 직원들을 위한 책들을 비정기적으로 구입하고는 하는데, 해당 구입을 담당하시는 선생님이 희망 도서 리스트를 취합하실 때 내가 껴 넣은 책이기도 했다. 


  서점에서 우연히 보고 잠깐 몇 페이지를 들춰본 게 다였지만 우선 얇고, 예쁘고, 작품들을 조명함에 있어 사회의 다양성과 다름에 대해 주목하는 시선이 좋았다. 


  저자는 총 19명의 현대 미술 작가와 그들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미술과 관련해서는 문외한이나 다름없기에 저자가 소개하는 모든 작가들을 다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단순한 작가에 대한 연대기적 나열과 작품에 대한 기계적 소개가 아닌, 저자 본인 또한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자신만의 관점과 태도로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흥미롭고 즐거웠다. 특히 작품이 한국이라는 국가의 현대적 맥락에서 함께 보았을 때 더더욱.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작가와 그들의 작품에 대한 저자의 모든 관점과 태도에 동의가 되지는 않았다. 무슨 말을 어떤 의도에서 하는지 알 것 같으면서도 내 기준에서는 관점이 너무 확장되거나 거대한 맥락의 이야기로 점프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물론 문외한인 내가 뭘 얼마나 알겠느냐마는, 작가의 머릿말에 따르면 이 또한 나의 태도가 아닐까? 싶은 생각은 든다. 내적 비평에서 좀 더 나아가 사회적인 관계망과 역학 속에서 작가와 작품을 이해하는데 동의하지 않는 건지, 동의하고 싶지 않은 건지, 외면하고 싶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거대한 맥락과 무언가를 결부시켜야 한다는 건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피로감을 불러 일으킨다. 


  작품 그 자체가 주는 미학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가 듣고 싶은 걸 보면, 그냥 좋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상태인 건지도 모르겠다.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면 세상에 들려오는 소식들이라고는 마음을 어지럽게 만드는 것들 뿐이므로.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곤잘레스 토레스의 작품들이 유독 마음에 와닿았다. 사랑하는 연인을 질병으로 떠나보낼 수 밖에 없었던 작가의 삶과 그 사랑을 어떻게 기억하고 추억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들. 그리고 그 사랑이 확장되어, 연인의 몸무게만큼이나 전시장에 담긴 사탕을 먹으며 관객들은 자신의 사랑을 돌아보게 되지 않을까? 그 관객으로서의 체험이 너무나 궁금했다. 


  이하는 인상깊은 구절. 어째 독후감보다 인상깊은 구절이 더 구구절절 길다. 





제유법은 부분으로 전체를 표현하는 수사법이다. 바이런 킴이 이 말을 제목으로 쓴 데에는, 피부색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내고, 모든 다른 피부색의 개인들이 각각 중심이 되어 한 사회를 구성한다는 관계적 차원의 의미를 함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작업을 통해 "아주 극미한 것과 무한한 것을 연결해보고자 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피부색은 그 사람의 생물학적 특징을 넘어 사회적, 정치적 정체성으로 확대해서 읽을 수 있다. 

p.26 "더 시끄럽게 서로의 차이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바이런 킴 편)



오즈로코와 온닥의 작업은 우리가 잘 아는 익숙한 일상을 미술 작업과 겹쳐 놓음으로써 혼란스럽고 불편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항상 그 자리에 있던 것이 조금 바뀌었을 뿐인데 관객들은 껄끄럽다고 느낀다. 나의 일상과 가장 가깝게 놓여 있는 이 불안한 감정은 중요한 자각의 순간을 동반한다. (중략) 크고 요란하며 스펙타클한 잘 만들어진 스펙터클한 작업들에 홀려서 의심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질문할 수 있게 해준다.

p.51 "익숙한 것이 살짝 어긋날 때"(가브리엘 오즈로코 · 로만 온닥 편) 



두 사람이 함께 본 하늘과 바다의 사진을 포스터로 만든 작품이 있다. <"무제"(환영)"Untitled"(Aparicion)>(1991). 관객들은 이 포스터를 가지고 돌아가 자신의 개인 공간에 붙여놓고 볼 수 있다. 포스터를 찬찬히 보면서 우리 안의 차이와 이에 대한 이해와 수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하늘과 그 바다를 곤잘레스 토레스와 로스와 함께 바라보면서 진짜 사랑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게 곤잘레스 토레스는 로스를 우리 안에서 다시 살려낸다.

p. 83 "우리 안의 차이를 이야기하는 법"(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 편) 



천사의 얼굴은 과거를 향하고 있다. 우리가 여러 다른 사건들로 파악하는 과거가 천사의 눈에는 하나의 거대한 대참사로 보인다. 천사는 그곳에 머물며 죽은 자들을 깨워내고 부서진 것들을 다시 온전한 하나로 복원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천국으로부터 불어닥치는 폭풍이 그의 날개를 꺾고, 그 과격한 힘을 이길 수 없는 그는 미래로 떠밀린다. 
- 발터 벤야민,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반성완 옮김, 민음사) 


벤야민의 역사에 대한 관점으로 볼 때, <천사─유보된 제목>은 극장의 역사와 연극을 고민한다. 더 큰 극장에서 더 화려하고 더 많은 테크놀로지가 동원된 스펙타클한 연극을 진보된 미래로 생각하기에 앞서, 연극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연극은 배우와 관객 사이의 경험'이라는 조촐한 자성의 대답을 내놓는다. 대단한 서사도 없고, 구체적이고 명확한 의미를 전달하려는 의도도 없기 때문에 이 공연에서 하나의 주제를 도출하려는 시도는 부질없어 보인다. 

p. 140~141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아무것도 가리키지 않고" (서현석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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