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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Aug 28. 2020

정세랑(2020), 목소리를 드릴게요

오늘 우리의 모습을 60도 기울어진 거울로 비춰본다면


  초등학생 꼬꼬마 시절부터 판타지를 좋아했다. 물론 2000년대를 전세계를 휩쓸었던 조앤 K. 롤링의 해리 포터에는 정작 별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국내 판타지, 특히 전민희 작가는 꼬꼬마 시절 코 묻은 돈을 전부 몰빵할 수 밖에 없었던 내 교주님이나 다름 없었다.  


  여하간 그 시절엔 한동안 동네 책방이나 도서관 판타지 서가를 기웃대며 살았는데, 쓸데없이 입맛은 까다로워 날 만족시키는 글들이 그리 많지 않음을 알고 어느 순간 체념했다. 


  현실과 닮아 있으면서도 낯선 명명과 수단들이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그건 다 큰 지금도 변함없다. 글로 된 모든 것에 열린 문인 나로서는 웹소설도 기웃거리며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쪽 동네는 또 한번 읽고 다시는 펼쳐보지 않게 된다는 한계가 있었다. 


  판타지를 좋아하고, 관대하면서도 내 입맛에 차는 글들을 발견하지 못해 체념하고 방황했던 나날이 얼마나 길었는지. 그런 의미에서 SF와 판타지에 대한 문학계의 척박한 시선을 뚫고 나타난 김초엽과 정세랑이 세상 반가웠다. 


  다만 김초엽 작가의 세계와는 달리 정세랑 작가의 세계에는 좀 더 한국이라는 나라의 흔적이 좀 더 녹아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어느 쪽이든 더 낫다는 의미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가 느끼는 작가의 특징에 관한 이야기이다. 내게 있어서 정세랑 작가의 글 속에는 좀 더 지금의 한국을 떠올리게 하는 지점이 많았다. 이를테면 <11분의 >1의 화자가 겪은 대학 동아리의 풍경, 취업사기를 당하는 <모조 지구 혁명기>의 화자같은 지점들이 그렇게 느껴졌다. 


  그렇기 때문에 SF스러운 소재와 배경과 이야기들 속에 절묘하게 감춰져 있지만 결국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 대한, 일견 유쾌하지만 서늘한 우화라고 생각한다. 너무 정확하게 지금 내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 같은 건 부담스럽다. 그런데 정세랑 작가의 글은 내 기준 축이 한 60도 정도 기울어진 거울 같다고 해야 하나. 이게 날 비추는 건지 아닌지 모르겠어서 무신경하게 들여다보니 '앗, 이거 내 모습이었잖아.' 싶은 그런 느낌. 내가 무신경하게 누리는 풍요들이 무엇을 짓밟고 있는가에 대해 알아야 하지만, 알고싶지 않은 현대인의 이기심과 피로감의 경계를 누그러뜨린 채 유쾌한 은유들이 밀려온다. 


  그래서 우리가 외면하거나 모른 척 했던 세상의 어떤 소외와 다양성에 관해 불현듯 생각할 수 밖에 없도록. 


  그리고 인간이 인간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순간들과 그 이유를 놓치지 않아서, 이런 인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애틋하게 여기고 사랑하기 때문에 때론 실수하고 고꾸라지기도 하지만 나아갈 수도 있다는 걸 함께 이야기해줘서 좋았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이 지나치게 내면으로 침잠하는 독백, 거대한 대서사시, 비관적이고 우울하고 느즈러지는 서술이 아닌 딱 요새스러운, 단 몇줄이지만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는 문장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그런지 가장 좋았던 단편을 꼽으라면 난 <11분의 1>이다. 화자의 기준이 되어버린 기준. 그렇기 때문에 화자가 내린 선택이 머리로 이해되진 않아도 와닿고야 마는거다. 그 다음 좋았던 <리틀 베이비블루 필>은 테드 창의 단편집 숨에 수록된 단편 중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을 떠올리게 했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완벽한 기억이라는 소재 때문에. 다만 해당 단편집에 수록된 몇몇 단편들은 소재에 흥미를 느끼긴 했지만, 이야기에 몰입하지 못하고 별 감흥 없이 넘겨버리기도 했기에 모든 단편이 찰떡같이 내 맘에 든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좀 더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번에는 단편집이었으니 이왕이면 다음에는 장편으로. 


  이하는 인상깊은 구절. 







누구와도 좀처럼 말다툼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 좋아했어요. 농담으로라도 비열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서요.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배려해주고 신경 써주는 사람이라 좋았어요. 오빠는 자주 아팠는데, 그래서인지 제가 조금이라도 아픈 날이면 귀신처럼 알아채곤 했었어요. 

p. 21 <11분의 1> 



그럼에도 늘 생각했어요. 기준 오빠는 저의 기준이 되어버렸던 거에요. 누굴 만나도 그때 오빠가 내 손에 작은 돌멩이들을 쥐여줄 때의 친밀감과 충족감을 느낄 수는 없었어요. 펭귄 수컷처럼 돌을 선물하던 남자 때문에 제 나머지 연애들은 망해버리고 말았습니다.

p. 23 <11분의 1> 



대부분의 환자 보호자들은 효율적인 3시간을 보냈다. 효율적인 것 이상을 바라기엔 너무 지쳐있었기 때문이었다. 절실하게 전해야 할 정보가 있었다. 전해진다면 매일 매일의 분투를 다소 간 줄여줄 수 있는 그런 메세지들 말이다. 아직 지치지 않은 보호자들만이 조금 다르게 약을 사용했다. 

"우리는 지금 소풍을 왔어요. 밤에 혼자 깨서 무서우실 때 이 소풍을 떠올리시면 좋겠어요. 소풍 생각을 하시며 다시 잠드시면 좋겠어요. 이 날씨를, 이 나무 그늘을, 우리 표정을, 같이 부른 노래를 자꾸 생각하시면 좋겠어요." 

p. 129~130 <리틀 베이비블루 필> 



인류가 또 한 번 해결책을 찾았다고 안심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개는 무언가 더 남아 있을 것이라는 미적지근한 예감에 시달렸다. 그도 그럴 것이 여전히 지구 곳곳에서 사람들은 비극을 잊었다. (중략) 비극을 잊업리는 시대의 전쟁이란 말할 것도 없이 참혹했다. 인류의 역사가 곤두박질치고 있다고, 그나마 가치 있던 부분이 끝장났다고 고개를 흔드는 사람과 비참함이라곤 1그램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어깨를 부딪치며 같은 길을 걸었다. 잊지 않은 사람들과 잊어버린 사람들은 서로를 불신했다. (중략) 매번 해결책 대신 미봉책만을 택했으며, 사람들은 시대가 흘러가는 진행방향의 굵은 화살표 위에 앉아 불행의 원인을 쳐다보지 않았다. 괴로워하며 더 괴롭게 만드는 액체를, 고체를, 기체를 삼켰다. 
작은 하늘색 알약은 모든 것을 바꿔놓았고 동시에 아무 것도 바꾸지 못했다. 

p. 149~150 <리틀 베이비블루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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