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독립합니다. 친구들은 아파트 자가 살 때 서울 원룸으로.
드디어 독립한다.
내 나이 38살. 이제 30대보다는 40대에 가까워진 나이.
어릴 때 막연히 생각했던 [어른]으로 세상을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하는 나이...라고 하기엔 좀 늦긴 했지만, 마음속에 '이때는 꼭 독립해야지'하고 마지노선으로 잡고 있던 그 나이.
그때가 된 것이다.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하지만 약 두 달 전의 나는 일을 저질렀고, 계약을 했으며, 시간은 열심히 흘러 독립이 정말 코 앞에 다가왔다.
이젠 정말 미룰 수 없단 뜻이다.
백수라 돈도 없는데 세상에 마상에.
왜 이 애매한 나이를 마지노선으로 잡았느냐?
특별한 이유가 있진 않다.
가령 30대 후반이면 이제 결혼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든다고 생각했다거나 (애초에 이 부분은 타협의 여지가 없다. 20살이어도 60살이어도 90살이어도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겨야 하지 나이에 맞춰서 한다는 건 내 인생에 옵션이 된 적이 없다)
매매를 위해 목표한 자산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거나
직장이 바뀌어서 전출을 해야 한다거나
혹은 부모님이 본가를 정리하고 시골로 이사를 가신다거나 등
외부요인이 바뀐 것은 단 하나도 없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경기도에 있는 본가에서 부모님과 살고 있고
대학생 때부터 본가와 서울을 오가며 이동에 3시간을 버리는 삶을 살고 있으며
안락한 캥거루 생활덕에 일이 많이 줄어든 요 몇 년 간도 악착같이 버티며 저금을 했지만,
원래 월급이라는 게 너무 작고 소중하지 않은가.
서울은커녕 본가 부모님 댁 근처에 집을 구하는 것조차도 턱없이 모자란 돈을 쥐고 있다.
그 사이 몇몇 주식과 로또와 기타 등등이 나를 배신했음은 더 자세히 말하지 않겠다.
일자리가 줄어들었다곤 해도 당장 직종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고, 부모님도 아마 남은 여생을 이 집, 이 동네에서 사실 거 같고, 딱히 집에서 나가라는 사람도 없고, 결혼할 사람도 없고...
근데 왜 이 애매한 나이에 애매한 돈을 들고 갑자기 나가느냐.
[38살엔 대운이 바뀌니 집에서 나와라]
이 말을 사주에서 들어서.
진짜 그게 전부다.
정말 그런 거로 인생 방향을 설정하는 사람이 있느냐 싶지만, 그게 접니다... 저도 제가 이럴 줄 몰랐고요.
원래 셈이 빠르지도 않고 귀가 얇은 편이기도 한데, 겁도 많은 편이라 뭔가 실행하려고 하면 어마어마한 시간과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뭔가 운명적인 그 메시지 그런 거에 또 의지하고 싶은 나약한 마음이 있어가지고...
30대 초반에 친구 따라 처음 사주를 본 후로 매년 한 두 번씩 사주나 타로 이런 것들을 보러 다녔는데, 그때마다 항상 들었던 이야기가 바로 이거였다.
'지금 집에서 나오면 너무 힘들어서 다시 돌아가니까 납작 엎드려 있다가 38살에 나와.
그때는 터를 바꿔야 업무적으로도 확장되고 인간관계도 달라지고 블라블라'
신기할 정도로 어디에서 뭘 하든(사주든 신점이든 타로든) 독립에 대해 물어보면 항상 같은 답변을 받았고
나도 모르게 그 나이가 마음속의 마지노선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안 그래도 운명론자인데 같은 이야기를 한 8년쯤 들으면 '아 이게 내 운명이구나'하게 된다.
물론 38살을 염두에 두면서도 계속 뭔가 시도하긴 했다. 온갖 임대 공고, 청년주택 등 정보를 찾아보고 지원했고, 돈을 좀 더 불려보려고 저금도 하고 주식도 좀 손대보고, 누가 소개팅해준다고 하면 마다하지 않고 나가고, 일자리도 좀 더 늘려보려고 사이드잡 시도도 해봤었고.
시도했는데요, 다 안 됐어요.
인생이 뭐 예상대로 된 적이 있던가요.
내 예측대로 흘러간 건 시간뿐이라 나는 착실하게 나이를 먹었고
어느덧 약속의 38살이 되었다.
그리고 다양한 시도에 실패한 지금의 나는 이젠 안다.
'여기서 내 상황이 획기적으로 바뀔 확률은 로또보다 적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샤먼에 미친 사람같이 보일까 봐 정말 싫지만 운명이라고 말하는 그것에 걸어볼 수밖에.
무엇보다, 이 시기마저 흘려보내면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금과 똑같은 모습으로 40대를 맞이할까 봐 두려웠다.
여기서 미리 두 가지 용서를 구하고 싶은 게 있다.
우선 첫 번째, 안 그래도 최근 대한민국을 뒤흔든 정치 문제 때문에 우리나라가 유사 신정국가냐는 말이 자조적으로 나오는 상황에서 사주를 이렇게 장황하게 떠드는 게 좋아 보이지 않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비판이 나와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마음이 단단한 사람들은 신경 안 쓴다는 것도 잘 알고. 그냥 좀 쟤 삶이 불안정해서 어디 좀 기대고 조언을 구할 데가 필요했나 보다, 이왕이면 그게 생산적인 방향으로 가길하고 하고 넘어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두 번째, 저는 절대 캥거루족이 잘못됐다 생각하지 않고, 40대가 뭐야 평생 부모님과 살아도 가족들끼리 합의만 됐다면 문제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우리나라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델이 너무 경직되어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삶의 모델이 나와서 이 경직된 사회를 뒤흔들어주길, 그래서 허들이 낮아지고 살기 편해지길 바라는 사람입니다. 40대가 되기 전에 독립을 꼭 해보는 게 저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돼서 저한테만 적용하는 거예요.
(저도 이 독립 시도가 망하면 부모님께 싹싹 빌고 남은 돈을 다 받친 뒤 본가로 돌아올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내가 말한 두려움은, 정확히는 '내가 뭘 모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독립해서 내 삶을 온전히 책임지는 것은 경험해보지 않고선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최근 몇 년간 뼈저리게 느꼈다.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의 삶의 형태가 바뀐 것도 한 몫했고, 일할 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다 보면 그들이 당연하다 생각하고 지나가는 것들 중에 종종 나는 몰라서 말을 얹을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심지어 그게 한 번 느끼고 나니까 많아. 나보다 10살은 더 어린 후배들은 이미 그걸 다 경험해 봐서 아는데 나만 몰라!
솔직히 인정하겠다. 나는 질투심이 많다. 그리고 일에선 그게 덜 한데 삶이라는 영역에서는 뭔가 파악하고 행동하는 게 남들보다 느려서, 항상 또래보다 10살은 더 미숙하게 살고 있다는 자격지심도 갖고 있다.
실제로 해외여행도 20대 후반에 처음 갔고 운전도 30대에 시작했고 독립은 아직 시작도 안 했고.
그런 면에서 쿨하면 모르겠는데 또 그렇지도 못해서;;; 이런 정병엔 답이 없다. 직접 뛰어들고 빨리 경험해서 내 거로 만들어서 사람들의 대화에 끼어드는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본가 생활이 주는 안락함을 포기하고 나를 궁지로 몰아야 한다. 내쫓아야 해. 그래서 독립한다.
물론 막상 한다고 하고도 겁이 많아서 어플만 몇 달 쳐다보다가 한 겨울에 임장만 3개월 넘게 다니고 온갖 집 보러 다니다가 눈앞에서 몇 번 집도 뺏겨보고 아무리 봐도 아는 것 같은 집 계약 직전까지 갔다가 빠져나오고, 결국엔 조바심 나서 덜컥 계약을 하긴 했는데... 아 어떻게든 되겠지.
공고도 안 올라온 집을 계약해서 계약과 이사 사이에 3개월이라는 텀이 생겼는데, 원래 성격이 급해서 뭔가 마음먹으면 바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지라 이 3개월이 정말 고통의 시간이었다. 일이라도 바쁘면 생각이 좀 분산될 텐데 하필 일도 끝나서 쌩 3개월을 정말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가족이나 친구들한테 독립한다고 말했다가 애정 어린 한 마디 얹는 거에 짓눌려서 또 고통받고, 혼자 죽음의 5단계인 [부정 - 분노 - 타협 - 우울 - 수용]을 겪고 있다. 내 생각엔 지금 우울을 지나 수용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이왕 이렇게 고통받을 거, 기록해 두면 미래의 내가 보고 '얜 뭐 이런 거 가지고 유난을 떨었대?' 하며 비웃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나를 비웃을 수 있을 만큼 독립의 고수가 돼서 혼자 사는 삶을 온전히 책임지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내가? 공과금 내는 법도 몰라서 벌벌 떨고 있는데?
부디 간절히 그렇게 되길 바라며...
적어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저녁만큼은 다른 잡생각이 들지 않고 마음이 평온했노라라고 적어보며 마무리한다.
다양한 이유로 독립을 미루고 있거나, 실행하기 어려운, 혹은 힘들게 독립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 모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