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기 온 지도 벌써 1년이 넘었는데도 계속 자식에게 부담주기 싫어 부모님은 벨기에 방문을 줄곧 연기만 하셨다. 결국, 경제적인 이유에선지 부모님은 유럽여행의 비수기인 겨울에 오시기로 천신만고의 설득 끝에 간신히 결정하셨다. 아이들의 짧은 겨울방학 일정에 맞춰 올 수 있어 그나마 천만 다행이었다.
드디어 2017년 12월 21일, 부모님과 여동생, 그리고 조카 두 명(예슬이, 동건이)이 큰 마음을 먹고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에 도착했다. 벨기에는 국내 항공사 직항이 없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나 프랑스 파리로 경유를 해서 오는 경우가 많다. 부모님은 각종 한국 식료품과 반찬을 가득 실은 부피 큰 짐을 앞세우고 입국장으로 나오셨기에 얼굴이 가려 단번에 확인할 수 없었다. 호기심에 부푼 가족들 표정을 우선 기념사진에 담고 벨기에 집까지 신나는 마음으로 2시간을 운전하였다. 아버지는 앞자리에 앉아 기분이 좋아 목청이 점점 커지셨다.
“우리 아들이 이제 완전 유럽 베테랑이네. 운전도 잘하고, 영어도 잘하고, 아는 것도 많아졌고... 참 듬직하다.”
마침내 집에 도착하였고, 오자마자 손자·손녀와 상봉 후 꼬깃꼬깃 비닐에 싸인 각종 반찬들이 끊임없이 배낭과 여행가방 속에서 나왔다. 계속되는 가족들 웃음소리에 밤이 깊어가는지도 모르고 앞으로 다가올 즐거움에 희미한 흥분감을 드러내며 ‘가족이란 이런 것이구나’라고 재삼 느끼며 이 행복한 순간들에 그저 감사했다.
시차 적응을 위해 이틀을 집 주변 공원이나 브뤼셀 도심을 관광하고, 3일째인 12.24일부터 프랑스 파리의 3박 4일 여행이 시작되었다.
크리스마스이브인 첫날, 우리 식구 4명과 한국에서 온 가족 5명이 여행하니 총 9명이다. 차량 2대를 나와 아내가 각각 운전해서 파리 디즈니랜드 앞 호텔까지 도착하는 일정이다. 오래된 폭스바겐 차(1호차)에는 나와 아버지, 여동생과 조카딸인 예슬이가 탔고, BMW 신차(2호차)에는 와이프, 어머니, 허니, 으니, 조카 아들인 동건이로 배정되었다. 차 안에서 먹을 유부초밥 도시락을 싸는 여성들의 분주함과 동네를 산책하는 남성의 여유로움이 상호 교차하는 아침의 대조적인 모습이 끝난 후, 우리는 출발했다.
1호차는 출발과 동시에 운전자인 나의 가이드 같은 목소리 톤과 내용에 모두들 귀를 기울이며 즐거워한다. 아버지는 나를 자랑스러워했으며, 편안함을 넘어서 유모와 여유까지 보여주신다. 2호차를 앞질러 가며 더욱 위용을 자랑하던 가운데, 예슬이가 갑자기 울기 시작한다. 자기가 아끼는 곰돌이 인형을 집에 두고 왔다고 계속 차 안에서 흐느낀다. 잠잘 때에도 그 인형이 있어야 잠을 잘 잔다고 하는데... 그래도 이미 프랑스 국경을 막 넘어서고 있어 도저히 돌아갈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달래도 계속 흐느끼고 있기에 주유도 할 겸 휴게소로 들어갔다.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차 두 대 모두 디젤(경유) 차량이라 디젤을 주유해야만 한다. 평소 내가 다닌 주유소에는 보통 'Diesel', 'Gasoline'이라 쓰인 주유기가 있었고, 유럽은 거의 모두 무인 셀프서비스이다.
하지만, 휴게소에 내려 자연스럽게 내린 나는 순간 당황했다. 주유기가 3개 있었는데, '노란색 Gazole', '주황색 Gazole', '초록색 S/Plomb95'라고 각각 쓰여 있었다. 머릿속이 순간 하얗게 될 정도로 혼란스러웠고, 나는 생각했다. ‘가졸(Gazole)은 가솔린(휘발유)의 불어일 거야, 그렇다면 초록색 S/Plomb95이 디젤(경유)인 거지’라고 중얼거리며 초록색 주유기로 1호차에 여유롭게 가득 채웠다. 주유가 끝날 무렵, 2호차가 바로 옆 칸으로 진입해 온다. 아내도 주유기 앞에서 살짝 당황하고 한참 고민하더니 실내 리셉션으로 뛰어 들어갔고, 나는 주유비를 후불하기 위해 아내 뒤에 줄을 섰다. 아내는 캐시어에게 ‘어떤 것이 디젤이냐?’고 물었고, 그녀는 ‘Gazole이 디젤이다’라고 명확히 대답하였다. 내가 재차 물었으나, 결국 같은 대답이었다.
나는 믿고 싶지 않았고 하늘은 노래져갔다. 프랑스에 오래 살았던 직장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더니, 카센터에 전화해서 고쳐야 한다며 절대 그 상태에서 운전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디젤차가 휘발유를 주유해서 달리면 엔진에서 말발굽 소리가 나면서 위험하다는 것이다.
카운터 직원에게 부탁하였더니 30분 내에 휴게소로 카센터 직원이 온다고 하였다. 기다리는 동안, 식은땀 흘리는 나와 다르게 가족들은 휴게소에서 크로와상 빵과 커피로 담소를 즐기며 웃고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상상하기를...‘평범한 차로 사람이 와서 흡입기를 들고 와 내 차의 모든 휘발유를 모두 빨아들이고, 경유로 바로 갈아주겠지. 간단한 조치여서 금방 끝나겠지’하며 불안감을 걷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잠시 후 타이어가 10개쯤 달린 대형 견인차가 다가왔다. 영어를 전혀 못하는 프랑스 운전사는 1호차 멤버들에게 차에 타라고 하면서 오픈된 견인차 뒤에 1호차를 실었다. 운전사는 나에게 자기 옆 조수석에 앉으라고 수신호를 보냈다. 가족과 떨어져 있고 싶지는 않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나는 아내에게 2호차는 먼저 파리로 출발하라고 말하는 순간, 갑자기 프랑스 국경에서 이산가족이 되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나의 리더십은 새까맣게 탄 재처럼 폭삭 무너지고 말았다. 멘털 붕괴라기보다 그저 머리와 몸이 분리된 느낌이라고 표현해야 정확할 것 같다. 머리에 피가 공급되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주문을 외우고 있는 순간, 어느새 견인차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집 한 채 보이지 않는 시골 비포장 도로로 달리고 있었다. 나는 차 안에서 자동차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었고, 상담원은 친절하게도 ‘자기 실수로 일어난 잘못된 주유는 카버 되지 않는다’는 실망스러운 답변과 동시에 옆의 운전사와 한참을 불어로 서로 이야기를 한다. 잘은 모르지만, 보험사 측에서 운전자에게 우리를 잘 케어하라는 내용 같았다. 그 사이에 나는 뒤에 탄 1호차를 뒷 유리창을 통해 쳐다보았고, 분명히 목격했다. 빈 운전석 옆 조수석에 앉아있는 아버지의 슬프고도 황당한 눈망울을.....‘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보지 말아요’. 가수 산울림의 처량한 노래가 귓가에 맴돈다. 그리고 비포장도로 때문에 흔들거리는 뒷좌석에서는 철없이 까불며 웃는 예슬이의 대조적인 표정이 나를 더욱 씁쓸하게 만들었다.
하염없이 가다가 도착한 카센터는 생각보다 컸지만,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이브라 모두들 일찍 퇴근하였고 오직 카운터에 한 명만이 남아 있었다. 다행히 그는 영어를 조금 할 수 있었고, 내게 말한 요점은 대략 이러했다.
“기술자들이 모두 퇴근을 했다. 더구나, 가까운 곳에 파리로 가는 기차역마저 없다. 버스 정거장도 물론 없다. 택시를 불러도 여기까지 올 지 모르겠다. 따라서 누군가의 차를 불러 우리 네 명을 픽업해서 갈 수밖에 없다. 그 차가 올 때까지 추우니 3평 남짓의 따뜻한 당직실에서 기다려라. 당직실 키를 줄 테니 하룻밤 잠을 자도 좋다.”라며 떠날 때 키를 놓고 갈 은밀한 위치까지도 알려주었다.
그리고 내 차는 엔진을 청소해야 하고 연말 연휴기간이니 수리하는데 며칠 걸릴 것이라고 하였다. 결국 나는 12.29일에 원상 복구된 1호차를 찾으러 가게 된다. 나는 기억한다. 나의 연거푸 담배 피우면서 자책하는 모습에 괜찮다고 웃으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불과 한 시간 전만 해도 나를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며 웃으셨는데, 내 본인에 대한 실망, 자책에 상관없이 아버지는 한결같으셨다.
그리고, 당직실에서 우리는 서로 체온을 나누며, 이런저런 농담을 주고받다가 아버지와 나는 소파에서 낮잠까지 잤다. 한참 후, 깜깜한 밤길에 쌍라이트가 비친다. 2호차가 컴백했다. 아내는 2시간을 달려 다른 식구들을 파리 호텔에 안착시켜 저녁 식사로 초밥을 사서 2호차 식구에게 대접하고, 다시 2시간을 반대쪽으로 거꾸로 달려 시골 카센터 당직실 앞에 온 것이다. 평소 직선 목구조라서 장시간 운전을 하면 목 디스크가 생기겠다고 징징거렸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와이프는 그 날 장작 왕복 5시간을 운전하여 의도치 않게 신기록을 세우고 말았다.
결국 1호차는 파리를 구경하지 못하고, 2017년 연말을 카센터에서 홀로 비싼 리조트 휴가를 즐겼으며, 우리 대식구 9명은 2호차와 대중교통 수단인 지하철로 파리 여행을 잘 마치고 잘 살아 돌아왔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부모님과의 첫 여행에서 선사하고 말았다.
그 이후로 난 프랑스 지역을 갈 때면 디젤을 미리 국경 진입 전에 가득 채우고 진입하곤 하였으며, 프랑스 주유소에 가더라도 꼭 휴게소 카운터에 가서 물어보고 확인 후 경유를 주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