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에게는 왜 영시를 안 써? 친한 남자 친구인올뤼모나 판데이를 위해서는 시를 쓸 거지?'
라고 몇 명의 직장 동료는 진담 같은 농담을 던지곤 했다.
실제로 남자에게도 영시를 써 보려고 시도해 본 적은 있지만, 닭살이 올라와서 중도 포기했다.
하지만, 1년 동안 같이 아프리카 지역 출장을 함께 한 인도 출신'라젠드라'에게는 유일하게 남자에게 짧지만진심 어린 카드를 써본 적은 있다.
그는 TRS(Time Release Study) 분야의 WCO 공인 자격증을 갖춘 베테랑이었다. 워크숍에서 강단에 서면 순식간에 눈빛이 바뀌고, 청중을 몰입시키는 재미있는 강의 독재자가 된다. 인도식 영어 발음이라 나름 이해하기 곤란한데도 불구하고, 그의 프로페셔널한 운율과 강약있는 톤, 그리고 피드백을 요청하는 질문식 화법이 집중을 안 할 수가 없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인물도 잘 생겼고 배려심도 많은 젠틀맨이며, 거만할 정도로 자신감 넘치는 친구였다.사실 국제기구에서 필요한 자질 중 한 가지가 '약간의 도를 넘는 자신감'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탱크 정신, 남을 의식하지 않는 소신'이 다양한 인종의 글로벌 환경에서 큰 장점으로 작동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튀지 않는 게, 모나지 않은 게 정석인 한국 사회에서 이런 자질을 가진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어쨌든 그는 아프리카 내셔널 워크숍 출장의 사전 기획 회의를 할 때마다 나에게 항상 이 멘트를 날렸다.
"Don't worry. Be happy. Enjoy yourself."
한편으로는 그의 긍정적인 태도에 한시름 놓을 수 있었지만, 반대로 나는 그의 스타일에 무작정 따라오면 된다는 식으로 들려 얹잖을 때도 있었다. 사실상 그는 이 분야에서 나보다 5년 일찍 시작한 사람이고, TRS 계약직 공모에서 40대 1의 경쟁을 뚫고 입사한 친구다.
당연히 난 그 친구를 통해 많은 것을배웠고, 그와 열악한 아프리카 출장 속에서 많은 추억거리와 깊은 정을 쌓아갔다.
하루는 내가 그의 베테랑 같은 실력에 대한 상대적 콤플렉스를 토로하자, 그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킴, 스트레스받지 마. 나도 병아리 때가 있었어. 그런데 자주 난 그 초심을 잊어. 누구나 다른 달란트가 있어. 난 너의 다른 우수한 능력들을 존중해."
하지만, 그 친구는 계약 갱신과 관련하여 영국 측 펀드가 확답의 회신이 늦어지자, 결국 갑작스럽게 귀국을 직원들에게 통보하고 인도로 떠나버렸다.허탈했지만, 지금도 난 그와 SNS로 일상을 확인하고 지낸다.
내가 만난 또 다른 베테랑은 말레이시아 출신 여성 Asha였다. 작은 체구에 밝은 성격, 그리고 약간의 도를 넘는 자신감을 가진 - 국제기구 기준에서는 평범한 - 8년 차 선임 직원(Senior officer)이었다.
내가 Asha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부국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었고 온정적 리더십으로 직원들에게 인기도가 높으며, 무엇보다도 오랜 경력으로 회원국 대표단까지도 대부분 아는 '마당발 네트워크'의 소유자였다.
Asha가 2018년 6월 말 WCO에서 8년 근무를 마칠 때쯤, 국장급 이상 관리진에서 직접 나에게 찾아왔다.
A : "미스터 킴, Asha 페어웰 파티를 6월 말에 하게 될 거야. 많은 사람이 참석할 텐데, 네가 그녀를 위한 영시를 하나 발표해줄 수 있니?"
나 : "부탁 안 했어도 그녀에게 영시를 자발적으로 쓰려고 했어요. 하지만, 그날 우크라이나 출장 예정이라 다른 사람이 대신 발표해야 할 것 같아요."
밀레나 : "걱정 마. 너의 시 낭독을 영상으로 녹화해서 그날 틀면 돼. 영상 담당자 협조를 해 놨으니, 그저 너는 녹화 날짜만 정해줘."
생각지도 않게 나는 카메라 앞에서 시를 낭독하는 모습을 녹화하게 되었다. 서서 낭독해보고, 앉아서 해보고, 창문 밖을 바라보며 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아래의 영시를 만들어 그녀의 페어웰 파티에 녹화 영상이 방영되었다. 참고로 Asha의 이름을 초성에 반복으로 두면서 'Ah~~ sha'로 앞 음성을 길게 뽑으면서 감탄사처럼 낭독하였다.
Confessing in front of her name (Asha M.)
Ah-sha, Queen is leaving soon, unbelievable though.
WCO has lost a 'Customs Artist' like Van Gogh.
But, she has never been poor and gloomy like him.
Ah-sha, Queen is saying good-bye shortly, impractical though.
For sure, she has been a 'Customs Chef'
like Gorden Ramsay.
But she has no restaurants which use cooking materials such as AEO, TFA and RKC.
*AEO, TFA, RKC : 국제무역 원활화를 위한 협약 또는 개정 교토 협약으로 통관행정의 중요 규정에 해당
Ah-sha, she is growing apart from company, sad though.
She has been a careful and generous 'Customs Nurse' like Florence Nightingale.
However, she has been obstinated in dressing Malaysian traditional clothes
unlike nurse's white one.
Ah-sha, Queen is fading away, poignant though.
She was a 'Customs Creator'
like the great Shakespeare.
Whereas, she has never written
a customs tragedy like Hamlet.
Now, we register 'Asha Menon' on the WCO hall
of the fame honorably.
In the future, we are looking forward to meeting another great Asha like Van Gogh, Gorden Ramsay, Florence Nightingale and Shakespeare....
시 녹화 낭송은 성공적이었다고 한다. 우리 팀 단체 대화방에 떠있는 페어웰 파티의 영상과 사진들을 통해서 나름 확인할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 출장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많은 사람이 나에게 인사와 함께 '아~~ 샤'를 유행어처럼 한 달 가까이 듣게 되었다.
그중에 15년 넘게 WCO에 근무해왔던 여성 한 명이
내게 한마디를 했다.
"아샤는 매우 기뻤고 영광스러운 자리가 됐다. 그녀는 따라잡을 수 있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하지만, 그녀조차도 8년 전에는 병아리 같은 시절이 있었다."
그다음 이야기는 잘 들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대단한 그녀의 병아리 시절을 상상하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