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감을 작동시키는
여성 국장의 리더십

by 미스터 킴

WCO 계약기간 3년이 거의 마무리되던 어느 날, 내가 여기 있는 동안 누가 가장 감사한 사람이었는지를 스스로 평가해 보았다. 두 말할 나위 없이 통관 감시국장 Ana였다.


미국 출신의 호탕한 그녀는 무엇보다도 회의에서 청중을 휘어잡는 스피커 역량이 있었고, 직원들과 항상 수평적인 의사소통을 했으며, 모든 국가별 전통문화 이벤트에 직접 체험하고 공감하는 문화 상대주의 자세가 몸소 체화된 분이었다. 2019년 봄, 한국문화의 행사 때는 직접 한복을 입고 족두리까지 하고, 한지 부채에 붓글씨로 자기 이름을 써 보기도 했으며, 막걸리를 마시고 ‘캬아!’ 소리까지 힘껏 내셨다.


국장과 처음에 면접했을 때 그녀는 나를 편안하게 해 주었다. 영어를 줄줄 말하다가 머뭇거리면 본인이 내가 쓸 단어를 예상해서 보충해 주셨다. 그리고, 15명 정도 되는 통관 소국 멤버들의 내부 회의가 있을 때 나에게 눈을 마주치며 미리 사인을 주었다.

‘미스터 킴, 네가 의견이 있어 보이는데 시킬 테니 준비하고 있어’라는 느낌의 눈빛을 준다.


난 그 사인을 받는 동시에 간단한 메시지를 메모해 두었다가 나 스스로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독특한 유머나 위트로 마무리하였다. 생각 외로 동료들은 나의 어설픈 영어와 반전 있는 내용에 많이 웃어 주었고,

특히 국장은 목젖이 보일 정도로 까르르 웃으시며 눈에서 하트를 발사하곤 하셨다. 나는 그런 분위기에 감사했다. 그렇게 웃어주고 나면 그다음 나오는 영어는 한층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나오기 때문이다.


보통 한국인의 영어는 상대적으로 유창하지는 않지만, 내용에 논리가 있고 핵심이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떤 외국 동료는 영어가 네이티브 수준으로 빠르게 굴러가고 장황하지만, 메시지가 없이 군더더기만 많은 경우도 있다.


국장은 다행히도 나의 첫인상을 좋게 보았고, 단계적으로 사람을 키우는 리더십을 보여 주셨다. 1년 차에는 우수한 멘토와 짝을 지워 학습하게 하였고, 2년 차에는 PPT 발표와 패널로 앉혔으며, 3년 차에는 직접 개도국에 출장 가서 TRS 워크숍을 주재하게 하였다.

PTC(Permanent Technical Committee)라는 통관국의 가장 큰 다자회의 조율의 능력자 밀레나(세르비아 출신), TRS(Time Release Study)라는 통관시간 측정 연구 방법론을 설파하는 워크숍 강연자인 올뤼모(앙골라 출신)가 나의 1년 차 멘토들이다.

난 밀레나를 통해서 보고서 작성, 회의 준비, 의장 보좌, 통·번역자와 전산 기술자와의 긴밀한 협력을 배웠으며, 특히 대표단들의 반응에 따라 시간 및 의제 조율의 테크닉까지 익혔다.

그리고, 올뤼모를 통해서 프레젠테이션 및 강의 능력, 질의응답 요령, 통관 현장에서 세관 공무원들과의 인터뷰 능력을 배웠다. 결국, 국제기구 직원으로서 갖춰야 할 공식적인 다자회의 보고 능력과 격식 없는 현장에서의 워크숍 대응 능력을 - 충분치는 않지만 -

동시에 배운 것이다.

난 도전적인 미션을 부여받을 때마다 거절하지 않고 수긍했으며, 수행 과정에서 힘든 일은 동료들 후원을 받았고, 과업을 마쳤을 때 짜릿한 쾌감과 성취감을 느끼곤 했다. 비록 완벽하진 않지만, 멘토들과 국장은 날 칭찬하고 내 성장을 진심으로 즐거워하셨다.

그래서, 난 Ana 국장을 위해 영시를 쓰게 되었고, 나의 송별식 날에 직원들 앞에서 발표하는 기회를 가졌다.


Confessing in front of your name (Ana H.)

Ana, I can't say good-bye to you yet.

Telling good-bye is just nonsense,

as your inspiration is still embodied to my body and soul.

You've touched my dull eyes and nose.

You made my eyes insightful and my nose sensible.

You've let my closed lips and ears be open.

You made my lips make presentation bravely and my ears relax.

Also, you enabled my rigid fingers and toes to be energetic.

I felt my warm strength in fingers, and distributed it to our team.

I felt my hot motivation in my toes and do my best on some chances.

Ana, I will remember your inspiration, warm heart and exemplary leadership.

Not only do you facilitate my five senses,

but also you can put wings on my shoulder and make them fly to the sky.

You already raised me up more than I can imagine.

That's why I will never, never say good-bye to you.




영시 낭송이 끝나자, 송별식에 나온 동료들의 박수가 나왔고

국장과 나는 오랜 시간 포옹한 채로 감사의 온기를 전했다.

그리고, 나는 잠시 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국장은 내부 심사를 통해 사무총장의 결재를 득하여 나를 WCO가 인정하는 TRS 분야 전문가로 공인한다는 자격증을 수여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전 세계 개도국을 대상으로 열악한 통관 환경의 개선점을 컨설팅해 달라는 워크숍 요청이 있을 경우 WCO는 나에게 출장을 요청할 수 있다. 바쁜 한국 생활에서 개도국 출장을 갈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무엇보다도 3년간의 투지와 그에 따른 성과를 누군가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은 분명 기분 좋은 일이고, 명예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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