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토랑에서 음식 주문 시 잘못된 메뉴가 나오더라도 왜 다른 것을 가져왔냐고 조목조목 따지기보다 ‘이것도 나쁘진 않다’라고 씁쓸한 웃음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 무단 횡단하는 사람도 많아 운전하다가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클럭션을 울리지 않고 그저 무던해지는 나의 수양된 모습을 발견한다. 수도나 난방이 고장 나면 테크니션을 요청하는 예약을 하는데 그들은 날짜만 정해줄 뿐, 시간을 정하지 않는다. 예약 날짜에 하루 종일 외출도 못 하고 그가 오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황당한 경우다. 한 번은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하루가 마감될 때쯤 테크니션이 아파서 다음으로 연기하자는 메시지가 올 때도 있다.
이런 일들이 잦은 편이라, 인내력이 없다면 화병이 나거나 혈압이 높아져 내가 앓아누울 수도 있다.
그렇게도 잘 참아오던 내가 드디어 인내력의 한도를 넘어선 일이 이태리 북부 여행에서 발생했다.
처갓집 식구 4명이 여름방학에 맞춰 벨기에에 놀러 왔다. 특히, 장인어른이 칠순이 되어 그 기념으로 효도관광을 직접 계획했고, 장소는 이태리 밀라노 북부를 아내가 직접 선택했다. 코모 호수와 루가노 호수 주변이 예쁘고 평화롭다 하여 가족들만의 오붓하고 차분한 시간을 갖고 싶어 3박 4일로 가게 된 것이다.
어른 5명과 아이 3명은 약간 흥분된 마음으로 저가항공사인 라이언 에어를 타고 베르가모 공항에 착륙했다. 시원한 호수를 상상하며 비행기를 내렸지만, 내리자마자 숨이 막힐 듯한 공기의 뜨거운 온도는 모든 사람의 미간에 인상을 찌푸리게 하였다.
입국장을 나와 우리는 한참을 걸어 2개월 전에 미리 온라인으로 예약한 허츠 렌터카 지점 앞에 도착했다. 경제적인 절감의 이유도 있었지만, 이태리가 골목이 비좁고 위험하다 하여 9인승보다는 다루기 편한 7인승 벤을 예약했다. 그래서 짐도 일부러 최대한 줄여서 공간을 적게 차지하게 하였다.
마침내 렌터카 숍 앞에 도착하니, 3명의 여직원이 수다를 떨다가 그중 최고 선임으로 보이는 닳고 닳은 표정의 50대 후반의 여직원이 우리 가족들을 한 번 둘러보더니 뱀처럼 인사를 먼저 건넨다. 그리고서는 늙은 여우처럼 나머지 2명 여직원에게 희미한 미소를 보내는 걸 나는 무심결에 봤다. 그 사악한 미소는 무슨 의미였을까? 왠지 불길함이 엄습했다.
그녀는 먼저 가족 숫자를 카운트하기 시작했다. 8 가족이 7인승 타는 것은 매우 불편하다며, 9인승 차로 업그레이드 하기를 추천했다. 나는 바로 거절했지만, 아내가 설득당하는 표정을 짓기 시작한다. 나는 몰래 뒤로 손짓을 하며 다른 가족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으라는 표시를 했다. 그리고 일관성 있게 원래 3개월 전에 예약한 데로 7인승 벤을 요구했다. 그녀는 교통경찰이 중간에 잡을 수도 있다며, 사고 시 보험금 이야기까지 장황하게 설명하며 단계적인 수순을 밟아갔고, 아내는 그 설득 논리에 무너져갔다. 부부간 의견 충돌을 뒤에서 처갓집 가족들이 목격하고 있었기에 내 논리는 무더위에 식어버리고, 결국 추천한 데로 9인승 차량을 선택했다. 그녀는 들쥐 같은 눈빛으로 컴퓨터를 보더니 추가 비용을 산정해서 인쇄해서 제시한다. 본래 305유로에서 순식간에 510유로로 견적액이 점프한다.
다음으로 그녀는 목을 뺀 미어캣처럼 아이들 3명을 유심히 살펴본다. 아이들 카시트가 필수이므로 의무적으로 3개를 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말은 법적으로 일리가 있었기에 바로 수용했다. 하지만, 그녀는 백설공주의 마귀할멈처럼 이렇게 말했다. “본래 한 개당 20유로인데, 3개 30유로로 50% 할인해 주는 거예요”라며 인심을 쓰는 너구리 같은 비굴한 웃음을 보여준다. 다시 540유로로 점프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이제 내비게이션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리가 직접 들고 온 Tom-Tom 내비게이션은 이태리 북부에서 사고를 많이 일으키는 주범이라며 다른 내비게이션 대여를 추천한다. 에어컨도 없이 선풍기만 틀어둔 그곳에서 그녀 목소리에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뒤에서 기다리는 가족들도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느냐고 투덜거리고 있다. 날씨가 38도까지 올라간 무더운 7월 초 한낮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네비게이션만큼은 완강하게 거절하고 그녀의 안내 동선에 따라 공항 옆 야외 주차장의 임시 컨테이너 사무실로 가족과 함께 10분간 걸어갔다. 오르막 길이었기에 가족들은 도착했을 때 이미 땀으로 젖어 있어 손 부채질을 할 뿐이었다.
나는 가족들을 컨테이너 임시 사무실 옆 그늘에 쉬게 하고 아내와 컨테이너 사무실에 들어가 다시 남자 직원과 대화를 시작했다. 그는 시원한 영어 발음과 외모를 지닌 신뢰 가는 얼굴빛이었다. 그에게서 차 열쇠를 받고 알려준 구역, 번호를 받아 가족들을 이끌고 다시 또 무더위의 아스팔트 위를 걸어갔다. 그곳으로 도착했으나, 리모컨 키를 아무리 눌러봐도 소리가 나지 않아 차 번호판을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찾다가 간신히 찾게 된 나는 먼저 차에 올라타고 시동을 걸려 하는 찰나에..... 이런 젠장.
‘이 9인승 차는 오토가 아니라 수동 기어잖아.’
나는 비록 오래전에 수동 면허증을 땄었지만, 최근 15년 정도 수동을 탄 적이 없어 운전을 할 수 없다. 특히 이태리에서는 길이 어렵고 복잡해 수동으로 몰다가 사고 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난 내리자마자 아내에게 원망하는 눈빛을 보냈다. 땀은 계속 비 오듯이 주르륵 흐르고 있다. 그 마귀할멈과 이야기할 때 내가 제시한 논거는 오토를 타기 때문에 내비게이션이 혼란스럽더라도 당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마귀할멈은 수익성에 눈이 어두워 내 말을 듣지 않고 9인승 수동 차량을 집요하게 배정해 준 것이다. 우리는 다시 컨테이너 사무실을 향해 돌아 걸었다. 장인어른, 장모님, 아내가 각각 왜 그러냐고 물었고, 화를 꾹 참으며 각각 대답해주었다. 벌써 도착한 지 1시간 가까이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난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그 청년에게 원래 신청한 차로 바꿔 달라고 요청했고, 그는 나를 데리고 7인승 차 2대를 보여줬다. 2대 모두 상태가 그렇게 좋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7인승은 카시트 할인이 안 되어 30유로를 추가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날씨는 35도 이상이었고, 화산의 마그마가 끓더니 순간 이성을 잃었다. 차 열쇠를 하늘 위로 던지면서 담배 한 가치에 불을 댕겼다. 평소 어르신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데, 연거푸 담배연기를 뿜었다. 그 잘 생긴 이태리 청년은 열쇠를 줍고 나를 진정시키더니, 그 마귀할멈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녀가 지금 공항에서 걸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기다리는 동안 나는 직원만 마시는 사무실 냉수를 직접 가족들에게 서빙을 하였고,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게 그간 지켜온 품격과 인내력을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긴 호흡을 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그녀는 공항 건물을 지나 저 멀리서 혓바닥을 내민 하이에나처럼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왔을 때 분명 나는 어쩔 수 없는 미소를 보여줬는데, 그녀는 오히려 황당하게도 나와 싸워보겠다는 의미심장한 얼굴이었고 컨테이너 임시 사무실에 들어가 컴퓨터를 두들겨 패듯이 키보드를 친다.
나는 순간 들고 있던 냉수 물을 그녀 얼굴에 쏟아부을 뻔했다. 1시간 넘게 8명의 가족들이 이리저리 걸어 다니며 흘린 땀이 이 물컵의 물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다. 그녀가 내민 변경된 인보이스에는 비록 7인승 자동으로 수정되어 있었지만, 가격은 거의 9인승 차량과 유사한 가격인 470유로였다. 나는 이마의 땀을 닦고 이유를 설명하라고 보챘지만, 말도 안 되는 차량 등급 이야기를 하길래 한숨 쉬며 밖으로 다시 나와 담배를 당겼다.
가족들이 보이지 않는 한쪽 구석에 가서 피려고 갔더니, 직원들이 마신 빈 생수통 5통이 쌓여 있었다. 한낮 3시의 온도는 37도까지 올라갔지만, 내 가슴은 100도 가까이 끓고 있었다.
효도관광을 위한 첫날, 가족들 앞에서 당하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불쌍하고 가련하다고 느꼈다. 나는 냅다 빈 생수통을 있는 힘을 다해 발로 찼다. 소리가 꽤 우렁찼으며, 생수통은 각자 자기 갈 길 찾아 멀리 나뒹굴었다. 순간 속이 후련했다. 그 모습을 본 임시 사무실 안의 직원들과 우리 가족들도 모두 사색이 되었다. 담배를 끊고 사무실에 들어갔더니 이태리의 그 마귀할멈은 원래 가격인 305유로 인보이스를 내밀며 다 헐어빠진 카시트 3개를 무료로 대여하겠다는 제안으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그녀는 사자에게 물려 눈이 하염없이 쳐진 비굴한 하이에나의 모습 그 자체였다.
결국, 우리 가족은 본래 예약했던 7인승 오토 새 차량을 타고 공항을 빠져나오는데 2시간 남짓 걸렸다. 에어컨을 최대한 세게 틀고 밀라노 공항에서 코모 호수 쪽으로 운전하면서 나는 내 품격과 인내력을 원상회복하기 위해 심호흡을 통해 진정하였고, 장인어른은 불의에 극복하지 않고 잘했다며 칭찬까지 해 주셨다.
우리는 그 날 제시했던 9인승 수동 차량과의 차액만큼 맛있는 저녁 만찬을 즐겼다.
우리는 2시간 동안 벌어졌던 땀의 전쟁을 모두 잊고 3박 4일의 즐거운 이태리 여행을 마치고, 새벽시간에 차량의 자동 반납 후 벨기에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그런데, 1년이 다 지나도 신용카드 결제도 안 되어 있으며, 보증금에 해당하는 디파짓도 내 은행 계좌에 남아 있지 않다.
나는 그 무더운 여름날, 가족들을 세워두고 전쟁을 치르면서 렌터카 사용료를 선불로 지불하지 않은 것이다. 아니, 그 마귀할멈은 내 여권도, 내 신용카드도 복사하지도 않았을뿐더러, 보증금 결재도 요청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도 역시 여권은 왜 안 보냐며, 신용카드는 왜 선결제를 안 하냐며 묻지도 않았던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엉뚱한 것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뱀, 여우, 미어캣, 들쥐, 너구리 같은 이태리 마귀할멈을 상대로 내가 승리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