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도둑과 심리적 트라우마

크로아티아 가족여행은 끝내줬지만.....

by 미스터 킴

벨기에에도 온 지 1년이 지난 후 가을이었다.

해외생활 천일의 중반에 접어든 시점이라 다소 안정감이 있는 생활의 연속이었고, 여행도 당황함보다 차분함이 더 지배적이었다.

처음에는 유럽 여행을 할 때마다 황당한 에피소드를 생산했고, 여행 도중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문제를 해결하는 당혹스러운 경우가 종종 있었다.


최근 ‘꽃보다 누나’ 프로그램 덕분에 한국 관광객이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크로아티아로 우리 가족은 가을 여행을 잡았다. 8박 9일간 자다르, 드브르브니크, 스플리트,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자그레브를 드라이브하고 브뤼셀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그 전의 여행보다 안정되고 가족의 웃음과 추억을 가장 많이 발견한 소중한 여행이었다.


기차를 타고 워털루역에 도착하여 9일간 기차역에 주차해 둔 차를 타고 안전하게 집으로 왔다. 집 앞에 주차하면서 현관을 바라보고 뭔가 머리가 쭈뼛 서는 느낌이 들었다.


‘뭐지? 왜 현관이 열려있지?’


밤 8시쯤이라 어두워서 더 공포스러웠다. ‘집주인이 왔다가 실수로 안 잠그고 돌아간 걸까?’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이미 울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도둑이 들었다는 직감이 드는 순간이었다.

모두들 내 뒤로 숨었고, 나는 문 안으로 들어가 불을 켜고 거실을 빠끔히 들여다보았다. 정말 가관이었다.

정리해 놓고 가는 도둑은 물론 없겠지만, 한눈에 봐도 서둘러 뒤지다 나간 느낌이었다. 서랍을 다 열어 놓았고, 심지어 냉장고 문도 활짝 열려 있어 반찬이나 야채가 모두 상해 있었다. 아이들은 울음을 그치고, 뭐가 없어졌는지 찾기 시작했다.


아내는 눈을 번뜩이더니 급하게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나는 도둑이 어떻게 들어왔는지가 궁금했고, 뒷문, 2층 창문, 주방 문 등의 상태를 점검했다. 문제는 정원 쪽의 뒷문이 거의 반 잠금 상태였다. 아내가 ‘2층은 안전해, 아예 올라오지도 않은 것 같아’라고 이야기하며 내려오고 있는데, 아내에게 나는 하소연을 했다.


“알람 설정하고 갔었어야 하는데....”


예전에 알람 설정하고 딸이 비밀번호를 잘못 눌러 경보음이 15분간 지속되어 여러 이웃에게 피해를 준 경험이 있어 그 이후로 알람을 잘 사용하지 않았다.


일단 피로감이 누적되어 있어 아내와 아이들은 씻고 잠자리에 들었고, 나는 어질러진 1층을 하나둘 정리하며 없어진 것을 하나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노트북 1대, 옛날 노트북 1대, 디지털 거리 측정기, 짝퉁 싸구려 시계, 액정이 깨진 핸드폰 1개, 그리고 아이들 저금통 2개.....”

금전적으로 큰 손해는 아니었지만, 노트북이나 핸드폰에 있던 아이들 사진과 동영상, 그리고 꾸준히 써 내려간 내 일기 파일과 업무 파일들이 사라진 게 큰 손해였다.

혼자 애꿎은 담배만 피우면서 속상한 마음을 달래 보려 했지만,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아내에 대한 원망도 뒤섞인 복잡한 심정뿐이었다. 두통으로 괴로워하다가 씻지도 않고 바깥을 경계하며 지켜보았다. 억울하고 분통이 복받쳤다. 그리고 도둑이 성큼성큼 걸어 다니며 집안을 뒤졌다는 사실에 몸서리 쳐지게 찝찝하고 불쾌했다.


다음날, 회사에 출근해 일하는 나에게 아내가 전화가 왔다. “우선,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할 것 같아. 그래야 주택 보험사에 보험금 청구를 하지.”라며,

집주인에게 주택보험에‘도난’이 포함되어 있는지 확인해보라고 했다.

그때 나는 갑자기 예전 생각이 떠올랐다. 다른 동료들은 주택보험을 연 300에서 500유로 낸다고 하던데, 나는 대략 100유로로 싸게 한 것을 자랑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역시나, 집주인에게 확인해보니 도난은 포함되어 있지 않고, 시설물 파손과 화재만 보상 범위에 포함된다고 한다.

그리고 도난이 가입되어 있더라도 잃어버린 물건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영수증 등의 증빙서가 꼭 필요하다고 한다. 그렇게 큰 쇼크가 되는 뉴스는 아니었다.

잃어버린 물건은 다시 사면 그만이지만, 아이들의 어렸을 적 사진과 동영상, 내 일기는 되찾을 수가 없는 소중한 것이었다.


아내는 잠시 후 다시 전화가 왔다. 우리 자동차 스페어 키도 서랍 속에서 사라졌다고.....


그렇다면 도둑은 언젠가 다시 와서 주차장에 있는 내 차에 시동을 걸고 밤에 유유히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인가..... 나는 그 날부터 잠이 오지 않았다. 30분 간격으로 차가 그대로 있는지 확인하고, 새벽에 일어나 새우 포즈로 차를 지켜보곤 했다.

나는 그 트라우마에 한참 시달리다가 당분간 내 차를 멀리 떨어진 공용 주차장에 세우고 걸어오곤 했다. 누가 뒤따라 오는지 계속 뒤돌아 보기도 했다. 자동차 키를 개조하라는 주변 충고도 있었으나, 비용이 만만치 않았고 거라지에 맡긴다면 3주간 차를 사용할 수 없어 아이들 학교 픽업을 할 수 없다.

결국 시간이 흘러 갈수록 나의 트라우마는 서서히 줄어들었고, 오히려‘도둑이 가져가면 할 수 없지’라며 배짱까지 생겼다.


어쨌든 유럽의 도둑님께서 우리 집에 방문하시어 우리에게는 100만 원 정도의 금전적 손해도 있었지만, 아이들 어렸을 적 귀여운 사진들이 그리웠고, 가족들의 트라우마적 심리 손상도 큰 손해 중 하나였다.

그 이후로 우리 집 도둑 사건은 한인 커뮤니티에 도둑을 주의하라는 경고 메시지의 역할이 되었으나, 서너 건의 도둑 사건이 연이어 추가로 일어나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해외에서는 참 많이 해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래서 해외 생활을 하면 견문이 넓어진다고 했던가....



크로아티아의 방목한 양들을 바라보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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