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 토끼를 키울 줄이야...

루시, 그리고 릴 두 토끼가 가족으로 합류되다.

by 미스터 킴

처음 브뤼셀 공항에서 가족들과 내려 향했던 곳은 워털루에 있는 임시주택이었다. 주택의 종류에는 피상적으로 아파트, 빌라, 주상복합 등의 빽빽한 서울 주택들이 문득 떠오를 수 있겠지만, 우리 가족은 여기에 오기 전부터 희망했었다. 풀밭 정원과 큰 나무가 있는 주택에서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곳에 살아보기를.


그랬다. 분명히 우리가 도착한 임시주택은 큰 오크나무가 지붕보다 세배 정도 높은 자리에서 균형감을 유지하며 지붕 위로 드리워져 있었다.

주인집의 풀밭 정원은 프리킥을 찰 수 있을 정도의 넓이여서 아들인 허니에게 엄지발가락이 파랗게 멍들 정도로 바나나킥을 선보였으며, 긴 비치 의자 두 개가

정원의 주인인 양 중앙에 자리 잡고 있었다.


주택 2층에 올라가 아이들이 중앙 창문을 열면 동화 속의 ‘헨젤과 그레텔’ 같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집도 과자로 만든 것처럼 아기자기했고,

옆의 반쪽 집에 살던 집주인도 비록 동화 속의 마귀할멈같이 생겼었지만, 우리 아이들을 잡아먹을 정도로 표독스럽진 않아 다행이었다.

2층 창문에서 밖을 보면 멀리 밀밭이 펼쳐져 있었고,

더 멀리에는 풍력 발전으로 돌아가는 하얀색 풍차가 선명해 사진에 필연적으로 담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가족은 2층 침실 한 방에서 잠잘 때마다 유리로 된 천장 창문에서 비가 떨어져 유리에 번지다 아래로 지그재그 흐르는 물줄기를 보곤 했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은 촘촘한 별들을 보며

어린 왕자처럼 꿈속으로 이어지는 경험을 하곤 했다.


도착 다음 날, 시차가 적응이 되지 않아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해 뜰 무렵에 담배를 피우려고 미닫이문을 나서는데,

쏜살같이 도망가는 흰 꼬리의 몇 마리 동물들을 보았다. 그것은 분명 처음 보는 야생 토끼였다.

그들은 한참을 도망가다 멈춰서 귀를 쫑긋하고 사주경계를 한다. 담배를 다 피고 집에 들어와 전기불도 켜지 않고 커튼 사이로 토끼들 행태를 관찰하고 핸드폰으로 몰래 촬영을 시작한다.

캄캄해서 선명하지 않지만, 다시 못 볼 수도 있다는 조급함 때문에 일단 찍는다. 그들은 점점 집 앞의 풀을 먹기 위해 집 가까이 깡충깡충 다가오고 있었다. 난 짓궂게도 시차 적응도 못하고 잠든 아이들을 아침 6시에 깨워 1층으로 데려왔다.


6살 아들 허니와 3살 딸 으니는 신기한 듯 머리를 맞대고 커튼 사이로 조심히 지켜봤지만,

작은 소리만 나도 멀리 도망가 버리는

예민한 초식동물들이었다.

우리는 당근과 상추가 있는 삿갓 덫을 만들어 끈을 붙들고 한참을 기다려도 봤지만 별 소용없었으며,

토끼들의 터인 나무더미 아래 동굴 앞에서 쭈그려 앉아 기다려도 봤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루는 아이들과 손잡고 울타리 옆으로 살금살금 걸어

토끼 동굴로 접근해 걸어가고 있었는데....

5미터 앞에 미송나무 옆에서 불쑥 빨간 털의 여우가 지나간다. 우리 셋은 순간 얼음처럼 굳었고,

허니가 속삭였다.


‘어, 여우다!’


나는 순간 어렸을 적 과학 시간에 배운 먹이사슬이 떠올랐다. ‘그래. 토끼의 천적은 여우였지.’ 토끼를 본 신기함으로 잡고야 말겠다는 야심을 가진 지 이틀도 지나기 전에 꼬리가 몸만큼 긴 여우까지 여기 와서 보게 될 줄이야. 여우도 토끼를 잡아야겠다는 야심 찬 표정이 보여서 전우 같은 동지애까지 느껴졌다.

‘그래. 너라도 토끼를 잡아라. 상처 입은 토끼를 빼앗아 우리가 치료해주고 잘 보살펴 줄 테니.’

라고 혼자 속삭였다.


그때 이후 으니는 토끼를 키우고 싶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고, 허니는 동물 털 알레르기가 있어 절대 키울 수 없다는 것이 아내의 항변이었다.

허니는 개나 고양이를 만지면 재채기를 하기 시작했고, 크리넥스 티슈를 한 번에 절반 가까이 쓰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5월 어린이날이 다가오고 있을 무렵, 우리는 동네 인테리어 숍을 구경하고 있었다.

아내가 평소 쇼핑을 할 때 오랜 갈등 시간을 보내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와 으니는 못 참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런데 바로 맞은편에 ‘Tom & Co'라는 간판이 보였고

문 앞에 개집, 고양이집 등이 프로모션 되어 판매되고 있었다.

왠지 저기를 가면 뭔가 딸 으니에게 흥미 있는 무언가 있을 것이라는 직감으로 들어갔는데....

나와 으니는 동공에 지진이 일어나며 바야흐로 탄성을 지르고야 말았다.

봄날에 주먹만 한 새끼 토끼 5마리가 울타리 안에서 코를 찡긋거리거나, 양 손으로 세수를 하고 있었다. 색깔도 다양하고 귀가 쳐진 것도, 쫑긋한 것도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상의할 필요도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만 하고 으니가 고른 2마리 토끼(흰색 쫑긋 귀와 갈색 쳐진 귀)와 사료, 건초, 토끼집을 사서 차에 실었다.


이렇게 우리 가족과 2마리 토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애완 토끼는 난생처음 키워보게 된 것이다. 생명체를 집에 키운다는 것은 미래에 있을 즐거움과 슬픔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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