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봄날 햇살이 잘 비치는 집 뒤편에 토끼집을 배치했고, 우리 가족의 모든 관심과 애정을 그들이 독차지했다.
흰색 쫑긋한 귀는 ‘루시’라고,
갈색 축 쳐진 귀는 ‘릴’이라고 으니가 직접 이름을 지어줬다.
보고만 있어도 사랑스럽다는 표현은 자식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왜 사람들이 애완동물을 키우는지,
왜 같이 공원 산책을 하며 똥을 비닐에 담아 넣고,
같이 병원에 가고 미용실을 가는지
시간이 가면서 서서히 공감하게 되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보호하고 잘 키우기 위해 집중해서 공부를 하게 되고, 인터넷을 검색하고, 토끼 사육 카페 회원이 되고,
워털루역 주변에서 민들레와 아카시아 잎을 뜯게 되고... 이런 것이 ‘사랑’인가 싶다.
굳이 국어사전에 나만의 ‘사랑’을 정의하라 한다면
‘한 대상에 대해 꼼꼼히 알고 같은 것을 느끼고 미래를 계획하는 박사 되기’라고 정의하고 싶다.
한 번은 꽃핀 민들레를 역 주변에서 꺾어 모아 쥐고 있는데, 지나가는 여인이 나에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여 주었다. 아마 그녀는 내가 누군가와 연예 중이며, 꽃 살 돈 없는 가난하지만 낭만적인 남자라고 생각한 것 같다.
내 컴퓨터의 즐겨찾기 맨 위에는 어느새 토끼 카페, 토끼 블로그 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일에 집중할 때는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토끼 관련 사이트를 보게 되면 입가에 미소가 스며들어
업무 스트레스를 분쇄시킬 수 있었다.
그 당시 내 사무실의 앞자리 짝꿍인 불가리아 출신 비아라는 내 표정만 봐도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구별할 수 있다고 하였다.
직장 동료들도 나의 토끼 키우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고 어떤 이는 여러 가지 키우는 팁도 주었다.
결국 나의 애정과 열정은 토끼의 건강한 성장으로 연결되었고, 난 ‘토끼 박사’라는 별명으로 애완동물 협회의 훈장이라도 수여받은 느낌까지 들었다.
토끼들은 집에 갇혀만 있지 않고 가끔 뒤뜰에 풀어놓았다. 사랑하면 구속하는 것이 아니며 자유를 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가끔씩 뒤뜰에서 사라져서 ‘다시는 집 밖으로 내놓지 않아야지’라고 원망하며 씩씩거리기도 했다. 자식 교육도 이처럼 규제와 자율성 사이에서 어디에 기준점을 둘 것인가에 대해
수없이 갈등을 반복해 가는 게 아닌가 싶다.
한편, 하루는 허니가 갈색 토끼 릴이 없어졌다며
우는 목소리로 회사에 전화가 왔다.
평소대로 회귀 본능에 따라 다시 뒤뜰에 나타날 것이라 믿었지만, 이틀간 깜깜무소식이다. 와이프는 결국 허니의 등쌀에 못 이겨 함께 손잡고 직감적으로 이웃집들의 초인종을 누르며 방문하기 시작했다.
“혹시 갈색 토끼를 보셨나요?”
휴일 쉬고 있는 노랑머리, 갈색머리 이웃들에게 부끄럽고 생뚱맞은 질문이었지만,
그런 것도 다 감수하며 찾아야만 하는 것이 사랑이다.
결국 뒷집 태국계 여성이 릴을 이틀간 데리고 있었고,
그녀는 소파에 앉아 한참 동안 아내와 아들에게 수다를 늘어놓았다고 한다.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자기는 불교를 믿는 신자이며, 토끼를 정원에서 보자마자 부처님께서 보낸 선물이라 믿고 사원 - 벨기에에도 불교 사원이 있을 줄이야... - 에 데려가 스님과 상담하고 이미 기념사진까지 찍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릴에게 귀한 물인 태국 원산지 생명수를 먹이고 있어 생각지 않게 귀공자 취급을 받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전에 주지스님은 그녀에게 토끼로 사후 환생할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냥 토끼를 바로 주인에게 돌려주지 않았던 죄책감과 겸언쩍음 때문에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은 핑계가 아니었고, 그녀는 진지했고 눈빛까지 반짝거렸다고 한다.
루시와 릴을 그리워하며 대체 인형 토끼를 곁에 두는 딸 으니
반면, 흰색의 날렵한 쫑긋한 귀 루시는 길 고양이의 잦은 뒤뜰 방문에 계속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살쾡이 같이 큰 그 고양이가 보이기만 하면
눈까지 빨갛게 충혈될 정도로 잠도 못 자고
구석에서 공포를 드러내곤 했다.
결국 루시는 키운 지 3개월도 안 되어 가출을 하였고, 다시 찾을 수 없었다. 릴과 함께 서로 털 다듬어 주기를 해주며 서로 기대어 낮잠을 자는 모습이 평화롭고 사랑스럽기까지 했었는데...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인지 행방을 알 수 없었다.
고양이 때문에 짐을 싸서 유럽 여행을 떠난 것일까?
이웃집 여성의 극락 환생을 위해 릴 대신 유괴된 것일까? 아니면, 수컷 야생 토끼를 외출했다가 만나 갑자기 로맨스라도 빠진 걸까?
그렇게 상념에 잡혀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결국 시간이 지나가면서 먼지처럼 그저 잊혀갔다. 인간의 스쳐가는 여러 인연처럼.... 루시는 그렇게 실종되었다.
원래 알고 있었지만, 동물과의 이별도 사람과의 그것처럼 어떻게 할 수가 없구나. 큰 네모가 작은 네모가 되어가고, 작은 네모는 점으로 변해가고, 결국 먼지처럼 사라지는 것. 과거의 기억들처럼 모든 추억은 그렇게,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시나브로 사그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