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 후 토끼, 골프, 그리고 교회

by 미스터 킴

해외생활은 장밋빛만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 생활보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은 것은 분명 축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시간에 갈등 요소가 있다면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이 될 수 있다. 우리 부부에게 힘든 시간을 제공한 3요소는 토끼, 골프, 그리고 교회였다. 부부싸움 해소를 위해 이 3가지에 반드시 변화가 있어야 했다.


먼저 가출한 토끼 외 하나 남은 갈색 쳐진 귀를 가진 토끼 릴을 이야기해보자.

1년 가까이 잘 관찰해보면, 릴에게 밥 주고, 안아주고, 토끼집 청소를 해주는 사람은 오직 나와 으니뿐이다. 이유는 허니의 동물 털 알레르기 때문이다. 애초에 토끼를 사는 것은 사실상 어불성설이었다. 의사가 절대 허니를 위해서 동물을 키워선 안 된다고 하였는데, 토끼를 보자마자 내 본능과 으니의 동조로 다급하게 일을 저지르고 말았던 것이다. 아내에게 토끼 구매 허가를 요청한 것이 아닌 일방적 통보를 했을 때, 아내는 토끼를 집 밖에서만 키운다는 조건만 간신히 제안할 정도로 나와 으니의 강한 에너지에 그녀는 저항도 못하고 꺾이고 말았다.


하지만, 2017년 겨울은 유독 춥고 길었다. 토끼가 혼자 바깥 집에서 얼어 죽을까 봐 그저 노심초사했다. 사실상 식구들이 일찍 10시에 잠들면 혼자 책을 보든, 영화를 보든, 일기를 쓰든 뭔지 모르게 곁이 허전했다. 그래서 나는 토끼를 집 안으로 몰래 데려왔고, 둘만의 소통 시간을 가졌다. 당근, 바나나도 주고 품 안에 넣은 채로 밀린 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침이 되기 전에 토끼를 원위치에 갖다 두어도 토끼 흔적이 집 안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그 흔적은 구슬 같은 똥도 아니고, 앞니로 물어뜯은 커튼도 아니었다. 바로 릴의 털이다. 아들 허니는 아침마다 재채기를 심하게 했고 코를 푼다. 그럼 아내는 나를 다그치고 눈을 흘긴다. 다시는 토끼를 집 안에 데려오지 말라고, 약속을 강요한다. 결국, 이 토끼 릴은 그 해 춥고 우울한 겨울날 부부싸움의 큰 원흉으로 자리 잡았다.



둘째로 할 이야기는 골프이다.

5일간의 근무를 마칠 때쯤 토요일 새벽시간의 골프 약속을 잡는 게 남자들의 탈출구가 된다. 하얀 공 하나를 푸르른 자연 속으로 날릴 때, 비교할 수 없는 평화의 짜릿함을 느끼곤 한다. 주로 골프는 토요일 오전 일찍 치기 시작하여 점심 먹기 전에 가족에게 돌아와 남은 반나절을 함께 보내는 것이 가족 친화적인 생활의 정석이다.
따라서, 일주일에 한 번 이른 아침에 골프를 치는 것 자체는 아내가 문제 삼지 않았다. 문제는 골프대회 간사가 되면서 시작되었다. 간사 임기는 1년이고, 매월 한 번 대회가 있으면 준비하고, 공지하고, 당일 날 시상식까지 마치면 늦게 집에 돌아올 수밖에 없다. 사실상 아내뿐 아니라 아이들의 원망 섞인 볼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아빠는 왜 이렇게 늦게 와? 토요일에도 회사 다녀?”


어떻게 보면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으로 아이들에게 비칠 수도 있겠다. 사실상 골프 간사는 보람도 있고 다양한 계층의 사람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도 되지만, 내 고유의 주중 업무에도 다소 지장을 주는 경우도 많아 여러 가지로 폐해가 되는 부분이 있다고 고백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교회 이야기를 하고 싶다.

벨기에에 나오기 전, 나는 기적 같은 일을 경험했다. 많은 나이에 유학시험을 거의 1, 2점 차이로 연거푸 떨어지면서 포기 단계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천운이 도와주는 타이밍과 영어성적, 관련 경력 덕분에 인생역전의 드라마 같은 기적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이러한 새옹지마의 천운은 하나님만이 가능하다고 믿게 되었다. 난 아내를 설득시켜 1년간 벨기에 한인교회를 거의 매주 다녔고, 심지어 신입 오리엔테이션을 담당할 정도로 모범적인 신앙 생활을 하였다. 하지만, 아내는 과거에 무교였고 오히려 반기독교적인 종교철학이었는데도, 사회 활동 및 정보 교환 명목으로 남편을 그저 편한 마음으로 따라다닌 것에 불과하였다.


문제는 1년이 지난 후 발생했다. 해가 바뀔 때마다 교회 봉사할 사람은 부족해지기 마련이다. 그럼 1년간 열심히 다닌 사람에게 ‘여전도회 부회장’ 등의 간사를 맡아줄 것을 제안한다. 아직 믿음도 약하고, 동네 슈퍼마켓 다니는 마음으로 다니는 아내에게 그와 유사한 제안이 오고야 말았다. 물론 단번에 아내는 거절했고, 그 이후에 약간의 교회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교회에 나가기 싫다는 갑작스러운 아내의 통보, 거기에 허니까지 합세해서 일요일에 기도보다 축구를 하러 나가겠다고 졸랐다.


그 후로 1개월간 딸 으니와 단 둘이 교회를 나가보긴 했지만, 뭔가 허전했고 가족이 반으로 갈라진 느낌이어서 결국 나와 으니도 교회 나가는 것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그 이후로 나는 가족 화목의 정상화를 위해 3개 분야인 토끼, 골프, 교회 3가지 분야에 큰 결단을 내린다.


교회는 다니지 않았고, 골프 간사는 1년 남짓에 그만두고 후임자를 뽑고 물러났다. 그리고, 토끼는 높은 곳에 장난 삼아 올려놓았는데 잘못 떨어뜨려 뒷다리를 절더니 믿기지 않게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 금방 회복될 줄 알았는데, 결국 수의사에게 데려갔더니 MRI 촬영 후 큰 돈을 들여 수술하거나, 안락사를 해야 한다는 청천벽력의 소견이었다. 한 달간 릴은 대·소변을 스스로 못해 내가 대신해 주었지만, 소리를 못 내는 토끼의 고통은 알기가 힘들었다. 자신 몸의 털 다듬기도 결국 못하고, 건강한 원형 모양의 단단한 똥도 배설하지 못했다.


결국 지켜보는 가족들도 힘들었고 안락사도 내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시름시름 힘이 없어지고 좋아하는 풀도 먹지 않는 모습을 보다가 어느 날 토요일 아침, 릴이 정원에 아침 이슬을 머금고 젖어 누워 있는 것을 보고 그녀의 죽음을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이 잠에서 깨기 전에 합판으로 급하게 목관을 만들고 꽃을 넣어 경건하게 장식을 하였다. 그리고, 뒷마당 창고 뒤에 묻어주고 진중하게 아이들과 장례를 치러주었다.

지금은 그 자리에 민들레가 활짝 피어 있다. 가끔 릴의 뛰어노는 동영상이나 딸과 찍은 사진을 보면 가슴이 무너져 내려 이를 악물고 하나씩 하나씩 사진을 지워가고 있다.


그러고 나서...
아침마다 들리던 허니의 재채기와 코 푸는 소리도 차츰 사라져 갔다. 골프 간사를 포기하고 릴이 죽은 4월 말, 한인 골프대회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처음으로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사라진 토끼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금붕어 3마리를 사서 어항에 키워 보았지만, 예전과 같은 반려동물과의 교감은 사라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내와의 부부 싸움은 더 이상 지속되지 않았다.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토끼, 골프 간사, 교회 다니기 등 3대 분야가 구조조정이 된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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