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한국 여름은 무지 덥다는 뉴스가 계속 들려왔다. 하지만, 유럽은 상대적으로 덥지 않은 편이었으며, 특히 북쪽인 덴마크 LEGOLAND에서 휴가를 보냈기에 심한 더위는 느끼지 못했다.
그 한국의 무더위가 식을 무렵, 올해 칠순이 되신 장인어른이 유럽에 최초로 방문하셨다. 물론 다른 처갓집 식구들(장모님, 처제, 조카)도 동행하였다. 동서가 왕복 비행기 티켓을 샀고, 나는 약 2주 동안 처갓집 식구와 여행을 함께 하는 역할 분담으로 칠순 잔치를 대신한 셈이다. 칠십 평생을 오로지 가족을 위해 희생만 해 오셨던 장인어른도 어느덧 몰라보게 얼굴에 주름이 많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한편, 장인어른은 퇴직 후 퇴행성으로 허리 디스크 문제를 겪고 있었다. 당신께서는 간단한 시술로 계속 버티겠다는 생각이었고, 장모님은 수술을 해야 한다는 강력한 의견으로 상호 분쟁 중이셨다.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문제가 심한 편은 아닌 것으로 보여 장인어른 편을 들었다. 왜냐하면, 아이들과 수영장을 가서 슬라이딩을 타는데도 무리가 없으셨고, 골프 스윙과 임팩트도 부드러웠기 때문이다.
하루는 여성과 남성이 서로 분리된 팀으로 관광을 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장모님, 와이프, 처제, 으니, 그리고 조카까지 5명 여성은 북쪽에 있는 아웃렛 매장으로 쇼핑 관광을 가겠다는 것이다. 그 매장에는 대형 놀이터가 있어 어린 두 딸과 조카를 거기에 맡겨놓고 삼총사인 모녀는 집중 쇼핑을 하겠다는 복안이었다.
유럽의 8월은 아웃렛 매장의 할인 시즌 막바지라 50~70프로까지 대폭 세일을 하기에 관광객의 찬스 시즌이 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장인어른, 허니와 함께 삼대가 함께 하는 특별한 여행을 기획했다. 우리가 선택한 곳은 차로 1시간 거리인 벨기에 남쪽의 대표 관광지인 나뮈르와 디낭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왈론 지역의 예쁜 도시였다. 두 도시 모두 전망 좋은 곳에서 강줄기와 도심을 내려다보면서 맥주 한잔 할 수 있는 여유와 낭만이 가득한 평화로운 도시다.
아침에 남성팀은 여성팀과 상관없이 먼저 출발하기로 하였다. 왜냐하면, 집 근처 워털루역 주변에 재래시장이 일요일 아침에만 열리기에 특별히 구경을 시켜드리고 떠날 생각이었다. 소탈하게 좌판을 연 장사꾼부터 푸드 트럭으로 장사하는 사람까지 생동감 있는 유럽의 전통시장을 보고 장인어른은 매우 즐거워하셨다.
그런데, 구석진 한 편에서 사람들이 줄 서서 미소를 지으며 계속 사 가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올리브 절임도 아니요, 형형색색의 치즈도, 독일 소시지도 아니었다. 우리나라 통닭과 비슷한 바비큐 닭이 쇠꼬챙이에 끼워진 채로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장인어른은 저 먹음직스러운 닭을 사 가자고 제안하셨고, 전망 좋은 곳에서 돗자리를 펴고 저 닭과 맥주를 마시면 운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세 명이 먹으면 배부를, 잘 익은 큰 놈으로 하나 샀다. 하지만, 가게는 일회용 칼이나 포크 같은 도구를 전혀 주지 않았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이때 장인어른은 내게 제안을 하였다.
“집에 다시 들러서 칼과 포크를 챙겨 가자. 내 허리 디스크 약과 파스도 챙겨 가는 게 좋겠어.”
나는 한시라도 빨리 가서 관광을 하고 싶었지만, 집까지 10분 정도밖에 안 걸리므로 시큰둥한 상태로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집 앞에 아내 차가 보이지 않는 걸 보면 여성팀은 이미 아웃렛 매장으로 급하게 떠난 듯 보였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갔는데, 주방과 거실은 하얀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여성팀 어느 누구도 인덕션 위에 올려놓은 꼬리곰탕 솥을 신경 쓰지 않고 급하게 쇼핑을 향해 돌진한 흔적들뿐이었다. 나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달려가 인덕션의 전원부터 끄고 환기를 시키기 위해 모든 창문을 열었다. 솥 안을 들여다보니 꼬리곰탕 국물은 모두 사라지고 까맣게 그을린 꼬리뼈만 낭자하고 있었다.
장인어른도 또한 황당해서 혀를 차며 ‘야, 큰 일 날 뻔했다.’고 거듭 반복하셨다.
나는 화가 나서 씩씩거리다가 여성팀 대표인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장난을 쳤다.
“여보, 소방서에서 전화 왔는데, 우리 집이 모두 타 버렸다고 하네. 이를 어째. 대체 왜 불이 난 거지?
당신은 알아? 누가 와서 불을 지른 걸까?”
아내는 운전하다가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새파랗게 질린 목소리를 내며 갓길에 급하게 차를 세운 모양이다. 결국 내 장난인 줄 알고 안도의 한숨을 쉬긴 하였으나, 아웃렛으로 돌진하던 여성팀 모두들 심장을 쓸어내렸을 것이다. 출발한 지 20여분이 지났는데도 여성팀 누구도 그런 실수가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50프로 세일로 절약할 수 있는 아웃렛 쇼핑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집을 태우면서까지 그렇게 급하게 가야 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난 그날에 겪은 경각심으로 인해 항상 화재, 도난 등으로부터 집의 안전을 강조하는 ‘피곤한 잔소리꾼’이 되었고 그 이후로 값비싼 집 보험을 들게 되었다.
지금도 나는 그때의 사건을 가끔 혼자서 곱씹어본다.
‘장인어른이 허리 디스크 약과 파스를 미리 챙겼다면 정말 큰 일 날 뻔했다. 그리고 워털루 재래시장에서 일회용 칼, 포크를 주었더라면 나뮈르라는 전망 좋은 도시를 바라보다가, 우리 집이 모두 탔다는 소방관의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을 뻔했다. 그것도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그것도 한국말도 아닌 불어로....'
'정말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그리고, 1년 후 우리 가족은 한국으로 귀국을 했고 장인어른은 시술로 버티시다가 결국 허리 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조용히 병원에서 장인어른의 허리를 어루만지며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