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살면서 가장 좋은 것을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때의 날씨라고 할 것이다.
겨우내 비 오고 우중충한 날씨를 이기고햇살 좋은 날 푸르게 자라난 잔디 위로 달리는 아이를 보면 긴 겨우내 우울했던 마음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영국의 봄날은 코로나로 인해 늘 겨울일 것이라 생각하던 내 마음을 흔들어 대고 있다.
그러나 나는 밖으로 나가길 망설이고 있었다.
영국 현지 상황 2020. 05. 06 기준:
영국의 신종 코로나 사망자가 이탈리아를 넘어서며 유럽 내 1위를 달성했다. 바이러스 확진자는 20만 1천101명으로 사망자는 3만 명이 넘어섰다. 이를 심각하게 생각한 영국 과학자들은 정부의 안일한 태도를 지적하며 영국 인구의 50만 명이 사망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내놓았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는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듯 보인다. 하루 사망자 600명이 넘는 현 상황에도 좋아지고 있다며 다음 주부터 서서히 락다운을 풀 계획을 발표할 거라고 말하니 말이다. 일부 언론 매체에서는 그 과학자들의 사적인 치부를 들춰내며 연구결과가 주는 경고 메지지에 물타기를 하는 모양새이다.
영국 정부는 바이러스가 시작될 때부터 안일하게 대처해왔다. 집단 방역체계를 갖추어 바이러스를 사라지게 할 것이라고 하기도 하고, 마스크를 끼는 것이 바이러스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떠들어대기도 했다. 상황이 악화된 이후에도 이탈리아나 스페인만큼의 강한 통행금지는 하지 않았고 여전히 일일 한 번의 산책을 허용하고 있다. 강력한 락다운으로 하루빨리 코로나를 종식시키려는 의지가 안 보이는 영국 정부에 대한 심한 반감이 들었다. 사람의 생명보다 중요한 게 무엇이란 말인가.
창문 밖으로 건너집에 아이들이 마당에 나와 노는 모습이 보였다. 자전거를 타고 좁은 마당에서만을 빙빙 돌고 있었다. 아빠를 "친구야~"라 부르며 노는 딸아이는 점점 집안에서 노는 것에 달인이 되어가는 듯했다. 참을 수가 없었다. 한창 보고 만지고 느끼며 성장해야 하는 아이를 집에만 가둬둔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 밀려왔다.
'그래, 밖으로 나가보자!'
역시 영국의 봄 날씨는 겨우내 얼어있던 내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쨍한 햇살과 하늘 위로 솟은 뭉게구름까지. 아이 역시 넓은 공원을 뛰어다니며 자연이 주는 기쁨을 만끽하기 시작했다. 비둘기를 졸졸 쫓기도 하고 풀숲을 해치며 통나무 사이를 오르락내리락거릭기도 하고 풀밭에 누워 꽃들도 바라보았다. 아이에 대한 미안함을 덜어낼 수 있어서 뿌듯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제 또래의 아이와 놀고 싶어 달려가는 아이를 불러 새워야 했고, 락다운 이후 잠겨 있는 놀이터 앞에 문을 열어달라고 졸라대는 아이를 지켜봐야만 했다.
계속되는 경제 재재 속에, 락다운을 풀어달라며 데모 혹은 폭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뉴스가 귀에 들어왔다. 당장의 일자리가 없으면 굶어 죽을 이들에겐 경제의 회복이 바이러스 병에 걸리지 않는 것보다 더 큰 문제였을 것이다. 그 절실한 상황과 마음이 이해가 된다. 나 또한 걸릴지 안 걸릴지 모르는 바이러스 때문에 아이를 집에만 둘 수 없다 여겼기에. 하물며 오늘 당장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했으랴. 적어도 우리에게 공원을 달릴 수 있는 자유는 있지 않는가. 새삼 영국의 느슨한 통행금지 조치가 다행스럽다고 느껴지다니,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어릴 적 언제든 대문을 열고 나가 삼삼오오 모여있는 친구들과 흙장난을 하며 바닥에 떨어진 과자들을 주워 먹으며 놀던 나는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 때문에 가슴이 아프다. 하루빨리 온 세상의 아이들 모두가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