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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피늄 Aug 11. 2019

유치원, 예쁜 추억이 가득해서 애틋한 곳

싱그러운 봄과 초여름의 기록


내년 봄이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아이가 학교에서 새로운 첫출발을 하듯 나 역시 학부모가 처음이다.

'처음'이 주는 막연한 부담감과 걱정은 올해가 유치원의 마지막이라는 아쉬움과 한데 뒤섞여 복잡 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아이가 다니고 있는 유치원은 색색의 꽃과 푸른 나무들이 어우러져 있어 어느 하나 예쁘지 않은 곳이 없다. 마치 동화책에 나오는 숲 속의 아늑한 집처럼 아기자기한 이 곳은 언제나 그림 같다.


유치원으로 들어가는 길목 양 옆으로는 커다란 벚나무들이 숲 터널을 이루어 줄지어 서 있다.

벚꽃이 만개하는 봄이 되면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지금 이대로 계절이 멈췄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바람이 부는 날 벚꽃이 흩날리며 연분홍빛 꽃비가 내리는 모습은 정말 황홀하다.

벚꽃은 피어있을 때도 아름답지만 지는 모습은 더욱 아름다워 매번 아쉽고도 아련한 여운을 남긴다.



하나 둘 지는 벚꽃처럼 흘러가는 봄이 아쉽기만하다



벚꽃이 지면 그 아쉬운 마음을 달래주기라도 하듯 돌담 옆 아기사과나무가 꽃을 피운다.

푸릇푸릇한 이파리 사이로 보이는 진분홍색 꽃망울과 순백의 사과꽃은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도 청순한지 오래도록 보고 싶어 사진으로 예쁘게 담아 간직하고 있다.



유치원 돌담 옆 예쁜 사과꽃



이밖에도 매화나무, 배나무, 진달래, 단풍나무, 은행나무, 동백나무 등 각자의 자리에서 계절이 오고 감을 알려준다. 그래서일까.

아이는 유치원을 다닌 후로부터 식물에 관심이 많아졌다.

유치원 여기저기에 피어있는 키 작은 풀꽃들을 발견할 때마다 예쁘게 자라라고 인사를 하는 아이의 순수한 모습이 정말 사랑스럽다. 이 예쁜 마음을 커서도 오래 간직했으면 좋겠다.


아이가 나랑 유치원에서 놀 때 가장 첫 번째로 하는 놀이는 모래밭에서 하는 소꿉놀이이다.

나는 손님, 아이는 요리사이고 의자에 앉아 기다리면 모래로 이것저것 열심히 만들어 갖다 준다.

특히 이 집은 채소볶음과 커피를 잘 만드는데, 갈 때마다 항상 맛있게 먹는다.


셰프님, 다음엔 고기도 좀 주세요.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그렇게 배불리 먹고 나면 놀이터 뒤편의 작은 농장으로 간다.

토끼와 닭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사육장 안으로 풀을 몇 가닥 뜯어주면 작은 입으로 오물오물 받아먹는데 그 모습이 앙증맞고 귀엽다.



이고울씨, 유치원 소개 좀 시켜주실래요?
저기엔 뭐가 있나요?



뜬금없는 상황극으로 화제를 돌리면 아이도



네, 따라오세요! 보여줄게요!



라며 씩씩하게 앞장서서 유치원 곳곳을 여행 가이드처럼 소개해준다.

이 가이드 놀이는 질리지도 않는지 언제나 신이 나서 내게 이곳저곳을 보여준다. 볼거리가 많은 유치원을 내심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루는 갑자기 열매를 보여주겠다며 앞장서서 달려가 어느 나무 앞에 섰다.


이것은 무사과나무입니다!
저기 열매가 달려있습니다!



아이는 아직 덜 익은 연둣빛 열매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데 무사과라고? 무 맛이 나는 사과인가?

하며 나무에 걸려있는 이름표를 보니 '무화과'였다.

아이의 당당하고도 서툰 발음이 엉뚱해서 웃음이 났다.


작년 여름엔 노란 괭이밥을 '뱅이밥'이라고 부르며 집에 가기 전 하나씩 따고 갔었다.

집에서 키우겠다며 물에 담가 놓기도 하고 그러다가 시들어버리면 잠시 슬퍼하다가 다음 날 유치원에서 또 따오고. 매일 그렇게 '뱅이밥'이라는 자기만의 애칭(?)을 부르며 한 손에 꼭 쥐고 다녔다.

'뱅이밥'을 쥐고 있는 그 작고 동글동글한 주먹이 참 귀여웠는데.


그리고 요즘은 유치원에서 한창 제주어를 배우는 중인데 거기에 푹 빠졌는지 지나가다 개미가 보이면


개엄지 밟으지마!



라며 시골 할머니처럼 구수하게 사투리를 내뱉어 내게 웃음을 준다.


그렇게 유치원을 한 바퀴 돌고 나서 나란히 흔들의자에 앉아 잠시 쉰다.

그때 눈앞에 펼쳐진 유치원의 모습은 참 평화로워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기분이다.


파란 하늘 아래 초록이 우거져있고, 푸른 잔디밭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는 아이들, 오후의 햇살 아래에서 아이가 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엄마들, 선생님과 다정하게 인사하며 집으로 가는 아이들.


그 모습을 바라보다 울컥 아쉬움과 애틋함이 몰려와 마음은 이미 벌써 졸업식에 가 있다.

아마도 그날 난 청승맞게 펑펑 울지도 모르겠다.


요즘 유치원 곳곳에는 연보라색 수국이 몽글몽글 피어 여름이 왔음을 알려주고 있다.

조금 더 있으면 수돗가 옆 꽃밭에 해바라기가 뜨거운 햇빛 아래 피어나겠구나.


여기 앉아서 불렀던 노래들, 둘이서 신나게 하는 아무 말 대잔치, 그리고 공주놀이도. 우리에겐 모두 다 소중한 추억.


여름방학이 오기 전, 유치원에서 뛰노는 아이의 행복한 모습을 부지런히 사진에 담아야겠다.

그리고 훗날 아이와 함께 그 순간의 기억들을 나누고 싶다.


너의 어린 시절은 이렇게나 해맑고 사랑스러웠으며 엄마는 그런 너를 보며 매 순간이 따뜻한 행복으로 가득 찼고, 내가 살아가는 이유인 너는 정말 소중하고 특별한 사람이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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