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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피늄 Feb 11. 2020

등원길

길 위에 수많은 생각과 추억이 쌓여있다.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외롭다. 내 옆에서 참새처럼 종알종알 얘기하던 아이 대신, 그 자리에는 적막한 공기가 내려앉아있다.


복잡하게 엉켜버린 생각들로 마음이 힘든 날엔 집으로 돌아오는 십 분 남짓한 그 시간이 더디게 느껴졌다. 그래서 어떤 날은 카페나 도서관으로 곧장 향했다. 그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커피와 책과 글로 오전을 보내고 나면, 무겁고 우울한 일상에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그렇게 충전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남은 하루를 잘 버티기 위한 단단한 힘을 온몸 가득 채우고서.


유치원을 오가는 길이 우울하지만은 않은 계절이 있다. 몽글몽글 벚꽃이 피는 봄. 꽃잎이 흩날리는 그 계절의 등원길은 매일이 소풍 같다.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벚꽃으로 가득한 등원길의 풍경. 맑은 하늘색과 연분홍 벚꽃이 어우러진 그 길의 풍경은 내 모든 일상의 사유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한다. 어렵고 복잡한 감정을 잠시 내려놓고 지금 이 시간 이곳을 오롯이 느끼게 한다.


장난기 가득한 아이의 웃음소리와 함께 이 길 위에서 보내는 봄날의 아침이 예쁘고 소중하다고. 지금 너와 함께여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으로 충만해진다.






오후 세시가 가까워지면 나는 아이를 데리러 유치원으로 간다.


엄마 줄려고 선물 만들었어.


아이는 차에 올라타자마자 가방을 열고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낸다.


선물의 종류는 다양하다.

펠트지로 만든 알록달록 만두, 집에서 같이 식당 놀이할 때 필요하다며 직접 꾸민 ‘민트 레스토랑’ 메뉴판, 모래 놀이터에서 보물찾기 하다 발견한 조개들, 고사리 같은 손으로 꾹꾹 눌러쓴 ‘엄마 사랑해요’ 편지 등등...


아이와 함께 하는 일상 속에서 엄마가 아닌 나 자신을 지켜내는 일은 외롭고 때로는 불안하다. ‘엄마니까’라는 말로 시작하는 무한한 책임감에 가려져, 진짜 내 모습은 점점 작아지는 것 같다.


엄마인 나와 엄마가 아닌 나. 그 둘의 건강한 관계를 위해 고민하는 밤은 유난히 깊고 어둡다.


그럼에도 다시 기운을 낼 수 있는 건, 아이가 건네주는 ‘오후 세시의 선물’ 덕분이다.

사랑스럽고 순수한 마음이 가득 담긴 선물은 언제나 내게 따뜻한 위로가 되어주고, ‘엄마니까’ 느낄 수 있는 소중한 행복을 일깨워준다.


엄마로 살고 있는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발견하는 감각이 결국 내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방법임을, 오늘도 아이를 통해 배운다.






이제 3월이면 ‘등굣길’을 오가게 된다.

하루의 시작이 앞당겨지고, 설렘과 긴장이 교차하는 일상이 이어질 것이다.


기분이 묘하다.

학교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실감할 때마다 내 머릿속에선 성장앨범을 펼쳐놓은 듯, 아이가 그동안 자라온 모습들이 스쳐 지나간다. 아련한 기억에 잠겨서 조금 서글퍼지다가도, 새 책가방을 메고 신이 난 아이를 보면 나도 덩달아 설렌다.


그래도 가끔은 그리울 것 같다.

항상 왼쪽 어깨끈이 뒤집어진 채 유치원 가방을 메던 모습이. 벚꽃이 흩날리는 봄날의 등원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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