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내 원래 꿈은 무엇이었을까
"그럼 졸업하고 교수 되는거야?"
아마도 대학원에 진학하고 난 이후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일 것 같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러한 질문은 어디에서나 받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고 할 때도 듣고, 명절 때 친척 어른들을 만나서 대학원에 다닌다고 하더라도 듣고, 교회나 기타 다른 곳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듣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럴 실력이 안될 것 같다고 얘기하거나 그냥 빙그레 웃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얘기는 다른 얘기다. 일단 교수라는 직업은 정말 좋아 '보이는' 직업은 맞지만, 내가 교수를 할 실력이 되는지 알수도 없으며, 세상 모든일이란게 운빨겜이기 때문에 어찌 감히 예측할 수 있게냐는 얘기도 하고싶다. 또, 막상 대학원에 와보면 알겠지만 대학 교수라는 직업도 '내가 가르치게 될 학생들의 수준이 어느정도이냐'도 매우 중요하고, 내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도 정말 중요하다. 사실 교수를 시켜준다고 하더라도 내가 과연 내 지식을 잘 정리해서 남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도 없고, 내 밑에 들어오게 될 학생들의 인생을 책임질만큼 좋은 연구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또 대학 교수가 아니니까 '나는 그럼 회사나 어떤 연구소의 연구원이 되고싶은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면 그것도 잘 모르겠다. 이쯤되면 내가 이 길에 정말 확신이 있는지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과연 꿈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봤다. 그리고 대학원에 왜 왔는지도. 앞선 글에서도 여러번 말했지만 내가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 이유는 어떤 과학적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서라거나, 무언가 모르는 것에 대한 열망이 강해서가 아니었다. 그냥 단순히 어렸을 때 부터 제일 잘하는게 공부였고, 집안 어른들께서 어려서부터 대학원에 당연히 진학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아무런 의구심 없이, 인생에 대한 큰 고민 없이 대학원에 진학했었다. 이미 대학원 3년차가 되었지만 이제와서 나는 대학원에 왜 왔고, 대학원에 졸업하면 무얼 할 것이고, 그것이 정말 내가 원했던 일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생각해보면 어려서부터 뚜렷한 한가지의 꿈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여느 남자아이처럼 그냥 어렸을 때는 과학자라는게 멋있어 보이기도 했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영어랑 국어보다는 수학과 과학이 더 좋았는데 그렇다고 수학자라는 직업은 들어보지 못해서 과학자가 되고싶다고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냥 그렇게 컸다. 우리나라 학교 체계나 수능이라는 입시 과정을 비판하려는 의도는 전혀 아니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를 마지막으로 사회시간은 내신 때 잠깐 공부하는 과목에 불과했고, 사회 시간은 그냥 수면 시간이나 다름이 없었다. 당연히 대학에 와서 내가 스스로 공부하기 전에는 정치경제, 근현대사, 윤리와사상 등 사회과학에 대한 수업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때는 그런건 정말 따분한 공부고 내가 지금 하고있는 화학, 수학 등이 더 멋있는 공부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대학에 가려면 그런걸 공부해야 하는 시기였으니까.
대학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1학년 때 팀과제를 같이 하면서 알게된 4학년 형의 공채시즌에 들었던 대기업의 연봉은 어마어마했고, 공대를 나오면 회사에 취직하더라도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 그래서 별 걱정없이 학교를 다녔다. 지금 하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 나중에 누구나 부러워하는 직장도 얻고, 큰 돈도 벌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꺼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때는 정말 문과를 택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문과에서 가장 취직이 잘된다는 경영학과 형들도 취직이 안돼서 걱정을 하던 시기였고, 고리타분한 학문을 배우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나중에 어떤 삶을 살고싶은가'에 대한 고민은 없이 이렇게 살면 대기업에 갈 수 있고, 그러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꺼라는 막연한 생각만 가득했다. 대학원 진학과 취업 사이에서 잠깐 고민하긴 했지만, 집안 어른들의 어렸을 때 부터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의 영향도 있었고, 그냥 신입사원으로 취직해도 밝은 미래가 펼쳐질텐데 대학원까지 나오면 밝다 못해 눈이 부셔서 눈을 못뜰 정도의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확증편향 때문이었을까 그 시기에 봤던 기사들에는 대학원에 나오면 더 잘살 수 있다는 글만 가득했다.
글이 길어져서 두편에 나눠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