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자의 격리생활
주부인 내가 집안일에 갑자기 손을 놓게 되자 가정이 삐걱거렸다. 아니 내가 삐걱거렸다. 격리를 시작하고 하루 이틀 삼일 까지는 증상도 심하지 않았고 방 안에서만 머무는 것이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넣어주는 밥을 받아가며 휴가를 즐기는 듯했다. 가장 큰 문제는 밥이었다. 재택근무를 하는 남편과 아들이 일을 하면서 요리를 할 여유는 없었다. 할 수 있는 음식도 몇 가지 되지 않지만 내가 격리를 하는 동안 대부분은 배달음식에 의존해야 했다.
배달되어 온 햄버거는 퍽퍽했다. 일본 라면은 짜고 면이 불었다. 평소에 잘 먹던 딤섬도 베트남 국수도 입맛을 돋우지 못했다. 몸이 아프니까 한국음식이 더 먹고 싶었다. 두어 번 한국 도시락을 배달 주문해서 먹긴 했지만 희한하게도 직접 부엌에서 지은 고슬고슬한 밥과 소고기 뭇국과 김치가 먹고 싶었다. 내가 요리를 잘한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나의 입맛이 나의 손맛에 길들여져 있다는 사실에 놀랄 따름이었다. 언제부터 내가 엄마의 밥상과 닮은 요리를 하고 있었을까.
예상은 했지만 격리 해제 후의 부엌은 나의 규칙을 좀 벗어나 있었다. 세간들이 내가 지정해 놓고 사용하는 자리를 이탈해 있었고 나무 주걱이 식기 세척기 안에 있고 가스불에 구워져 까맣게 탄 자국도 있었다. 전자레인지 내부는 데우다가 튀어 나간 음식 조각들이 말라붙어 있었다. 무엇보다 싱크대 배수구가 막혀서 물이 졸졸거리며 흘러 내려갔다. 세제도 부어보고 압력을 가해 보기도 하고 락스도 사용해 보고 인터넷을 뒤져 방법을 찾아서 따라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배수 공사하는 분에게 연락하여 뚫었다. $180.0을 지불했다. 비싸지만 해외에서 살다 보면 육체노동비가 고가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나는 언제부터 살림살이를 벗어나게 될까 꿈꾸던 적이 종종 있었다. 남편의 은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때 그럼 주부는 언제 은퇴를 하지? 하면서 살림살이 놓을 궁리를 하기도 했었다. 격리를 하면서 조금 변한 것이 있다면 살림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가족을 위해 너무 무리하지만 않는다면 살림은 나를 위한 일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요리를 하면 나의 입맛으로 간을 맞추고 청소나 빨래도 나의 취향대로 할 수 있다. 집안의 분위기를 웬만큼은 나의 주도하에 가꿀 수도 있다. 누군가의 지시를 받는 것이 아니라 내 자유의지로 진행하는 중요한 일이 살림이었다. 나는 어머니 세대의 희생하는 살림이 아니라 즐기는 활동으로 하고자 했다. 주부의 일도 즐거울 수가 있다. 코로나 시대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