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금혜정 Oct 01. 2022

12. 하얀 장미와 분홍 장미

언니의 바이올린




얼마 전 싱가포르에서 지인의 피아노 독주회가 있었다. 어린 아들을 돌봐가며 연주회를 위해서 엄청난 양의 연습을 했다. 집안일을 남편이 도왔고 아랫집 윗집으로는 인사를 다니며 연습으로 인한 소음 때문에 미안함을 표시했다. 마흔을 앞둔 나이에 자신의 일을 꾸준히 하는 그녀를 칭찬했다.


- 지금 와서 공부한 게 아까워 멈출 수도 없고 앞으로 계속 가야 하는데 아이고 허리가 아파요.

   저는 엄마가 시켜서 어릴 때 피아노를 시작했잖아요. 레슨 받을 때 틀리면 선생님이 연필로 머리를 톡톡 때렸어요.


연주회를 위해 그녀의 친정어머니는 한국에서 드레스를 맞춰 오셨다. 지금도 딸의 원피스는 늘 준비하신다고 했다. 민소매의 원피스인데 동글하게 만든 꽃분홍 장미 장식이  빽빽하게 원피스에 박혀 있었다. 독주회는 성공적이었고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았다.


1990년 겨울의 하얀 장미. 언니의 졸업 연주회 원피스에는 하얀 장미가 세 송이씩 앞과 뒤 그리고 치마의 옆쪽에 피어 있었다. 형편이 좋지 못했지만 언니는 굴하지 않았다. 대학교 1학년부터 졸업할 때까지 아르바이트를 멈추지 않았고 부모님을 원망하는 소리를 낸 적이 없었다. 용돈을 벌어서 썼고 연습으로 시간을 채웠다. 다른 음대생들은 부모님이 맞춰준 드레스를 차에 싣고 연주회장으로 갔지만 언니는 아르바이트비로 마련한 드레스를 들고 한쪽 어깨엔 악기를 메고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갔다. 그래도 바이올린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어젯밤에 언니와 통화를 했다. 시립교향악단의 정기 연주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단원들의 옷 색깔은 모두 검은색이다. 조금 피곤한 목소리였지만 쉰이 넘어도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무엇보다 시향에서 활동할 수 있는 것에 대해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했다. 꿈을 버리지 않으면 꿈도 자신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언니를 통해서 본다. 환경이 다르다 보면 분홍 장미로 필 수도 있고 흰 장미로 필 수도 있다. 모두 스스로 피워낸 소중한 꽃이다.




이전 05화 11.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3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