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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란타나 Oct 06. 2022

13. 비탈리의 샤콘느(Chaconne)

언니의 바이올린




‘철사를 내 귀에 찔러 넣는 소리다’ 언니가 부분 연습을 하는 소리를 나는 그렇게 표현했다. 집에서 연습을 하고 있으면 신경이 곤두섰다. 특히 비탈리의 샤콘느(Chaconne)를 고음에서 반복적으로 하는 연습 소리는 음악이 아니라 소음 그 자체였다. 하지만 무대에서의 연주는 전율이 일게 했다. 언니가 결혼을 해서 나와 거주지가 분리가 되던 스물다섯이 되자 나는 소음으로부터 해방이 된 기분이었다. 허전함도 있었다. 중독이 되면 그리워지듯이 언니가 없는데 바이올린 소리는 어디선가 들리는 듯 환청도 있었다.


지난해 지아민이 옆집으로 이사를 왔다. 중국에서 싱가포르로 엄마 아빠와 이주를 해온 지아민. 프라이머리 스쿨 그러니까 초등학교 5학년 여자 아이다. 지금 거주하고 있는 싱가포르의 아파트는 한국과 구조가 조금 다르다. 천장이 높고 벽이 두꺼워서 그런지 층간 소음은 별로 없다. 겨울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이중창문이 없고 현관문 밑으로는 틈새가 있어서 바람이 통하고 작은 도마뱀도 들어온다. 엘리베이터를 내리면 지아민네 현관을 지나서 우리 집으로 오게 된다.


저녁 식사 후에 부엌에서 설거지를 할 때면 바이올린 소리가 들린다. 나의 부엌과 지아민네의 작은방 창문의 거리는 비껴서 약 4-5 m 정도가 된다. 지아민이 연습을 하고 있다. 거의 매일 들린다. 초급 수준이라 소리가 귀엽다. 부엌을 정리하고 들어온 안방에서는 잘 들리지 않는다. 지아민이 연습을 하고 있으면 부모님은 TV 소리도 줄이면서 아직 덜 익은 딸의 음악소리를 들으며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본다. 지아민도 언젠가는 샤콘느를 연습할 때가 올 것이다. 그때까지 멈추지 않기를…


언니가 바이올린을 연습할 때는 언니가 나의 딸이 아니라서 내게 소음으로 들렸을지도 모른다. 나도 엄마가 되었기에 드는 생각일 수도 있다. 진지하게 끊임없이 혼자서 끈질기게 연습하는 언니는 그야말로 존경스럽다. 언니의 연습은 끝나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서도 새로운 곡들을 탐색했고 시립교향악단에서 연주해야 할 곡들을 연습하고 더구나 해마다 치러야 하는 오디션을 위해서도 쉴 틈 없이 연습하고 연주를 했다. 그래서인지 언니의 실력은 학창 시절보다 더욱 향상되었다. 언니는 아들을 둘 낳고도 연습은 계속되었다. 조카들과 형부의 귀가 좀 많이 걱정스럽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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