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바이올린
부엌에서 당근을 썰었다.
-와, 예술이다.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다. 붉은 당근을 자로 잰 듯 같은 간격과 두께로 썰어낸 도마 위의 칼질을 스스로 감탄했다. 가늘고 길게 채 썬 당근 위로 비스듬한 햇살이 비쳐서 더 예뻤다. 마치 무대 조명 같았다. 살림을 삼십 년 정도는 했으니 이 정도는 해야 당근이지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칭찬했다. 혼자 하는 집안일이라 조금 지칠 때 내가 나에게 용기를 주는 방법이다. 예술이라 했던가.
90년대 초반이었다.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언니와 집으로 가던 길. 기차표 예매를 하지 않아 입석 두 장으로 기차에 올랐다. 좌석의 등받이에 기대어 통로에서 이십 대인 자매는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다가 내가 당돌한 질문을 하였다.
-언니야, 바이올린을 보니까 새로운 곡을 익히면 다시 새로운 곡을 받고 연습하고 답습만 하는 거 같아. 그것이 예술인지 의아해. 예술이라면 창작하고 창의적인 부분이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지금 연습하는 곡들은 모두 옛날에 누군가가 작곡해 놓은 곡들이잖아. 오히려 작곡이야말로 음악에서는 예술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언니의 얼굴빛이 싸하게 변했다. 본인은 예술을 하고 있다는 확신과 자부심이 강했던 터인지라 나의 질문이 언니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보다 빠른 속도로 언니는 반박을 했다. 비록 기존의 곡들을 연주하지만 같은 곡일지라도 연주자마다 곡을 해석하고 표현해 내는 방법은 다르다는 것이다. 거기서 자기만의 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예술이라고 반박을 했다. 우리는 답도 없는 논쟁을 하며 서있는 피로감도 잊은 채 목적지에 도착을 했다.
당근을 썰면서 나는 그때의 해답을 나름대로 얻었다. 기술이 쌓여야 예술이 된다는 것. 예술은 숙련된 기술로 누군가의 마음을 환하게 할 수 있다는 것. 바이올린과 당근이 재료가 되고 활로 현을 긋는 기술과 도마 위에서 칼을 놀리는 기술이 선행되어야 한다. 누군가 작곡해 놓은 음악을 아름답게 연주하고 누군가 개발해 놓은 조리법으로 요리를 한다. 그리고 귀와 입을 통해 음악과 음식은 누군가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 이것이 예술이다. 내가 부엌에서 내린 답이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그런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