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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i Nov 13. 2023

스타트업에는 어떻게 가게 됐어요?

1. 나의 퇴사 일대기

[첫번째 퇴사]


자그마치 10년이다.

10년을 다닌 병원을 그만두었다.

미혼의 여자가 직업도 없이, 나이만 먹어서는, 어떻게 결혼을 하려고 하니, 일은 그만두지 말아라.

라는 고리타분한 엄마의 조언을 뒤로한 채.


일은 언제든 다시 할 수 있는 거고, 너 능력 없는 거 아니잖아,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두렴.

이라는 아빠의 응원만을 귀에 담으며.


출근길 지하철에서 기절하는 바람에, 119로 출근하기를 반복했다.

'이상하네, 요즘 다이어트 하려고 했더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봐요.' 하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의식처럼 가운으로 환복을 할 때에는 덜컥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자신의 우울과 불안을 토로하는 환자에게 공감하는 척하며 나의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타인의 문제가 곧 나의 문제인 것처럼 온 하루를 쏟으며 몸살이 날 때까지 걱정하기도 했다.

그토록 걱정하던 전이와 역전이에 대한 경계가 무너지며 생긴 일이라고 생각했고,

이 모든 건 나의 역량이 부족해서 생기는 일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대학원 진학을 준비했다.

내가 공부를 더 하고, 경험을 더 쌓고, 역량을 기르면 해결되는 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결국 나는 포기하고 말았다.

더는 할 수 없었다.


수학계획서 작성을 위해 연구 주제를 설정하려고 교수님을 만날 때마다, 가슴이 답답했다.

교수님들과 랩미팅자리에서는 정말 귀에서 웅웅 거리는 소리만 날 뿐이고 눈앞은 하얗거나 깜깜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새 듯 몇 번을 곱씹으며 시간만 버텨냈다.

차라리 죽으면 이 모든 일들이 끝이 나려나 싶은 마음만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그만해야겠구나. (이 일련의 과정들은 기회가 되면 다른 글로 자세히 적어보겠다.)


첫번째 퇴사 후 두번의 퇴사가 추가 되었다.

나름의 직업 탐구 생활을 보내며

아 이길도, 이길도 나의 길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에

10년 걸린 첫번째 퇴사와 별개로

두번과 세번의 퇴사는 각 5개월과 3개월로 빠르게 결정 되었다.


세번째 회사를 퇴사한 지 3개월이 지난 때였나,

 나의 첫번째 퇴사를 극구 만류하던 교수님께서 연락이 오셨다.

'아직 쉬고 있니? 혹시 생각 있으면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00 병원 교수님이 교원창업을 하시는데, 함께 일할 연구원 추천을 요청하시더라고. 네가 생각나서 추천할까 하는데, 혹시 생각 있니?'


상담과 명상, 요가를 통해 나의 정신과 신체 건강을 꽤 회복한 상태였고,

때마침 직장 없는 삶이 무료해지던 때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덥석 제안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대표적인 세 가지 이유는 아래와 같았다.

1. 나의 미래에 대한 고찰의 부재(무엇을 하고 싶은지, 앞으로는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

2. 또다시 병원으로?(연구원으로 간다면 필연적으로 다시 병원에서 업무를 해야 할 텐데 그 공간에 무리 없이 속할 수 있을지 두려웠다.)

3. 부족한 역량(그동안 서당개 3년으로 서당 옆에만 있었지 연구 전체에 직접 참여한 적은 없던 터라 업무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

.

.


'교수님, 제가 아직 일을 시작하기에는 준비가 안된 것 같아요,  제안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라고 고민 끝에 문자를 남겼다.

'어차피 지금 당장 할 일은 크게 없을 거야. 사무실 혼자 쓰는 거라서 와서 너 하고 싶은 공부를 해도 되고. 병원 출입은 아마 3개월은 지나서 임상 프로젝트 시작하면 그때나 할 거야. 근무 협의는 내가 어느 정도 전달해 둘게, 집이 좀 머니까 재택근무로 하고, 할 일이 많지 않을 테니 하루 4시간 주 3일 근무로 하면 할 수 있겠어?'


.... 이렇게나 좋은 제안이라니....

나, 알고 보면 타고난 럭키걸이 아니었을까? 하는 착각에 2020년에 봤던 사주의 이야기가 문득 생각났다.


'관도 있고, 식도 있고 사주가 좋네. 일복이 있어서 일은 쭉 할 거고 굶을 일은 없을 거예요. 본인이 일 하는 걸 좋아해, 집에서 쉬라고 해도 쉬지 않고 나가서 그림이라도 보고 올 사람이야. 그런데 힘든 일은 하지 않아. 좋은 거야, 요즘 시대에 얼마나 좋은 사주인데.'


그래, 사주가 괜히 역사가 깊은게 아닌거다.

분명 뭔가 있을것이다.

사주 믿고 가보자고....,



[그리고 네번째 퇴사]


교수님이 제안한 연구원의 조건은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주3일, 일 4시간 근무에, 식대 별도, 휴대폰비용 지원,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연봉까지도 말이다.

앞으로의 일을 대비해서 전문 지식을 함양하는게 주 업무였고,

교수님의 배려로 하루에 3시간은 영어공부에 할애할 수 있었으니 실제 근무시간은 1시간인 셈.

처음이라 인사드릴 곳이 많고, 검사를 비롯해 공부할 것들이 있어 병원 출근을 해야한다는 점이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는데 생각보다 편하게 적응할 수 있었다.


'와.. 이렇게 일하고 돈 받아도 되나?'

첫 월급을 타고 들었던 생각이었다.

그와 동시에 들었던 생각이


'이렇게 일하는게 커리어가 될 수 있을까?'


그렇게 나는 잡코리아에 이력서를 업로드하게 되었다.

교수님께서 질환 관련된 지식은 친절히 가르쳐주셨지만,

그 외 행정 업무나 연구 업무는 병원 담당자들께 물어 물어 해야했기에

연구쪽 커리어 향상에는 어려움이 더 많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앞으로 이길로 쭉 가야한다면!

커리어 스텝을 쌓을 수 있는 회사로 가서, 선임에게 일을 배우고, 프로젝트도 시작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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