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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BOYOUNG Apr 14. 2022

서른이면 뭐라도 될 줄 알았지

프롤로그




서른의 우리에게




  내게 서른은 까마득한 것이었다. 어릴 때 서른의 형 누나를  보면, 그들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어른이었다. 그땐 내가 서른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스무 살 때 서른에 대해 얼핏 생각해봤다. 스물다섯 살 때는 좀 더 진지하게 고민했다.


  서른이면 뭐라도 될 줄 알았다. 그리고 이제 정말 서른이 된 나는 뭐가 된 걸까? 나름대로 뭘 하긴 했는데, 뭐가 됐다고 하기엔 애매한 서른이 되었다.


  요즘 나는 종종 공벌레 생각이 난다. 공벌레를 만지면, 녀석은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비비탄 총알만 한 작은 모양이 된다. 어릴 적 나는 공벌레의 필사적인 생존에는 관심이 없었다. 책상에 공벌레를 올려놓고 손가락으로 툭툭 튕기면서 놀았다.


  그랬는데, 서른의 나는 그 공벌레가 된 것 같다. 살기 위해서 웅크린 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가 얼결에 서른이 되었다. 서른이 되고 보니 마음속에 자리한 ‘나’라는 사람은 참 작아져 있었다. 지금도 점점 작아지고 있는 것 같다.(살은 점점 찌기만 하고!)


  그럼 나는 서른에 뭐가 될 줄 알았던 걸까? 뭐가 되고 싶었던 걸까? 직업으로는 전업 작가가 되고 싶었다. 서른 중반쯤 에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줄 알았다.(어디서 생긴 자신감인지.) 좋은 글을 쓰는 작가가 되어서 이왕이면 돈도 많이 벌고 싶었다. 좋은 차도 타고 이층집을 지어서 살고 싶었다.


  어찌어찌 서른이 된 나는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것만 같다. 초조하다. 남들과 나를 밑도 끝도 없이 비교하기도 하고, 잠을 뒤척이며 불안의 끝까지 가보면 그동안 무얼 해온 건지  현실의 ‘나’가 초라해지기도 한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본다. 나는 정말 작가가 되고 싶은 걸까?


  1.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니더라도 어쨌든 내 꿈인 글쓰기의 삶.
  2. 꿈을 떠나서, 어쨌든 돈 좀 벌고 작은 내 집이 있고 차(중형차 정도?)가 있는 삶.


  둘 중에 뭘 택할지 묻는다면, 이제는 2번을 외면하기 어렵다. 작가도 작가지만, 사실 나는 돈 많이 벌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면 그만이었던 게 아닐까. 작가는 단지 이런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게 아니었을까.


  근데 또 2번은 사회가 만든 모습, 남들이 원하는 모습을 내가 원하는 것인 양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마음속에서 큰 현수막만 한 검은 물음표가 펄럭인다.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꿈과 현실의 괴리. 나는 작가라는 명예와 돈이라는 경제력을 동시에 쥐고 싶었다.(그랬으면 좋으련만!)


  이런 고민은 서른을 목전에 둔 스물아홉 살 가을 무렵부터 이어졌는데, 내가 진짜 하고 싶고 원하는 게 무엇인지 헷갈렸다. 사회적 성공도 물론 중요하지만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얼까? 그러던 중 큰 벽을 만났다. 백만 명 중에 3.9명꼴로 걸린다는 ‘말단비대증’이란 희귀병에 걸린 것이다. 나는 공벌 레처럼 웅크린 채 정신없이 굴러가다가 죽음이라는 벽에 부 딪혔다.


  잠들기 전에 누워서 오늘 하루 무얼 했는지 떠올려보듯, 누구나 한 번쯤 인생을 돌아볼 때가 있다. 스물아홉 겨울의 나는 어딘지도 모르는 지도 위에 있었고, GPS 점처럼 작아져 금방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당연하기만 한 내일이었는데, 갑자기 내일이 없다니 캄캄했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볼 수 없고, 그들과 함께 맛있는 걸 먹을 수도 없다니…. 아무것도 아니었던 일상이 양각된 조각처럼 도드라져 보였다.


  나는 병실에 누워 홀로 서른이 되었다.


  서른이라는 앞 숫자의 변화는 내게 십 대와 이십 대 때를 기억하고 돌아보게 했다. 우리는 기억할 수 있기 때문에 2차원이 아닌 3차원을 인식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나를 기억한다는 것은 내가 평면적인 사람이 아님을 확인하는 것이다. 기억은 나를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감각이며, 기억을 통해 나는 내가 살아 있음을 생생하게 인지한다.


  기억 속 거기에 나는 분명 살아 있다. 그런 무수한 나를 기억 하다 보면 지금 현재, 여기까지 내가 정말 살아 있음을 감지할 수 있게 된다.


  처음으로 나를 찬찬히 돌아보았다. 어둠 속에 나를 풀어놓은 채 하나씩 하나씩 나를 기억했다. 나의 유년부터 시작하여 일상다반사를 써내려갔다. 고등학교 시절, 첫사랑의 기억, 대학 시절을 지나며, 어질러진 방을 정리하듯 나를 정리해갔다.


  그렇게 나는 꾹꾹 눌러쓴 한 권의 책으로 기록되었다.


  이 책은 나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서른을 코앞에 두었거나 서른이 된 그리고 서른을 갓 넘긴 당신의 기록이기도 하다. 한 시절을 지나온 당신의 기록이기도 하다. 뭐가 돼야만 한다는 것 이전에, 당신이 살아 있음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멀리 있어도 가까이에 있는 듯한 느낌 속에서 우리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처음으로 인사를 드리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꾸준하지는 않지만, 브런치에 에세이를 올렸습니다.

제가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것은 '말단비대증'이라는 희귀병을 발견하고서부터입니다.


앞만 보고 냅다 달려온 삶에서 잠시 쉼표를 갖게 되었고,

죽음 앞에서 저는 저를 기록했습니다.

다행히 죽지 않고 서른이 되었고,

저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묶게 되었습니다.

(『서른이면 뭐라도 될 줄 알았지』, 모요사, 2022.)


글쓰기라는 게 참 신기합니다.


글쓰기는 소개팅을 하는 것만 같습니다.

잘 몰랐던 저를 마주하고 앉아

저는 저와 시시콜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저는 저에 대해서, 탐색을 하고 알아갑니다.


글을 쓰면서, 저는 저도 몰랐던 저를 만나 이야기 나누고

그 안에서 살아 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안에서 삶의 충만을 만끽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희귀병이라는 고통 속에서 차라리 죽었음 하고 바란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살아,

독자 여러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통해서,

당신이 결코 혼자가 아님을 경험하고

'우리'라는 공통 감각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슬픈 미래보다 기쁜 미래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정보영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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