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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Apr 04. 2021

당신은 현재를 살고 있습니까?

불행한 감정은 어디에서 오는가

 번아웃 위험 증세가 나타날 조짐에 급작스럽게 발리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갑작스러운 후배의 퇴사 때문에 꽤 오랫동안 긴 휴가를 못 갔었던 탓일까. 몸과 마음이 잔뜩 지쳐있었다. 비행기표를 사고 호텔을 정하는 일련의 행위조차 설렘보다는 일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처음 가본 스미냑은 세련되고 여유로웠다. 고급 호텔에서 즐기는 휴양은 너무나 달콤했지만, 어딘가 허울 좋은 껍데기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우붓에서 알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공간


 

우붓에 왔으니 요가 수업 하나쯤은 들어야 할 것 같아 수업을 하나 듣기로 했다. 줄리아 로버츠 키즈들이 오가닉 음료를 마시고 물소리가 들리는 자연 속 요가 스튜디오였다. 그날의 수업은 눈을 감고 감각에 집중하며 수행하는 요가. 잘 모르는 요가 동작을 강사가 어떻게 하는지 보지도 못하고 영어로 들으면서 하라니... 귀를 쫑긋 세우고 잠깐잠깐 실눈으로 나 혼자 이상한 자세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며 따라갔다. 다행히 수업은 명상과 함께 천천히 진행되었다.



"지금 이 환경에 나 자신을 드러내세요.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과 공간 속 나를 온전히 느끼세요. 온 감각을 동원해 자신의 존재를 느끼고, 그 감각을 표현하세요. 내 몸과 마음에 감사를 표하세요."


조곤조곤 말하듯이 이어지는 강사의 말을 들으며, 그 말처럼 숲에서 오는 청량한 공기와 어디선가 흐르는 물소리를 느끼고, 지금 여기에 있는 나를 인지하려고 노력했다. 귀가 아닌 마음으로 그 말을 삼키자 이상하게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미처 참을 새도 없이 터지듯이 볼을 타고 흐르는 나오는 그런 눈물이었다. 눈을 감고 하는 요가라 다행이었다. 남들이 보기 전 얼른 눈물을 닦고 돌아오는 길에 눈물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현재가 아닌 과거와 미래에 사로잡힌 삶


 우붓에서의 마지막 밤, 내가 내린 그 눈물의 결론은 '현재의 나 자신에게 미안해서'였다. 강사의 말처럼 현재는 지금도 빠르게 흘러가고 있는데 그것의 소중함은 무시한 채, 소중한 나의 몸과 마음을 혹사하고 있었다. 사실 나 없이도 회사는, 세상은 돌아갈 텐데 다시는 오지 않을 현재의 즐거움을 희생해서 내가 뭘 그렇게 얻으려고 했을까? 자연과 나뿐, 나를 아는 이 하나 없는 곳에서 현재의 나만 오롯이 바라볼 수 있었을 때 비로소 지친 내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이내 안쓰러워졌다.


그날의 의문은 서울에 돌아와서도 계속되었다. 업무의 화려함이라는 외적인 요소와 과거의 내가 견고히 쌓아온 컴포트 존, 인내하면 (아마도) 찾아올 미래의 행복 사이에서 현재의 나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긍정적인 나는, 마치 마약 같은 퇴근 후의 소소한 단기 행복들에 취해 적당히 행복하다고 믿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 이유를 알고 나자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요소와 내가 어떻게 하면 행복할지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제야 매일 마주하는 나인데도, 나 자신을 잘 모르고 친절하지도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가진 불안과 걱정의 상당수는 이미 일어난 일, 아직 일어나지 않을 일에 관한 것이라고들 한다. 과거의 일은 내가 바꿀 수 없는 일이고 미래는 예측 불가능한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거기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힘들어한다. 현재에 집중하자는 말은 과거를 무책임하게 잊자는 말도, 오늘을 즐기자는 욜로(YOLO)와 동일 선상에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과 외부 요소에 함몰되어 지금 느낄 수 있는 행복이나 놓치고 있는 것들을 보라는 경고이고 따뜻한 조언이다.


그래서 때때로 내게 물어봐 주자.

'나는 지금 나 자신을 잘 돌봐주고 있는지. 지금의 내가 과거, 미래, 외부의 환경과 떼어놓았을 때도 행복한지'


내게는 그것이 30대에 시작된 제2의 사춘기의 신호탄이었기에, 누군가에게도 그 질문이 더 나은 시작을 위한 계기가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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