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에 갇힌 나를 발견하다.
우붓에서 터진 눈물은 현재의 나 자신을 몇 년 만에 돌아보는 시작점이 되었다.
그 이후 나에게 곧 또 다른 또 질문이 찾아왔다.
대학교 때 친하던 선배와 오랜만에 SNS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서로 어떤 일을 하는지 근황을 물은 뒤, 그가 말했다.
"너는 좀 더 자유로운 일을 할 줄 알았는데..."
분명 텍스트였지만 모니터 너머로 실망한 아쉬운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한때 생기로 가득 찼던 그녀가 평범한 회사원이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을까. 내가 그의 기대나 대리만족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했다. 저 짧은 한마디는 내가 '현재를 살고 있는가'에 이은, '원래의 나와 얼마나 멀어졌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사 전에 미리 짐을 줄이는 작업은 나도 잊고 있었던 과거의 나와 마주하기에 좋은 계기였다. 노트와 일기장, 상장과 명함, 출장과 여행의 흔적 등 저것들이 모여 오늘의 나라는 사람을 형성해왔을 테니 말이다. 부모님이 하나도 버리지 않으신 덕분에, 어릴 적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썼던 일기장과 독후감 같은 글 뭉치가 남아있었다. 책과 글쓰기를 좋아하던 나였기에 일기와 메모를 하는 버릇은 그 후로도 꽤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그리고 그 덕분에 대학 졸업 후 여행기가 공모전에서 상을 타면서 뜻하지 않게 현재의 커리어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 퇴근 이후에는 한 글자도 쓰고 싶지 않아 하는 내가 되어버렸다. 소위 말하는 취미가 일이 되면 나타나는 부작용이었다. 업무 중에는 여전히 끊임없이 메모하고 썼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업무에 충실한 직장인으로서였다. 감정의 배출구이자 마음의 거울이었던 일기와 일상의 섬세한 감정을 담아둘 기록들은 그렇게 사라졌고, 몇 년간의 나의 감정과 추억은 공중에서 휘발되어버렸다. 단순히 그것을 적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봐주지 않았던 것이다. 상품으로서의 글을 찍어내듯 생산하는 일상과 마음속의 빈 곳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공모전 수상 이후 내 짧은 인터뷰가 실린 잡지도 발견했다. 나는 콜롬비아의 해안가 마을에서 한껏 웃는 사진과 함께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삶은 그 자체로 축제이고 여행이에요.' 분명 나의 모습이었는데 무척이나 생경했다.
이게 바로 그 선배가 기억하는 나였구나. 두려움 없고 구김 없는 20대의 치기와 긍정 에너지는 사랑스럽고 그 자체로 빛났다. 현재의 나는 다음 분기 계획은 커녕 오늘 할 일만으로도 지쳐있고, 상사와 후임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다리기하고, 불똥이 튈까 두려워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비겁함 사이에서 고고함을 지키겠다고 버티며 책임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하며 감사하는 축제 같은 삶과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몸 사리며 버티는 삶은 그 가치가 너무나 다르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좁은 박스 안에 있었다. 안락한 줄 알았지만, 사실은 나를 억지로 구겨 넣고 있어 내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잊어가고 있는 그런 박스. 내가 만든 박스에 갇혀있음을 겨우 발견한 나는 그사이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찾아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