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직장인들처럼 마음 한구석에 사직서 하나는 품고 다녔을지언정, 무작정 퇴사가 해결책이라는 생각은 없었다. 행복을 찾기 위해 떠난다며 마무리되는 영화나 퇴사 후의 허니문 시기를 다루는 희망찬 여행 에세이북처럼 '퇴사=해피엔딩'이라는 생각을 하기에 30대는 조금 더 현실적이었으니까.
하지만 언제 삶이 내 마음대로 흘러가던가. 기회가 생각지 못한 시기에 오듯이, 안 좋은 일도 생각지 못하게 찾아온다. 현재에 살지 못하고 나를 혹사하고 있는 자신, 원래의 나를 잃어가고 있다는 고민에 대한 실마리를 어느 정도 찾고 난 뒤 여러 옵션 중의 하나일 수 있었던 퇴사가 생각보다 앞당겨졌다.
매일 그 위에서 줄타기 하게 한 사무실 안의 팽팽한 갈등과 고민이 어느날 툭 끊어지는 날이 왔고, 이곳에서 존중과 성장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느끼자 사직서 양식을 다운로드 받았다. 박스 안에 날 밀어 넣은 것은 결국은 나 자신이겠지만 이곳에서는 건강한 고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퇴사가 해결책은 아니었지만, 일단은 나를 둘러싼 환경을 바꿔줘야 새로운 나를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함께 하는 동안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 없이 이별을 고할 수 있는 연애의 마지막처럼, 매우 신중한 그러나 단호한 결정이었다.
내가 내 일에 얼마나 애정을 쏟았는지 아는 이들은 아쉽지 않냐고 물었고, 사랑하는 후배가 건네주는 꽃을 받고 마지막 날도 6시 퇴근을 했다.
꽃길만 걸으라는 그 축하는 감사했지만 나도 어렴풋이 알았다. 퇴사는 어디까지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고민의 종착점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는 것을. 그것도 어쩌면 더 치열하고 힘든 시작.
이직할 곳을 알아본 뒤 혹은 다양한 사이드 프로젝트 시도 후 계획적으로 퇴사하는 어른들은 얼마나 책임감 있고 훌륭한가. 사실 퇴사를 앞두고 이력서를 업데이트하면서도, 내 신경은 문득 내게 찾아온 고민들을 어떻게 풀 것인지에 더 쏠려 있었다.
'모든 문제의 시작은 그 문제를 맞닥뜨리는 데에 있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했으니 이제 그게 무엇인지 알고, 해결 방법을 찾으면 되지 않을까.' 라며 애써 위로를 했다.
이렇게 30대의 어른이가 준비 없이 회사의 울타리 밖으로 나온 후의 지루한 고민과 뒤늦은 자아 찾기를 위한 방황기, 그리고 회복을 위한 분투기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