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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Apr 11. 2021

불친절한 사람들과 감정에 잠식되지 않기

 내가 선택한 방황의 여정과 휴식이었음에도 사회적인 시선에서 무작정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작가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이 테드 강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가 커리어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은 주변에 속물이 많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을 하세요?'란 질문의 대답에 따라
상대방은 나를 만난 것을 기뻐하거나 혹은 시계를 보며 사라지죠."

웃을 수만은 없는, 현대인의 불안감을 제대로 꿰뚫는 말이다. 내가 나에게 만족하는지 여부에 상관없이, 사회의 기준에 성공하지 못하거나 방황하는 성인은 어딘가 불완전한 존재였다. 알랭 드 보통의 말처럼, 명함이 없어진 퇴사 후에는 무슨 일을 하냐는 일반적인 질문에도 때때로 변명 아닌 변명을 하게 될 때가 있었다.  

 

나만의 불안감과 걱정도 버거운데, 다른 이의 시선과 SNS만 켜도 보이는 다른 이들의 화려하고 진취적인 삶은 나를 더 짓누르고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조급함은 오히려 차분히 긴 호흡으로 계획하는 것을 힘들게 해 결과적으로 방황의 시간을 더 늘리곤 했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나 자신을 답답한 가상의 박스 안에 가둔 것도 이런 외부적인 영향들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전공이나 직업 선택 등 많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조언이나 사회적인 평가에 나도 모르게 신경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후에 그것이 내 의지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더라도, 다시 또 돌아가기에는 너무 먼 길을 왔다고 포기하기도 한다.




 사회의 시선과 함께 내 주변의 불친절한 이들은 나의 기분과 자존심을 갉아먹는 또 하나의 존재다. 새로운 도전을 할 때, 응원이나 조언보다는 걱정을 빙자한 사기를 꺾는 말, 부정적인 걱정만 하는 그들 말이다. 나의 경우에도 과거에 "이 일을 시작하기에 너는 벌써 20대 중반이라서..." 같은 불친절한 말, "글이 좋아 연락드렸는데, 찍은 사진이 별로 없으시다고요? 그럼 아무래도 여행 에세이 책은 힘들겠네요." 같은 말을 마치 절대적인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였던 기억이 있다. 그것이 설사 사실이었더라도 충분히 다른 길이 있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 시기의 나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나 단단한 마음의 코어도 없었다.


내 마음 치유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에 꽤 가까운 친구에게 받은 마음의 공격에 꽤 아파했다. 다른 이도 아니고 새로운 출발을 응원해줄 거라 믿었던 이에게 준비 없이 당한 일은 내 마음을 다른 식으로 또 헤집어놨고, 감정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부정적인 감정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기껏 운동과 글쓰기로 수면 위로 올라왔다가도 다시금 우울감에 잠식되곤 했다. 마치 이별 후의 감정처럼 일상생활을 하다가도 '왜 그랬을까?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어떻게 사과도 없이 저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라며 오랜 시간 답 없는 질문과 분노에 빠지곤 했다.


반면, 평소에 크게 친하지 않았는데도 내가 하는 작은 시도에도 관심을 가지고 들어주는 이들도 있었다. "나는 마스크 쓰고 걷기도 힘든데 하이킹이라니 대단하다!",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멋지다. 어떤 글 쓰는지 말해봐. 곧 책 쓰는 널 볼 수 있는 거야?"라며 민망할 정도로 작은 것도 크게 보고 격려해주는 이들. 그리고 진심 어린 걱정과 함께 '어떤 결정을 하든 널 믿어'의 눈빛을 보내는 오래된 친구와 가족들은 마침내 내가 그 감정의 롤러코스터에서 하차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부정적인 기운을 주는 이들에게서 빠져나와 밝은 에너지를 가진 이들 사이로 오니 비로소 숨이 쉬어졌다. 힘든 시기의 장점이라면 내가 가까이 해야 할 사람이 누군지 옥석을 가리게 해준다는 것이다.




 사회적인 시선이나 외부의 자극에 초연할 수 있도록 마음도 훈련이 필요하다. 어딘가에서 훅 들어오는 마음의 공격은 기세 좋게 달려가는 나의 발을 걸곤 한다. 때로는 피가 나고 아프겠지만 거기에 '나에게 왜 그렇게 말할까. 내가 그렇게 부족한가?' 이런 질문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그런 질문을 하며 꽤 오랜 시간 우울함에 젖었지만, 답은 없었고 그렇게 낭비한 시간은 또 다른 후회 거리만 되었다. 어차피 나에 대해 잘 모르는 타인의 말이나 시선은 그다지 중요하지도, 내가 바꿀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 말이다.


남들이 어떻게 나에 대해 생각하는지는 내가 제어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 후에 내가 어떤 감정을 가지느냐는 나의 선택이다. 누군가 '남의 이유 없는 상처나 비난'을 쓰레기로 비유한 것을 보고 크게 공감을 했는데, 남이 생각 없이 던진 마음의 쓰레기를 내가 받아 주머니에 넣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더러운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얼른 버려야 나까지 더러워지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것은 (환경이 아닌) 내 마음에 달려있다'는 불교의 가르침, '일체유심조'도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커리어나 인생의 결정에서도 결국은 모든 선택과 책임은 내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내 마음의 중심을 단단히 해야 한다. 누굴 탓하기는 쉽지만 누가 뭐라고 비난하고 안된다 했다 해도, 결국 선택은 내가 하게 되는 것이니. 내가 주위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내가 살고 싶은 삶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아야겠지. 내가 가진 고유함에 집중하고, 가고자 하는 방향성을 찾았다면 그것을 위한 노력을 하면 그만이지, 다른 이와의 끊임없는 비교는 큰 의미가 없다. 일대다의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니. 또 하나, 남들은 나에게 생각보다 관심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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