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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Apr 11. 2021

함께 하면 더 멀리 갈 수 있어

 고등학교 때는 학교 도서관에서 아무도 안 보는 옛날 프랑스 영화를 빌려와 보고, 새벽까지 6~70년대 팝송을 듣고, 예술의 전당에 학생 할인으로 공연을 보러 가곤 했었다. 특별히 친구가 없거나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만화책 같은 비교적 흔한 취미를 제외하고는 바쁜 수험생들에게 '거의 아무도 함께하지 않을 게 뻔한 취미'를 함께 즐기겠냐고 굳이 묻는 게 번거로운 탓이었다. 


성인이 되고 그런 취미를 즐기는 온라인, 오프라인의 장에서 만난 이들과는 탐색의 과정이 필요 없이 관심사를 함께 향유할 수 있어 편리했다. 그래서 꽤 큰 모임의 운영진도 했지만, 이 역시 사람이 모이면 자연스레 생기는 연애나 분쟁 등이 본질을 흐리는 것을 경험하고는, 혼자 혹은 딱 관심사를 함께 공유하는 수준까지만 가까워지자 생각하게 되었다. 친한 친구들이나 회사처럼 꼭 봐야 하는 사이도 아닌데 굳이 그런 친목으로 나의 관심사나 취미가 더럽혀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이런 다소 편협한 관점이 조금 달라진 것은 SNS에서 받은 메시지 하나 때문이었다. 운동을 도와주던 친구이자 코치가 '넌 왜 열심히 하는 모습을 올리지 않느냐'고 하도 말하길래 사진 한 장을 찍어 올렸다. 그런데 친구보다는 지인에 가까운 이가 '네가 운동하는 모습이 좋은 자극이 된다. 멋지다'라는 식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평소에 나는 소위 내 사람이 아닌 이들에게 큰 관심을 두질 않았기에, 잘 알지도 못하는 내가 운동하는 것이 그녀에게 어떤 자극이나 영감이 된다는 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의도하지 않았던 나의 행동이 남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고, 그녀의 친절한 메시지는 그 영향이 지속될 수 있도록 열심히 운동하는 또 하나의 동기가 되어주었다. 


퇴사 후 다양한 그룹의 사람들과 이런 '함께'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점점 커지고 있던 느슨한 연대와 코로나로 인해 급 성장한 온라인 모임은 내가 꺼리는 드라마 없이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공간이었다. 퇴사자들에게 부재한 소속감이나 동료들의 피드백 역할도 함께.


매일같이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 모임에서는, 서로의 글에서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나만의 장점이나 아픔을 조심스레 발견해 줄 수 있었다. 또 하이킹 모임에서는 혼자라면 나서지 않았을 흐린 날이나 긴 산행에서 '조금만 더'를 외치며 서로를 독려하는 힘을 배웠다. 온라인 홈트레이닝 모임에서는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었지만, 같은 시간에 줌으로 만났기에 빠지지 말자는 싫지 않은 압박감이 되어주었다. 또 한번은 공동 주제 없이 짧은 기간 각자 자신의 프로젝트를 하자며 만난 이들도 있었다. 카톡 창 안에서 매일 자신의 이야기만을 무심히 공유할 뿐이었는데, 오히려 서로 다른 분야기 때문에 내가 부족한 부분도 가감 없이 내보일 수 있었고, 다른 관점의 생각도 서로 나눠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글과 브런치로 만난 인연들과 매주 글을 모아 공동 출간을 해보기에 이르렀다. 브런치의 존재에 대해 알고서도 작가 신청을 하기까지 참으로 오래 걸렸고, 통과한 뒤에도 첫 글이 쉬이 나오지 않았는데, 이런 나도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몰아치듯 쓰기 시작하니 이렇게 폭발적인 시너지가 생겼다. 



민들레 꽃씨가 바람에 흩날려 꽃을 피우고 군락을 이루듯, 작은 힘이 주변에 전파되어 더 커지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일. 지금 혼자 막막하고 방황한다면, 한 번쯤은 이런 진정한 긍정적인 영향력과 함께의 가치도 경험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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