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막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어쩌면 태어나 여태 걸어온 길이 내리막이었다. 남처럼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떠내려가면 그만 이었다. 가끔 씩 들려오는 동료들의 목소리만 있다면 그녀는 별로 외롭지 않았다.
넓은 세상은 훨씬 더 차갑고 냉혹했지만 생명이면 모두 같은 조건에서 경쟁하며 살아야 했기에, 먹고사는 문제에선 사내들보다 더 치열하게 힘쓰며 살아야했다.
온갖 곤란을 이겨내고 마침내 도착한 곳은 말 그대로 "딱 죽기 좋은 곳이었다."
치열하게 살 때도 그런 생각은 했었다.
" 늙어서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혼자 마지막을 맞이할 거야"
죽기 좋은 곳에서 아직 할 일이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일은 운명일지 신이 알아서 하는 일인지 잘 모른다. 몸에 힘 빼고 순응하면 다 잘 될지 모르는 일이기도 했다.
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배설과 비슷하나 좀 다른, 출산이었다.
아이를 낳자마자 그녀는 죽었다. 충실한 일생을 마쳤다. 그녀는 그 자리에 죽어 생명 고리의 자리에 앉았다.
아비얼굴도 모르고 에미 없는 자식이 세상에서 첫눈을 뜰 때 어미 살덩이 대신 어미 영혼의 돌봄을 받을 것이다.
( 고형렬의 연어이야기 "은빛 물고기"를 읽으면서 연어와 나무가 닮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책도 그렇다.
나무는 연어처럼 죽어 다시 살아난다.
나무가 죽어 사지를 갈려 책이 되고 그 위에 정신이 새겨진다. 책에 새겨진 인간정신은-물론 빌런들은 전쟁을 하지만- 사랑스러운 자연과 무척 많이 닮았다.
책은 정신으로 우리에게 작동한다. 인류의 정신은 책에서 자라고 책 나무에 매달린 사람 마음으로 이식된다. 히틀러는 정신을 지우려고 시민의 책을 먼저 불살랐다. 나무책은 타고 없어져도 나무에서 자란 인간의 정신은 죽지 않는다. 정신은 우리 속에 살아,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를 원고지 앞에 앉혀 글을 쓰게 하고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글은 사람을 오염에서 정화시켜 원래 모습으로 돌려준다.
책은 사람을 키우고 작가 정신은 사람 속에 머물며 아이에게도 책을 읽힌다.
제인오스틴은 "오만과 편견" 서두를 이렇게 시작한다.
"재산꽤나 있는 독신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
제인오스틴은 1775년생이고 오만과 편견은 1813년 영국에서 발행되었다. 하지만 시공을 초월해, 그녀의 첫 문장에 매료되어, 나는 타임머신 첫차를 타고 들어가 한꺼번에 책을 다 읽은 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