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다가 살아났다
겨울이 되어가면 굴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쁘다.
식감도, 그 형용할 수 없는 오묘한 맛도, 향도,
다 너무 좋아서 나는 보통 적어도 이틀에 한 번은
마트에서 봉지굴을 사다가 먹는다.
지난주 목요일에는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과
양재천 부근에서 저녁자리가 있었는데 그 집에서 너무나 유러피안 같은 메뉴로
'하프쉘 굴과 화이트와인'세트가 있어서
4명의 일행 중 2명은 노로바이러스가 무섭다면서 안 먹겠다 했고
나와 나머지 한 명은 먹고 싶어서 그럼 둘이 먹자! 하고 시켰다.
노로바이러스가 조금은 무서우니
레몬즙을 듬뿍 뿌리긴 했지만
세균이야 산성에 죽겠지만 바이러스는 안 죽겠지..
그렇지만 설마 노로 진짜 걸리겠어... 하며
먹음직스러운 하프쉘 굴에 + 레몬즙 + 타바스코 소스까지
야무지게 뿌려서 하나, 둘, 세 개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금, 토 이틀 아무렇지 않게
신나는 일상을 보냈다.
그리고 굴을 먹은 지 약 48시간이 경과한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새벽.......
엄청난 복통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구역감과, 온몸에 식은땀이 줄줄 나고
더욱 미치겠는 것은 위아래로 동시에 분비물들이 (!) 쫙쫙 (!)
지멋대로 나와서 정말 고통과 함께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무슨 가혹한 형벌 같은 게 내려지는 것 같았다.
온몸에 힘이 쭉 빠져서 바지를 올릴 힘도 없었지만
정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심정으로 가까스로 옷을 주워 입고
누웠다 다시 화장실을 갔다가를 반복하고
찢어질 것 같은 복통을 도와줄만한 약을 찾아서 한 움큼 먹고
일요일 내내 시체처럼 침대에만 누워있었다.
하필 남편도 없던 주말이라 기특한 아들 둘이
아빠랑 통화해 가며 약을 찾아서 입에 넣어주고
지들끼리 햄버거 사다 먹고 나를 위해 포카리스웨트도 사다 주고
온전히 쉴 수 있게 해 줘서 그 덕에 살아났다.
아들 키운 보람이 이런 건가 했다.
일요일만 해도 월요일 도저히 회사에 못 갈 것 같아
월요일은 휴가를 내야지 내야지 했는데
막상 월요일 아침에 되니 몸이 가뿐하고
겨우 하루 단식했는데 바로 3kg이 빠져있어서 기분도 좋고 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했다.
노로바이러스...!!!
아플 때는 미칠 것 같았는데
결과적으로 3kg도 빼주고 해서
당분간은 생 굴 못 먹겠지만
조금 지나면 다시 먹고 싶을 것 같다.
한 방울 뿌리면... 노로바이러스 없애는
그런 인체에는 무해한 스프레이 개발하기 어렵나요?
굴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거 좀 누가 빨리 개발해 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