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지 Jan 11. 2024

1학년 여름방학 : 결혼


나는 대학교 4학년 시절 소개팅을 했었다.


소개팅을 위해 강남역 한 파스타 가게에 미리 도착해 자리에 앉아서 소개팅 상대방을 기다리고 있었다. 번잡한 강남역 파스타 집이라서 많은 사람이 오고 갔다. 그러던 중 저 멀리서 얼핏 봐도 내 마음에 드는 아우라를 가진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저놈이 내 앞에 앉으면 좋겠다 좋겠다 좋겠다' 되뇌며 뜨거운 눈빛을 보내보았는데 어라, 정말 그가 내 앞자리에 와서 앉았다.


헤벌쭉,


나는 첫눈에 이놈이 마음에 쏙 들었고 내 입은 벌어져서 배시시 웃음을 참지 못하고 두 시간 내내 싱글벙글 웃었다. 그도 계속 웃고 있는 내가 맘에 들었는지 1월 4일 날 소개팅을 하고는 그로부터 열흘밖에 지나지 않았던 날 저녁 '1월 26일인 당신의 생일에 맞춰 고백하려 했는데 도저히 못 기다리겠다며 오늘부터 사귀자고' 로맨틱함과 박력을 겸비한 고백과 함께 연애를 시작했었다. 둘이 좋아 죽던 연애사는 다음 기회에 마저 자세히 풀어 보도록 하고, 본론으로 돌아오면 로스쿨을 입학할 시점이 나는 그 남자친구와 3년쯤 만났을 때였다.


내가 살면서 결혼을 한다면 이놈이랑 해야겠다는 나의 막연한 느낌은 있었지만 언제, 어떻게 해야 할지는 전혀 감도 계획도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거의 1-2년 만에 로스쿨에 입학을 했던 터라 로스쿨 1학년 당시 내 나이 (구) 한국나이 기준 26살이었다. 로스쿨에 입학 후 조금씩 친한 사람들이 생겼고 주로 친해지게 된 무리의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언니들이었다.


결혼을 하려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하는 게 좋아!



이미 사회 경험이 있던 언니들이 깨알 같은 조언을 해주었다. 오 그런 건가?! 싶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생각할수록 맞는 말이었다. 내 인생계획에 어느 시점에 결혼을 하겠다! 이런 것은 없었지만, 또 굳이 결혼을 안 할 생각도 없었다. 그런 와중에 마음에 드는 놈이 내 곁에 있는데 그냥 결혼해야겠다 싶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로스쿨 입학식이 끝나자 슬슬 결혼 준비에 불을 지폈다. 당시 내 주위에서 결혼한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딱 한 명, 나와 자매처럼 친한 S가 나보다 몇 달 앞서 결혼을 했고 그 친구 도움을 많이 받아 결혼 준비를 대강 마치고 방배동의 작은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작은 성당 결혼식인 것에 비해 결혼식 하객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양가 모두 개혼이기도 했고 나와 남편 모두 어린 나이에 결혼한 편이니 친구들이 신기해서 많이들 와주었다. 마냥 좋아서 히히거리며 결혼식 내내 싱글벙글 웃었더니 엄마가 얘! 그만 좀 웃어! 그렇게 좋냐며 아주 조금은 서운해했던 것 같다.





결혼이라는 점이 나의 로스쿨 생활에 크게 미치는 영향은 없었다. 오히려 신혼집을 로스쿨 코 앞에 있는 작은 아파트로 얻어서 학교를 다니기 쉬워졌다. 밤새워 시험공부를 할 때, 결혼 전 1학년 1학기 때는 도서관에 있다가 한두 시간이라도 눈을 붙이기 위해서 귀신의 집 같은 허름한 숙소에서 하룻밤 자기도 했었다. 다신 하고 싶지 않던 경험이었다. 결혼을 하고 학교 앞 신혼집을 얻으니 새벽이 되어도, '여봉 나 이제 집에 가려고' 연락하면 든든한 남편이 슬리퍼를 끌며 학교 정문까지 마중 나와주다.


오히려 신혼인 상태에서 공부를 하기는 더 좋은 측면이 많았다. 남편도 대학 졸업 후 다시 대학생이 된 신분에서 결혼을 했던 터라 둘 다 공부를 해야 했고 주중에는 학교를 다니고, 주말에는 같이 용한 카페를 찾아다니며 공부를 하고 맛있는 저녁을 사 먹곤 했다. 공부도 더 잘되니 내 로스쿨 인생 전무후무한 A+ 학점도 이 시기에 (딱 한번) 받았다.


또 시가와의 관계에서도 좋은 점이 많았다. 애들 둘 다 공부하느라 바쁜데! 라며 특별히 내게 기대하거나 요구하는 바도 없었다. 둘 다 돈도 못 버는데 생활비 보태라며 매달 돈도 보내주셔서 그저 감사합니다 하고 더 이상 바랄 것도 없었다.




로스쿨 1학년 1학기 생활은 이렇게 결혼 준비와 결혼으로 시원하게 보내고 나니 본격적인 로스쿨 학생으로서의 본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듣도 보도 못한 아주 무시무시한 공부들이었다.



이전 03화 사장님 저 로스쿨 좀 다녀올게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