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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지 Dec 18. 2023

사장님 저 로스쿨 좀 다녀올게요!

원하던 로스쿨에 합격하는 기쁨

회사를 1년간 다니던 중에 로스쿨 합격 소식을 받았다.


온전히 수험생으로서 로스쿨만을 향해 달렸던 첫 해는 로스쿨에서 냉정한 불합격을 던져 주었는데, 오히려 마음을 비우고 최소한 만의 시간을 쏟았던 두 번째 도전에서 오히려 더 좋은 결과가 있었던 점은 아직도 의아하다. 학점도 그대로이고 LEET 점수도 거의 비슷했는데, 나의 어떤 점이 1년 사이에 로스쿨을 입학하기에 더 적합한 플러스 요인이 더해졌을까?


단서는 두 가지 정도로 추려보는데 i) 일 년간 바짝 들어가진 신입사원으로서의 군기 또는 ii) 전문 분야가 뚜렷한 사회인이라는 지위 정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군인 같은 로스쿨 지원자


i) 신입사원으로서 바짝 들어간 군기의 활약부터 짚어보자면 일단 로스쿨 면접을 볼 때 첫해는 시들시들한 콩나물처럼 들어가서 물어보는 말에 대한 대답을 하고 나왔었다. 그러나 두 번째 해에는 나도 모르게 면접장에 들어가자마자,

" 안녕하십니까!!!  00대 로스쿨에 지원하는 배! 지! 연!이라고 합니다!!! "라고 크게 외치며 90도 각도로 면접관 교수님들에게 폴더 인사를 드렸다.

"허허허 아니 뭐 군인이세요?"

하필이면 정의와 인권을 사랑하는 헌법 교수님이 계셨어서 군인 같은 태도가 아차 싶었지만 어쨌든 그건 나의 계산된 행동이 아니었다. 오직 1년 동안 300여 명 되는 조직 속에서 제일 막내 신입사원으로 매일 복식호흡을 하며 모든 행사마다 자기소개를 외치던 것이 습관처럼 되어서 로스쿨 면접에 들어가서도 나도 모르게 힘차게 외친 것이다.


여러 가지 질문이 있었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 질문은 '상속세의 적정선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지'였다. 예상 질문으로 미리 준비했을 법한 질문이었지만 의외로 나는 생각지 못했었다. 원래도 임기응변에 능한 인간이긴 했지만 회사생활을 하며 상사(타인)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더욱 확실하게 몸으로 체득한 나였다. 잠시 5초 정도 생각을 한 후에 현재 우리나라 상속세율이 몇 퍼센트인지는 모르는 상태였지만

"50% 정도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당당하게 외쳤다. 그야말로 직진녀다.

"평등을 추구하는 측면에서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태어난 사람과 그렇지 못한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의 간격을 좁혀주는 것이 기회의 평등을 추구하려는 것이고 이것이 상속세의 존재 원인일 것입니다. 사회주의가 아닌 자본주의 이념을 지향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결과의 평등이 아닌 기회의 평등을 추구하고자 하고, 그렇기 때문에 상속세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100% 90% 80% 처럼 과도하게 인간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행하여질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일해서 축적한 재산을 자신의 유전적 후손인 자녀에게 도움이 되도록 전달하고 싶은 개인의 자유가 인정될 수 있도록 50% 정도 선이 상속세율로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교수님들이 끄덕끄덕해주는 것 같았다. 휴. 사회생활을 소위 '빡세게' 하지 않았을 때와는 비교도 안되게 위기 상황 극복력이 강해졌다. 두 번째 도전의 이점이었다.


특수한 금융분야의 전문가


내가 재직하는 금융분야가 조금 특이한 분야다. 이 산업에 대해서는 애초에 아는 사람도 많지 않고 종사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모두 영위하는 산업이고 국가마다 대표 회사 하나씩은 있는 그런 분야이기 때문에, 내가 로스쿨을 졸업하고도 한 분야의 전문 변호사로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더해 주었기 때문에 로스쿨 입장에서 더 뽑고 싶은 사람이 되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로스쿨이 도입되면서 매해 어찌 되었건 1500명 수준의 변호사들이 양성되고 있으니 예전보다 훨씬 많은 수의 변호사들이 있고 로스쿨 입장에서도 전문 분야가 뚜렷하게 있는 변호사로 일 할 수 있는 예비 변호사를 뽑고 싶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아니면 그냥 로스쿨 준비만을 했던 경력보다, 생산적인 일을 했던 경력을 더 높게 보았을까? 사실 내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이 두 가지 정도가 이점이 된 게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사장님, 저 휴직 좀 하고 로스쿨 다녀올게요.


로스쿨 합격의 기쁨과 함께, 다니고 있던 회사를 어떻게 할 것인지가 곧바로 크나큰 고민으로 다가왔다. 입사하기 전에는 아예 이름조차 모르던 회사였지만, 입사를 하며 1년 넘는 시간 동안 다니면서 나는 나의 회사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었다. 돈 벌러 다니는 회사를 사랑하는 것은 정말 기이한 일인데, 회사 분위기가 나의 본래 성격과 정말 잘 맞았고 도전과 혁신을 위해 신입사원을 사장님부터 모든 선배들이 귀하게 여겨주는 분위기가 강해서 나는 그 당시 정말 회사를 사랑했다. 거의 1년 동안 사장님도 신입사원들과 매주 한 번씩 좋은 식당에 가서 꼭 밥을 먹었고, 회사에 먼저 입사했던 회사 선배들이 매일 돌아가면서 점심을 사주는 바람에 나는 1년 동안 내 돈 주고 점심을 먹을 기회가 한 번도 없었다. 동아리도 활성화되어 있어서 입사 첫해 회사 선배들과 밴드 공연을 했던 것도 너무나 행복했다. 가난했던 수험생 신분에서 벗어나 달콤한 월급을 매달 받으며 당시 남자친구 (현 남편)에게 큰소리를 탕탕치며 하얏트 뷔페에도 데려갈 수 있던 것 등 회사로 얻었던 모든 것들이 나의 회사 사랑의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막상 내가 원하는 로스쿨에 합격을 했음에도 우리 회사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사장님 저 휴직하고 로스쿨 좀 갔다 올게요, 허락 좀 해주세요."


당시 내가 재직하던 회사에는 학술 휴직제도가 있기는 있었지만, 아무도 쓴 적 없는 사문화된 규정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 규정을 들어서 로스쿨에 다녀올 동안 우리 회사에서 휴직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회사에 요청하고 싶었다. 안되면 말고의 심정이 아니고, 정말 첫사랑이랑 결혼하고 싶은 그런 심정으로 간절하게 원했기 때문에  강력한 방법이 필요했다. 단순하게 내 위 직속 상사에게 제안하거나 인사총무 부서에 제안해서는 절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았고 나는 아웃룩을 열어서 사장님께 이메일을 썼다.


오래전 일이라서 이메일이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때 정말 첫사랑을 대하듯 절절했던 나의 마음, 회사를 떠나고 싶지 않은 나의 마음, 그러나 회사 입사 전 내가 꼭 이루고 싶은 변호사라는 직업이 있었던 점, 내가 우리 회사 입사 당시 면접관들이 로스쿨에 지원했었다는 내 이력서를 보고 입사 후에 로스쿨에 붙으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서도 "보내주시리라 믿습니다!" 외쳤던 기억을 떠올리며 내 회사 사랑을 이어갈 수 있도록 꼭 휴직을 허락해 달라고 썼었다.


진심을 담은 나의 노력이 회사에서 다녀오라는 허락을 받아주었고,


그렇게 나는 회사 휴직을 한 채로 그 해 3월 로스쿨에 입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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