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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지 Dec 15. 2023

리먼브러더스 파산 그리고 로스쿨


대학교 4학년, 경영학과 졸업을 앞두던 해 나는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경영학과에서 배우는 모든 공부의 생략된 결론은 '그래서 어떻게 하면 돈을 더 잘번다' 는 것이다. 그럼 사장님이 아닌 대학생으로서는 결국 연봉 높은데 가면 장땡 아닌가 생각으로 귀결되었다. 경영학과 내에서 가장 연봉이 높은 직군으로 생각하는 회사는 컨설팅펌 아니면 투자은행이었다.


처음에는 보스톤 컨설팅, 베인 앤 컴퍼니 같은 글로벌 컨설팅 펌에 취직을 결심했다. 그래서 딜로이트 컨설팅서 인턴십을 경험했다. 그러나 컨설팅이라는 직업은 알면 알 수록 신기루 같은 직업이었다. 나보다 훨씬 경력이 오래된 직장인들에게, 그 산업에 대해서 조언을 하는 일이라니! 내가 아무리 그 회사의 이모 저모를 한두달 동안 열심히 파악한다고 한들, 몇십년씩 그 회사에 몸담은 사람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일은 내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래, 컨설팅이 아니라면 투자은행을 가자.

때마침 리먼브러더스에 입사할 수 있었고 그렇게 나의 부자의 길이 시작될 줄 알았다.




리먼브러더스에서의 일은 정말 고되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도 거의 매일 새벽별을 보며 퇴근해야했다. 직장의 동료 모두 다 잘 해주시고 예뻐해주셨지만 매일 같이 하는 야근에 몸이 견뎌내기 어려웠다. 그렇게 나는 회사 다니는게 죽을맛인데, 같은 회사에서 저 멀리 어떤 사람은 늦게 출근 하고 일찍 집에 들어가는데 월급도 많이 받는 것 같았다.


저거다.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나도 무조건 저걸 해야겠다고 다시 마음을 먹었다. 그 사람이 슨일을 하는지 알아보니 변호사란다.


그래 그럼 나도 변호사 할래.


그렇게 나는 로스쿨에 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런데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던가.. 사내에서 우리 회사가 망한다는 소문이 솔솔 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사내라기 보다 회사에서 만나는 외부사람들이 우리보다 정보를 먼저 듣고 알려줬다는 편이 더 맞겠다.


어렵게 퇴사 이유를 말할 필요도 없었고 눈치 볼 필요가 없었다. 첫 직장이 망해버린 24살 대졸 신입사원에게, 한국 지점 상사들이 (파산이 절대 그들의 탓도 아니건만) 모두 미안해했다. 책임지고 노무라증권이나 JP morgan 같은 회사 이직을 알아봐주겠다고 다독여줬다. 나는 너무 기뻐하기도 그렇고 조금 슬픈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이 기회에 로스쿨 가보려고 한다며 이야기를 하고 선배들의 배웅을 받으며 회사를 떠났다.






로스쿨 준비가 (물론 요즘이 더욱 어렵겠지만) 녹록치는 않았다. 로스쿨을 가기 위해서는 학점과 자기소개서 그리고 LEET 시험점수가 중요한 평가 요소였는데, 이미 졸업을 한 나는 학점을 바꿀 수는 없고 바꿀 수 있는  건 LEET 점수 뿐이었다. 시험의 형태가 애초에 학업능력을 보는 유형의 시험이었기 때문에 공부를 한다고 해서 점수가 확실히 올라가는 류의 시험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준비도 안할 수는 없었다. 대학교를 졸업했지만 매일 아침 학교 도서관으로 출근 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같이 경영학과를 졸업하면서 수의대를 준비하던 친한 친구가 있어 그 친구와 둘이 수험생활 아닌 수험생활을 했다.



LEET를 무사히 치르고, 열심히 준비를 해서 로스쿨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첫 해, 나는 아쉽게도 로스쿨 2기로서 원하던 로스쿨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지 못했다. 다른 대안은 준비 것이 없는데 원하는 로스쿨에 가지 못하게 되자 나는 망연자실했다.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을 때 함께 로스쿨 스터디를 했던 스터디원이 '신의 직장'에 우선 원서를 넣어보는게 어떻냐고 권유해주었다. 특이하게도 회사 주요 면접이 달리기, 등산, 축구, 술자리에서의 술 예절 이런 항목들이었고 나열된 모든 면접 방식은 내가 아주 자신있는 종목들이라 그 '신의 직장'에 나는 손쉽게 합격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나는 로스쿨을 가려고 퇴사를 했건만, 로스쿨이 아닌 다른 금융회사 신입 사원이라는 결과를 얻어버렸다.



로스쿨, 과연 갈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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