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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지 Feb 02. 2024

머리를 안감은 날

머안감

아침에 늦잠을 잔 날이라든지,

아침에 그날따라 거울 속 머리가 괜찮아 보인다는지

유독 그런 날이 있으면

가끔 머리를 안 감고 회사에 출근한다.

원래는 매일 감고 출근한다. 정말이다.


그런데 꼭 머리를 안 감고 출근한 날이면

오후 두세 시쯤 되면 정수리에서부터 얼굴 전체까지

뭔지 모를 답답한 불편함이 어김없이 느껴지고

이 불편함은 머리를 풀어도 묶어도 계속되고

왜인지 어깨도 뭉치고 무척 피곤하다.


누적된 피로는 strong 에스프레소 두 잔에도

해결이 안 되고

머릿속엔 온통 '빨리 집에 가서

머리 감고 자고 싶다'라는 생각뿐이다.

상사에게 보고를 할 때도 정수리 냄새가

신경 쓰여서 멀찍이 떨어져서

구린내를 숨기고 보고하느라

최대한 짧고 빠르게 마친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어제 늦게 자서 오늘 늦게 일어나니 머안감이다.

(머! 리를 안! 감! 았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서 점심을 먹을 때는 좋았는데

오후 두세 시가 되니 정말 더욱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아침에는 무조건 머리를 감아야겠다 다짐한다.

머리를 안감은 날은 정말

하루종일 일할 맛이 안 난다.


사장님! 오늘 제가 머리 안 감아서

진짜 계속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그래도 집에 정말 가지는 않고

일은 되는대로 열심히 했어요.

그러니까 나이도 40이 다 되어가는데

얼른 승진도 좀 시켜주시고!

해외연수생도 보내주세요!

아시겠죠!


머리 안 감아서 힘들어서

브런치 안 하시는 우리 사장님께

들리지 않을 메아리를 브런치에 외치며

15년 차 직장인은 오후에도 열심히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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