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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이제 Jun 15. 2021

자석 같은 케미가 아니더라도


아주 밍밍한 세상을 날마다 구원해 준, 자석 같지만은 않던 케미



 2020년은 12월을 제외하고 내내 미국에 있었다. 캘리포니아 어느 깨끗한 도시의, 일본인과 미국인 국제 가족이 사는 2층 집 끝방에서 지냈고 평일이면 일을 했고 주말이면 놀러 갈 궁리를 했다. 그리고 자주 한국에 두고 온 것들을 그리워했다. 1월, 한국에 코로나가 크게 유행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더니 머잖아 미국에도 코로나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혼란이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자 회사에 있던 비슷한 또래의 인턴들은 하나 둘 귀국을 결정했다. 고민 끝에 8개월 정도 남은 인턴십을 끝까지 수료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나는, 어찌어찌 미국의 코로나 시국을 무시할 수 있었다. 어려웠던 것은 떠난다는 사람들을 무던히 보내는 일이었다.


 회사의 각 팀에는 비슷한 또래의 인턴이 한, 두 명씩 있었다. 숨겨진 입사 조건이었대도 믿으리만치 다들 생활력이 좋았고, 월급이 거의 다 생활비로 빠져나가는데도 낭만은 있어서 무기력하게 주말을 허비하지 않던 단단한 친구들이었다. 같은 형편과 생활을 공유하고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던 친구들이 썰물처럼 쏴아 빠져나갔다.


 잘 짜인 계획처럼 딱 한 달의 기간을 두고 자리들이 착착 비워졌다. 세라가 보이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미국에 이민 온 지 20년도 넘은 세라는 인턴이 아닌 정직원으로, 회사에 다니면서부터 가족을 멀리 떠나와 혼자 생활하고 있었다. 듬성듬성 빈자리들을 사이에 두고 세라와 나는 어색하게 눈인사를 주고받았다. 서로가 관심 밖의 존재였던 우리는 더 이상 서로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커져버린 사무실의 여백 때문에 외로웠고 좀 두려웠다. 우리는 어둠 속을 걷는 듯한 모양새로 엉거주춤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연고 하나 없는 곳에 어느 날 갑자기 살게 되었어도 저절로 가까워지는 자석 같은 케미가 있었다. 그런가 하면 세라, 세라와는 뭐가 그리 어려웠는지. 세라는 오랫동안 외로움을 연마해온 사람 같았다. 그러다 마침내 외로움과 착 붙어버린 사람. 세라는 예의 그 하얀 연두부같이 부들부들하고 조심스러운 말투로, 늘 남의 의중을 살피는 듯한 눈으로 사람을 대했다. 세라와는 농담 하나도 잘 통하지가 않았다. 의도한 우스갯소리를 진지하게 곱씹던 세라가 평이한 일상 이야기를 듣다 웃음을 터뜨릴 때면 나는 기분이 묘해져 그만 입을 꾹 닫고 싶어졌다.


 어느 날엔 세라와 약속을 10분 앞두고 마음 한구석이 갑갑해졌다. 나란히 어깨를 맞추고 동시에 걷기 시작해도 몇 발짝 못 딛고 들쭉날쭉 위아래로 마구 어긋나는 느낌. 만나고 집에 돌아오면 숨을 몰아쉬게 되는 날들. 그런 세라를 나는 왜, 계속 만나야 했을까? 생각해 보면 그것 또한 나를 위해서였다. 혼자는 편했지만 옳은 것은 결코 아니어서, 이렇게 덩그러니 남은 곳에서 누군가와 부대끼고 그를 좋아하려 애쓰지 않으면 정말 사람답게 살지 못할 것 같았다. 내 안의 경고 메시지가 너무나 명확해, 주말이면 별 수없이 세라를 만나러 나갔다.


 자연스럽지 않았어도 꾸준했던 우리는, 어느새 서로에 대한 데이터가 제법 쌓여 우리끼리만 통하는 농담을 만들기도 하고 무언갈 보고 같은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너무나 조심스러워 덩달아 긴장하게 만들던 세라의 언어들이 차차 평이한 소리로 들렸고, 나도 나만의 대화 방식을 되찾아갔다. 이윽고 형식적인 질문은 건너뛰고 곧장 대화에 풍덩 빠지는 사이로 발전했다.


 어느 날 세라는 모처럼 조심스러운 말투를 거두고 자신이 어떤 불안을 겪어왔는지 담담하게 말해주었다. 그 고민이 어찌나 깊고 오래되었는지 고민의 시작을 떠올리다 갓 이민 온 어린 자신을 이 상황에 끌고 오기도 했다. 영어가 낯설어 친구도 못 사귄 채 고개를 떨군 어린 세라가 눈에 보이는 듯했다. 처음으로 세라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가 만난 이유를 마침내 알 것 같기도 했다. 우린 분명 꼭 맞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나만큼이나 너에게도 내가 필요했구나.


 그날로 내 마음을 힘들게 하던 세라의 염려 많은 성격, 걱정 묻은 대화 주제를 인내하며 듣기로 결정했고 거의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세라의 마음에 닿을 말들을 골라 꺼내놓았다. 세라의 사랑스러운 점은 거기에 있었다. 힘들고 서운하고 답답한 일을 오래 곱씹다가도 자기 앞에서 누구든 고개를 끄덕여준다면 그런 생각쯤 금방 내려놓고 웃을 줄 알았다. 세라를 사랑하기도, 그러다 사랑이 잘 안되기도 하던 날이 쌓이면서 우리의 다른 점은 점차 희석되어갔다.


 가족들을 떠나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기념일을 제대로 챙긴 적이 없다던 세라와, 미국에서 가장 큰 기념일 중 하나인 미국 독립기념일에 우리가 애정하던 바다마을 언덕에 올랐다.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서였다. 고르게 정돈된 넓은 잔디밭에 아무 걱정 없는 얼굴의 사람들 여럿이 석양을 받으며 불꽃놀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남은 자리 중 가장 좋아 보이는 자리를 골라 앉았다.


 기대에 차서 첫 불꽃을 기다리는데 어스름한 하늘 아래 희미한 불꽃 하나가 힘없이 피어올랐다. 무의식중에 떠올린 힘찬 카운트다운과 볼품없는 첫 불꽃이 대비되어 왠지 우스웠다. 그러나 어이없는 웃음이 잦아들기도 전에 사방에서 크고 작은 불꽃들이 그야말로 쉴 새 없이 터졌다. 뻥 뻥 시원스럽게 터지는 경쾌한 리듬을 따라 우리의 얼굴이며 옷이 찬란하게 색을 바꿨다.


 처음 보는 광경에 넋을 잃을 뻔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세라도 나처럼 열심히 소리 나는 곳을 좇았다. 그날따라 신경 쓴 차림새로 시시콜콜 풍경을 칭찬하던 우리 둘은 많이 닮아있었던 것 같다. 그전까지 세라를 아주 어렵게 생각하던 내가, 남은 건 서로밖에 없는데 도무지 대화가, 사랑이 잘 되지 않던 우리가 이렇게 급할 것 하나 없이 놀라운 광경을 함께 하는 게 새삼스러워 코끝이 시큰했다.


 나에게 궁금한 것이 너무너무 많은 세라, 걷는 것을 좋아하는 세라, 영화란 영화 노래란 노래는 조금만 보고 들어도 바로 아는 세라, 착한 세라, 예민한 세라, 꼼꼼한 세라, 덜렁이 세라, 솔직한 세라, 너무 솔직해서 툭하면 느끼한 말을 잘도 하는 세라, 느끼한 말을 잘 듣기도 하는 세라, 무엇 하나 흘려듣는 법이 없는 세라.. 옆에 앉은 세라의 동근 어깨를 내려다보았다. 우리가 지나온 시간이 보통 시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세라의 이야길 듣는 것이 버거워, 그런 내가 버거워 많이도 괴로워했었다. 그때 나는 내 시간이, 그러니까 나 자신이 너무 소중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지나치게 소중했던 것 같다. 세라를 사랑하려 애쓰고, 마침내 사랑하게 되는 동안 삶은 하루가 다르게 충만해졌다. 딱 그 시점에 함께 살던 가족들이 사랑스러워 보이기 시작했으므로. 그제야 2층 집 끝방에서 나와 저녁 차리는 냄새에 일조하고, 한참 귀여울 나이인 주인집 아이들의 가느다란 팔다리를 열심히 쫓아다니기 시작했으므로.


 그걸 알게 하려고 세라 넌 얼마나 수고가 많았니. 사랑을 편하게만 하려고 했던 참을성 없고 편협한 나를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끌어주어서 더 다양한 사랑의 가능성을 알려주어서 고마워. 아주 밍밍한 세상을 살 뻔했던 나를 날마다 구원해 준 너에게 고마워.


 세라와 보낸 밀도 높은 시간들의 도움을 받아 앞으로 만날 자석 같지만은 않은 케미들에 일말의 가능성을 얹어 바라볼  있다면 좋겠다. 사람은 언제고 변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아주 별로인 사람도 아주 훌륭한 사람도, 아주  맞는 사람도 아주  맞는 사람도 없다는 것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그렇게 해서 앞으로 만날 사이에 부담 하나를 덜어주고 싶다. 세라로 인해 조금  커다래진 세상, 다양해진 사랑의 가능성을 잊지 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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