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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mpo Primo Aug 06. 2019

내 연못의 오리는 이미 날아가 버렸다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이 글의 주인공인 홀든은 미성년과 성인의 기로에 서 있다.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모국어인 영어 수업을 제외하고는 모두 낙제이며, 교우 관계도 그닥 돈독하지 못하다. 그는 성인의 세계를 동경하지만, 성인이 되기에는 두려움이 앞서 방황한다. 그 혼돈의 시기를 보여주는 비유를 세 가지쯤 찾을 수 있었다.


  첫째, 홀든이 진심으로 애정을 쏟는 존재는 단 둘이다. 똑똑하고 사랑스러웠지만 어린 나이에 요절한 동생 앨리, 그리고 또 다른 동생 피비이다. 둘 다 10대 초중반의 나이로, 아직 자아가 완전히 형성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그렇기에 순수한 나이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어 지키고 싶은 존재인 셈이다. 물론 제인 갤러허나 샐리에 대해서도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지만, 이는 이성으로서의 호기심 섞인 애정일 뿐, 진정으로 사랑하는 존재라고 보지 않았다. 그 이외에 등장하는 동년배의 급우들이나 부모님, 형인 D.B, 술집에서 만난 여자(미성년자 주제에) 등은 기본적으로 무언가 하나씩은 마음에 들지 않아 한다. 자신의 능력을 영화판에 쓰고 있다거나, 멍청하다거나, 더럽다거나 하는 이유로 꼭 트집을 잡는다. 그렇게 말하는 자기 자신도 그다지 완전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야 할 때 그는 어른과 통화해야 하는 상황을 두려워 하며 전화를 걸지 못한다. 호텔, 바 등을 전전하며 어른 행세를 하지만, 사실 어른 앞에서 당당하게 무언가 말하거나 요구하는 일에는 영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이다.


  둘째, 시내로 가는 택시 안에서 두 번 언급된 질문이다. 

"저기요, 아저씨. 센트럴 파크 남쪽에 오리가 있는 연못 아시죠? 왜 조그만 연못 있잖아요. 연못이 얼면 오리들은 어디로 가는지 혹시 알고세요? 좀 엉뚱하기는 하지만 아시면 말씀해 주겠어요?"  (85p) 

  센트럴 파크 남쪽 연못에 오리가 있든, 닭이 있든, 그것이 어디로 가든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 홀든은 이 질문을 두 명의 택시 기사에게 반복하여 한다. 첫 번째 기사는 자기를 미친 사람 취급하는 거냐며 화를 냈다. 그러고 나서 나눈 두 번째 택시 기사, 호이트와의 대화가 인상적이다. 그도 처음에는 그 질문에 바보 같은 질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린다. 물고기들은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고, 항상 그 자리에 있다고. 얼음이 얼었는데 물고기들이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에 "물고기들은 얼음 속에 그냥 사는 거요. 그게 물고기들의 법칙이오. 얼음이 얼어도, 겨울 내내 그 자리에서 그냥 지낸다는 거지."라고 답한다.


  이 바보같은 연못에 대한 질문을 왜 계속 하는 걸까 생각했다. 다음과 같이 가정해 보자. 연못은 '홀든' 자신이다. 그리고 겨울이 와서 연못이 얼어버리는 것은 홀든에게 있어 '어른이 된다'는 불가피한 변화이다. 그리고 그 연못에 사는 오리는 겨울이 오면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 '미성년의 자아'이다. 홀든은 진짜 오리가 어디를 가는지보다, 자신이 어른이 되어 버리고 나면, '미성년의 자아'는 어떻게 되어 버리는지 궁금했던 것 같다. 어쨌든 겨울이 오면, 오리는 어디론가 떠나야 하고, 사람들은 그 오리가 어디로 가는지는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물고기'이다. 그것은 성년과 미성년을 떠나, 그 연못에서 태어나 연못이 말라 버릴 때까지 그곳에서 살아야 하는 '인간으로서의 자아 그 자체'이다. 물고기는 연못의 수온이 올라가든, 겨울이 와서 꽁꽁 얼어버리든 그 연못에 있어야 한다. 홀든은 이 말에 대답할 수 없을 때까지 계속 반박한다. 하지만 호이트의 말을 100% 받아들인 것 같지는 않다.


  셋째, 박물관에서의 단상이다. 

그렇지만 이 박물관에서 가장 좋은 건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제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누구도 자기 자리에서 꼼짝도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10만 번을 보더라도 에스키모는 여전히 물고기 두 마리를 낚은 채 계속 낚시를 하고 있을 것이고, 새는 여전히 남쪽으로 날아가고 있을 것이다. (중략) 유일하게 달라지는 게 있다면 우리들일 것이다. 나이를 더 먹는다거나 그래서는 아니다. 정확하게 그건 아니다. 그저 우리는 늘 변해간다. (중략) 이렇게 늘 뭔가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설명하고 싶을 지는 확실하지 않다.  (164p) 


어떤 것들은 계속 그 자리에 두어야만 한다. 저렇게 유리 진열장 속에 가만히 넣어 두어야만 한다. 저렇게 유리 진열장 속에 가만히 넣어 두어야만 한다. 불가능한 일이라는 건 잘 알고는 있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164~165p)


  이렇듯, 홀든은 박물관 유리 진열장들 속에서 영원히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늙지도, 죽지도 않는 그 존재를 일종의 동경의 눈으로 바라본다. 사람이 그렇게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무언가 변한다는 사실이 필연적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것을 안타까워 한다.


  홀든이 어른의 세계를 동경하지만 어른이 되는 것을 필사적으로 거부하는 마음은, 어떻게 보면 이해는 된다. 홀든의 주변에는 (전적으로 그의 시점에서 볼 때) 그의 롤모델이 되어줄 만한 단 한 사람의 진실된 어른도 존재하지 않는다. 홀든의 눈에 비친 어른은 자본에 타협하고 남을 등쳐먹거나 바보같은 소리나 지껄이며 겉은 그럴싸하게 살지만, 싸구려 모텔방 안에서는 여장을 한다든가 호텔 로비에서 호시탐탐 변태짓을 할 기회만 노린다. 홀든을 위해 진정으로 조언해 주는 어른도 없다. 그가 방황할 때 그를 너그러운 마음으로 동정하고 위로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나도 성인이 되고 처음 자유를 만끽했을 때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갑자기 눈 앞에 펼쳐진 감당 못할 자유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 대학생이 되고 맞이한 첫 여름방학은 꽤나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그리고 그 비슷한 감정을 마지막으로 느꼈던 6년 전 쯤에는 사회 초년생이었고, 학생과 사회인의 기로에서 나는 어떤 태도로 사회 생활을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다. '시간은 스물아홉에서 정지할거야 라고 친구들이 그랬어. 나도 알고있지만 내가 열아홉 살때도 난 스무살이 되고 싶진 않았어'라는 어떤 밴드의 노래 가사처럼 혼란스러울 줄 알았던 20대와 30대의 기로에서는 다소 담담했다.


  적어도 6년 전쯤이라면 홀든을 진심으로 동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 뻔했지만, 지금은 홀든을 동정만으로는 바라볼 수 없다. 겨울이 오는 데도 연못이 얼지 않으면 그 연못에 이상이 있든 기후에 문제가 있든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이고, 그렇다고 박물관의 모형처럼 유리 진열장 안에서 아무것도 낚지 못하는 낚시질을 계속 할 수도 없다. 이 세상은 형이상학적이고 고상한 사고로만 돌아가지 않는다. 호밀밭에서 순수함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고 싶다면, 그 파수꾼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중심 정도는 있어야 한다.


  학업이든, 직업이든, 그런 속물적인 것을 다 떠나 자신을 지켜줄 순수한 가치관이든 확립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야 홀든이 비난했던 어른이 되든, 그런 어른과는 조금 다른 누군가의 순수함을 지켜줄 수 있는 존재가 되든 할 수 있다. 그런 중심도 잡히지 않은 방황은 사회에서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홀든을 연민어린 시선으로만 볼 수는 없다. 내 연못의 오리가 사라져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세상이 그렇게 따스한 곳은 아니니까.





2019년 트레바리 '문고전' 6월의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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