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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내려온다춤을연습하는 남편

남편 예찬 결혼예찬

by 따뜻한 스피커


퇴근 후 갑자기 씻으러 들어가려다 말고 뒤돌아선 남편은

"이것 좀 봐봐 나 되지? 되지?"


그러더니 체조를 하는 듯 몸을 흔들기 시작한다.


"아 이게 BBC 방송국이 백번을 봐도 재밌다고 했다는 '범내려온다'춤이잖아~"


나는 거실 한편에 있는 작업용 책상에 앉아 내일 있을 줌 강의 준비에 몰입하고 있었고

수업에 쓸 A4용지 자료들과 노트북의 기세에 눌려 눈도 잘 못 뜨고 있던 참으로 피곤한 밤이었다.


"왜 그래? 지금 뭐 하는 거야?"


정확히 말하면 나는 지금 저 남자가 과연 무엇을 하는 건지 의아했고

그 모양새가 설마 춤이라고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체조 아냐?"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승부욕이 발동했던지 유튜브에서 음악까지 찾아 틀고

다시 열심히 다리와 팔을 엇갈려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너무 웃. 겼. 다.

그러고 보니 제법 잘하는 것 같았다.


세상에! 남편은 유튜브에서 '범내려온다춤 배우기" 영상을 찾아보면서 틈틈이 연습까지 했다고 한다.

결국 나는 "아 진짜 너무 웃겨 으하하하"웃었고 남편은 만족한 듯 하루의 피로를 씻어내리는

마지막 의식을 치르기 위해 샤워실로 들어갔다.


귤피차를 따끈하게 타서 찻잔을 마주하고 앉아 물었다.

"그런데 자기야 왜? 왜 그 춤을 연습한 거야? 자기 답지 않게"

진심으로 궁금했다. 오락이나 재미하고는 그다지 인연이 없는 진중하고 차분한 남편의 성격과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새로운 취미(?) 생활이었기 때문이다.


"뭐든지 열심히 하는 우리 아내,

멀리 있는 아들이 그리워도 표 내지 못하고

몰래 우는 우리 아내,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는 일이 업무이고 일상인 우리 아내가 지쳐 보여서 말이지. 자기 웃겨주려고 그랬지.

그냥 자기 웃기는 것이 목적이었.

그리고 이 춤을 추면 왠지 사람이 망가져 보이는 모습이 재미나고 쉬워 보였거든.

아 근데 너무 어려운 거야 승부욕이 생겼지 아이고! 내가 영상을 보고 춤을 다 따라 하며 배우는 날이 오다니"




거의 매일 밤 밤새 싸우고 큰소리가 오고 가던

엄마 아빠를 보면서도 나는 어릴 때부터 이상하게 '결혼'하는 것이 꿈이었다.

일이냐 사랑이냐 당연히 사랑이었다.


그리고 7살 때부터 했던 간절한 기도

'하나님 나보고 매일매일 예쁘다고 말해주고 자상하고 말 많고 웃긴 남자하고 결혼하게 해 주세요' 응답은 빠르게 왔고 결혼한 지 20년이 넘었는데 나는 매일 예쁘다는 말을 해주는

웃긴 남자와 살고 있다.

나의 자존감의 기둥은 남편이다.


오늘 아내에게 말했는가 기승전 예쁘다고?


결혼하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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