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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재산 다 너네 것 아니냐

부러움이 종료되었습니다

by 따뜻한 스피커

아는 후배가 있다. 수줍음을 잘 타는 그녀는

키는 배우 전지현과 같은 키에 역시 상당한 미인이다.

그녀의 시아버님은 탄탄한 중소기업의 CEO였다가 은퇴하신 분이다. 한 동네에 후배 부부의 신혼집을 마련해주셨고 매주 토요일 4형제가 함께 모여 부모님과 아침식사를 늘 함께 한다.

드라마에서 그룹 회장님들이 빛나는 샹젤리제 래에 커다란 식탁운데에 앉아있고

자식들을 둘러 앉히고 함께 식사를 하는 장면이 번뜩 떠오른다.

한 발자국 뒤 사이사이에는 식사시중을 드는 주방 스텝들이 있고 자식들은 아버님 이것 좀 드셔 보세요 이게 제 철이니 이것 먼저 드셔 보세요 하는 그런 장면 말이다.

아 후배는 그 정도는 아니고 식사는 시어머님과 며느리들이 돌아가면서 차리거나 가끔 고급 호텔에서 조식을 먹는다고 한다.

결혼 후 15년 동안 주말이면 한 번도 빠짐없이 그리한다고.

"야 힘들지 않아? 한 달에 한두 번도 아니고 매주 꼬박꼬박 시부모님과 정해진 시간에 식사하는 거? 토요일 아침이면 애들도 좀 더 자고 싶을 거고 너도 남편도 피곤할 텐데"


"아니 안 힘들어요. 나는 친정에서 화목하게 자라지 못해서 그런지 그렇게 매주 불러서 맛있는 거 먹여 주시고 손주들도 보여드리고 좋아."


'........ 친정에서 화목하게 자라지 못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나는 시댁에서 조차도 환영받지 못하는 결혼을 했는데 정말 부럽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속으로만 리했다.


대신 "오그렇구나. 네가 그렇다면 좋네 좋아. 너네 시댁 형제 부부들이 그리 매주 모인다니 정말 의가 좋다"라고 했다.

며느리로서 힘들지 않냐고 말을 꺼낸 나만 그냥

이기적인 자가 되고 말.


"그리고 있잖아요 선배, 만날 때마다 항상 나에게도 애들한테도 용돈도 두둑이 챙겨 주시니까 그것도 좋았지요."


"(아 그럼 그렇지! - 이건 속으로 한 말) 너네 시부모님 매너 최고이시다. 우리는 식사도 사드리고 용돈까지 드리고 오는데 차원이 다르구나. 진짜 부럽다!"


"아 또 있어요. 헤어지기 전에는 우리 집 일주일치 먹을 장도 봐주시는데"


..... 졌다. 갑자기 진짜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아들 며느리와 함께 일주일치 장을 보며 시어머니가 계산도 척척해주시곤 하셨다니.

그 말까지 들었을 때 나는 속이 잠시지만 찌릿할 정도로 부.러.웠.다.




"부러움이 종료되었습니다"

언제가부터 귓속에 이 멘트가 자동 지원될법한 후배의 말들이 쏙쏙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일단 수시로 했다는 말씀.

"나중에 우리 재산 다 너네 것 아니냐"


불편하고 찝찝하게 느껴진다. 언제 올지 모르는 그 '나중'이라는 말로 자식들의 마음을 효도를 조정하려는 듯한 약간의 품은 저의(속뜻)가 느껴지는 말이라서 그렇다.


나의 후배는 결혼 전부터 들어온 시부모님의 이 말이 은근히 든든하고 결혼을 결심할 때도 영향을 주었다고 솔직히 말했다. 그럼 그럼. 물론이지. 가난해서 부담백배인 시댁보다는 부자 시댁이 낫지. 말해 뭘 하나.

후배의 남편은 결혼 후 몇 차례 자신의 벤처회사를 창업하며 불안정한 수입이 계속 이어졌다.

아이 둘을 낳아 키우며 수시로 빠듯한 살림에 시부모님의 현 재력과 미래에 대한 힘 있는 약속은 든든한 버팀목 되어주었으리라. 나라도 그런 환경이 주어졌다면 시부모님과 여러모로 공조체계가 되었을 수도 있었겠다 상상해본다. 하지만 단순한 생각었다.

나의 후배는 결혼 후 시댁에게 늘 눈치를 보는 사람이 되어갔고 조금이라도 눈 밖에 날까봐 애를 많이 썼다는 말에 마음이 아팠다.


예를 들면 손주들도 비슷한 나이 또래가 많다 보니 시부모님은 수시로 손주들의 성적을, 입시결과를 때로는 아이들의 인성까지 들먹여가며 비교했다고 한다. 그 모든 것이 며느리의 능력에 달린 것처럼 말씀하시니 늘 그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긴장 안고 살았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나의 후배가 남편과의 사이가 한창 힘들어 울며 버티던 시절, 그 일을 알게된 시부모님이 후배에게 '헤어져라'라고 단호히

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것도 토요일 늘 함께하는 조식 자리에서였다고.


그때 느꼈단다. 딸처럼 아껴주신 것이 아니라 그냥 재정적으로 능력 있는 남편의 부모,

그냥 시..모였던 것일 뿐.



나도 나를 딸처럼 여겨주는 다정한 시부모님을 만나 사랑받고 싶었다. 4년간의 결혼 반대는 내게 상처와 그 흔적을 남겼고 애교 많던 나는 결혼 후 시부모님 앞에서 점점 말이 없어져갔다. 어떤 말을 해봐야 그 말이 꼬투리가 되어 부메랑처럼 내게 돌아오기 일쑤였으니까.

우리 시부모님은 결혼 후 당연한 듯 우리에게 매달 용돈을 넣으라고 하셨다. 도리를 다하자란 마음으로 매달 자동이체로 용돈을 넣어드렸다. 다른 자식들이 하는 것처럼 뵐 때마다 맛있는 식사도 사드렸다.

시부모님이 미국 형님 있는 곳으로 이민을 가신다고 하셨을 때 몇 개 안되지만

두 아들의 돌반지들을 팔아서 선물도 사드리고 길고 긴 편지도 썼던 기억이 난다. (돌반지를 팔았다는것은 경제적여유가 없었다는것. 그리고 시부모님의 이민은 결국 2년 만에 한국으로의 귀국으로 불발되었다)

당시 진심을 표현한 것에 후회는 없다.하지만 그때는 왜 그리도 아이처럼 전전긍긍 잘 보이려고 했을까싶다.


난 그저 사랑받고 싶었던 것이다.


모든 세상이 사람의 마음 하나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며 사는 극감성주의자인 나는 며느리 생일도 번 안 챙겨주시는 차가운 시부모님이 늘 섭섭하고 야속했다. 하지만 내겐 부모님의 선을 넘는 간섭엔 단호하고, 나에 대한 사랑은 지극한 남편이 있었기 때문에 이혼하지 않고 지금까지 잘살 수 있었다고 믿는다.


지금의 행복과 평밤하고 안정된 모든것이 우리 부부의 협력의 열매니까 뿌듯과 자신감은 덤이다.


살아가다 보면 늘 알게 되지만 인생의

모든 것에는 우리의 예상과는 항상 다른 얼굴이 있다.


후배의 시부모님은 점점 더 시시콜콜한 부부 문제, 손주들 문제까지 간섭을 하시더니 나중에는 아예 모든 일을 좌지우지하시기 시작했다. 문제가 생겨서 부모님과 상의하는 것 까진 좋았는데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끝없는 지시와 조종속에 그녀는 지쳐갔다.

어이없던 것은 그 남편의 태도였는데 툭하면 '엄마한테 가서 밥 먹고 들어갈게. 엄마랑 자고 갈게.'라고 속을 뒤집어 놓았다고.


부부는 자신들의 문제에 주도권을 갖지 못한채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관계가 극도로 나빠졌다. 결국 이혼하기 전에 어떤 노력이라도 해봐야겠다고 판단해서 이사를 단행했다.


시댁과 좀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한 후 그제야 조금 상황이 풀리는듯 했지만, 남편이 게속 시댁에 가서 자금을 받아 사업을 꾸려나가는 처지이니 마음이 여전히 편치 않았다. 하지만 별도리가 없는 것 아니겠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도리가 없는 것일까? 이미 시댁의 재정지원에 오랫동안 길들여져 있어서 두 부부는 이제 와서 독립하는 것에 용기가 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래서 그 후배가 내게 조언을 구했을 때 실천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기지 않았지만 국 말했다.


첫째 부모님께 재정지원을 받지 말아라. 남편이 시댁의 돈을 받지 않으면 당장은 힘들어하겠지만 차라리 발로 뛰어 만든 인맥이나 관계자 등 남에게 투자를 받을지언정 부모님께 지원받는 일은 그만두라. 그렇게 의지하는 마음이 없어야 의 돈 무서운줄 알고 더 치열하게 노력한다.

만약 지금처럼 계속 사업자금과 용돈을 받으려면 고민하지 말고 부모님의 말대로 따르며 편한 일상을 사는 것도 괜찮다. 선택의 문제다.

두 생각 품고 갈등하지 마라.


나의 후배는 남편이 지원받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으나 용기를 내어 용돈과 장을 봐주시는 것은 사양하기 시작했고 대신 열심히 알아본 끝에 한 카페에 매니저로 취직했다. 스스로 경제적 능력을 키우기 시작한것이다.

새벽 일찍 나가 청소를 하고 문을 열고 주인 대신 손님 응대를 하며 월급을 받았다.

요즘 어느때보다도 건강해지고 활기차진 나의 후배를 만나는 기쁨이 크다. 나의 후배는 나름의 경제적 자유의 힘과 자신감 얻었다. 칭찬했다. 시부모님께 의기양양 오히려 용돈을 드리기 시작했다. 깜찍한 아이 같으니라구.


둘째 결혼 이후에는 부부의 문제 자녀의 문제를 너네 부모님과 상의할 일이 아니다. 가능한 둘이서 해결하고 너의 시부모님의 경우는 나중에 알리는것이 좋겠다고 말해주었다.(조언을 구하는 것은 괜찮지만 모든 판단과 결정은 부부가 한다는 원칙을 세우라)

무엇보다 부부 서로 간의 행복이 우선순위고 그렇게 하나 된 마음과 의견으로 똘똘 뭉쳐야

그 다음에 시댁도 있는 것이다. 일하고 아이까지 키우면서 시댁 눈치까지 보는 부정적인 에너지를 최대한 아끼라고 말이다.


후배는 많이 변했다. 무엇이 중요한지 그렇지않은지를 가지치기를 해나가며 잘 해결해 나갔다.


나의 후배여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

나의 인생에 우선순위는 무엇인가?헷갈릴땐 우선순위만 잡으라!부부 그 다음엔 자녀 그고 나의 성장

그외는 조금씩 못하자.그냥. 완벽주의자는 어떤 비난도 받고 싶지 않기때문에 사랑도 완벽하게 받으려고 하는데 내려놓으라.부디.

후배여 너는 너 자체로 소중하다.

매일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길 바란다.

나는 자유로운가 나의 결혼생활은 행복한가.


셋째 다른 돈 많은 형제자매들의 아이들과 비교당하지 않으려면 부모가 공부를 하고 부부만의 교육철학을 세워나가라. 시대를 읽고 오직 입시중심이 아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는 것이 저력 있게 키우는 것인지 정리해두라.

시부모님이 때때로 비교를 하시더라도 너네 가정만의 길을 잘 걷고 있다고 자신 있게 안심시키려면 부모가 흔들리지 않아야 된다. 부모가 자녀를 가장 잘 알고 도울 수 있음을 잊지 고 자신감을 가지라!



에필로그


1.나도 두 아들을 키우고있다. 나에게 날마다 행복과 살아갈 이유를 선물해주는 보물들이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20살이 되면 학비 용돈 등 모든 재정지원이 끝남을 진작부터 강조해왔었고 지금 그대로 실현중이다.(미국인줄)

부모가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우리는 우리의 아들들이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삶을 살도록 잘 준비되길 원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 수있는 첫 열쇠인 자신의 인생을 주도하는 삶을 사는 저력을 가진 남자

그리고 남편들이 되기를 원한다.


2.한 기혼 여성의 결혼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시부모는 차로 2시간 이상! 거리에 있는 경우 결혼 만족도가 최고치로 나타났다.


3.시부모님과 함께 살거나 가까운 곳에 살며, 인생의 참된 멘토와 멘티가 되어주는 아름다운 관계에 있으신 분들을 존경합니다.

그것이 저의 꿈이었음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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